그러나 나는 이제 그 의문에 대해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경상도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신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미안하지 않습니까?
나는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 대해서 당연히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묵은 지역감정 문제가 오늘에도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을 옥죄고 버겁게 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한 마음―그것은 겸허한 마음으로부터 가능합니다. 겸허한 성찰로부터 생겨나는 사람의 아름다운 품성의 꽃인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모든 인간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매사에,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미안한 마음을 잘 발휘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미안한 마음을 잘 지니고 발휘하며 산다는 것은 분명코 신의 축복일 것입니다.
나는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마음 세 가지로 '감사하는 마음'과 '동정심'과 '수치심'을 꼽습니다. 이 세가지 마음은 서로 별개인 듯하면서도 실은 긴밀하게 연관되는 것이지요. 이 세가지 마음이 사람의 가슴속에서 조화를 이룰 때 그는 좋은 품성을 지닌 사람일 수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서 십중팔구는 감사지정과 동정심과 더불어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인 수치심 속에 '미안한 마음'이 포함됨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지역감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이 미안한 마음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역감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애향심' 쪽으로만 달려가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애향심은 인간의 고귀한 정서 중의 하나이지요. 애국애족의 정신도 실은 기초적인 애향심으로부터 발현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나 우리가 오늘 지니고 있는 지역감정은 이미 옛날에 애향심의 범주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의 지역감정은 '지역주의'를 내포하고 있고, 한사코 그쪽으로만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역주의라는 말 속에 '지역차별주의', '지역패권주의' 따위의 말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박정희로부터 시작해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에 이르기까지 무려 35년 세월을 줄곧 경상도 출신 대통령으로만 그 판도가 짜여져 오는 동안 우리의 지역감정은 심화될 대로 심화되고 말았습니다.
박정희의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부터 노정되기 시작한 정치인들의 '자기 고향 보살피기'가 어느 면으로는 인지상정에 속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애향심의 범주로만 머물기란 거의 불가능한 법이지요.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것 또한 당연지사―. 그로 말미암아 지역차별주의와 지역패권주의가 발생하고 창궐하는 것 또한 필연곡절―.
저급한 정치인들한테나 꼭 필요한 그것들은 우리 민족의 일체감을 심대히 저해하는 것이고, 사회공동선을 처참하게 파괴해 버리는 것이지요. 또 그로 말미암아 민족 통일을 지향하는 마음―'통일 역량'을 밑바탕부터 훼손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요.
이런 음습한 가시덤불 속 같은, 너무도 비극적인 악순환의 한가운데를 우리는 살아온 것입니다.
나는 경상도와 전라도와 충청도로 대표되는 우리의 지역감정 문제를 논할 때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접근을 합니다.
경상도는 차별적 또는 패권적 지역감정이고, 전라도는 상대적 또는 반발적 지역감정이며, 충청도는 김영삼으로부터 김종필이 토사구팽 당한 사정에다가 경상도 출신 정치인 김윤환의 '핫바지론'으로부터 연유한 측면이 크므로, 그리고 영·호남의 대결 구도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파생적 지역감정이라고 성격을 규정합니다.
이런 관점 때문에 나는 지역감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상도 쪽이 우선적으로 겸허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인들에 의해 지역감정이 최초로 유발되었으며(이것과 관련해서는 옛날 왕조 시대까지 그림을 너무 크게 그리지 맙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지역감정의 득을 가장 많이 누렸으며, 지역감정을 계속 유지시킨다면 인구 조건으로 볼 때 월등하게 유리한 경상도 쪽이 먼저 겸허한 성찰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보는 거지요.
나는 지역감정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조선일보 식의 치졸한 '양비론'은 절대로 옳지도 않고 무용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는 독재자 박정희를 생각할 때 그가 남한 사회의 지역감정을 심화시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가 조성해 놓은 지역감정의 기초 위에서 경상도의 지역감정은 점차 상대 지역에 대한 차별적이고 패권적인 모습으로 발전하면서 계속 확대재생산의 길을 걸어온 것이지요.
그래서 조갑제와 이인화가 별 소리를 다한다 해도 나는 박정희를 결코 위대한 인물로 보지 않습니다. 민족을 분열시킨 사람이 어찌 위대한 인물일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나는 전라도 사람들이 가지는 정신적 상처를 깊이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은 3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정치적 맥락의 패배와 소외로부터 연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상도의 차별적 지역감정으로부터 파생하고 심화되고 확대재생산된 호남인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그 오해와 편견으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어야만 하는 그 기막힌 현실에 있는 것이지요.
나는 그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것은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정치를 잘한다고 해도 확실한 해결이 보장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같은 민족 같은 국민으로서 호남인들에 대해서 가지는 그릇된 인식―그 오해며 편견과 관련해서는 '공범자'인 우리 모두 참회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땅히 참회 차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경상도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가해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확실하게 겪은 것도 아니면서 무비판적으로, 거의 관성적으로 공유하며 고정 관념처럼 지녀왔던 호남 사람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그 사디즘적 마성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어야 합니다.
나는 군대 시절 월남에 가기 전에 논산훈련소 조교로 일년 동안 생활했습니다. 두 달마다 한 번씩 새 병력을 받곤 했지요. 경상도 병력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마디로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지요.
나는 또 1977년에는 일년 동안 마산화력발전소의 '굴뚝청소부'로 생활했습니다. '4, 19의거'의 성지인 마산에서 잠시나마 생활하는 것을 스스로 기꺼워하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지요.
태안여중의 음악 교사로 근무할 때 내 누이와 만나 곧 결혼하게 된 내 매제짜리가 마산 사람인 덕분에 나도 마산 아가씨와 결혼할 뻔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그후 부산 아가씨와 거의 결혼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고….
그런데 경상도 사람들은 대체로 인정이 박한 것 같았습니다. 여자들이 조용한 소리로 나긋나긋 얘기할 때는 그 말소리가 참 듣기 좋은데, 남자들이 좀 큰소리로 말할 때는 왠지 거칠고 폭압적으로도 느껴지더군요. 살벌함 같은 것도 느껴지고….
그리고 경상도 사람들은 너무 자기 중심적인 것 같고 이기적인 면도 강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양보심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나의 이런 말에 경상도 분들은 아마도 기분이 나쁘실 겁니다.
정말 기분이 나쁘시다면, 그 마음 상태로 전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혹 그들을 모멸하는 말은 하지 않았나, 혹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적은 없나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한 적은 없더라도,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법이니….
이런 경우에도 '역지사지'라는 말은 충분이 적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역감정의 시궁 같은 뻘밭에서 발을 빼야 합니다. 그것을 당당히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민족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통일 역량'을 확장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통일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극우 수구 세력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들로 지랄을 떨어도 우리는 통일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감정을 극복해야만 우리는 좀더 확실하게 통일의 길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지역감정을 극복한 그 힘으로 우리는 힘차게 통일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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