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양민학살사건 생존자 50년만에 현장 증언

김영태 씨, 현장 찾아가 증언

등록 2001.09.04 12:46수정 2001.09.0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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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당시 경찰에 의해 무고한 양민 30여명이 숨진 '봉황 철야뒷산 양민학살'사건의 생존자 김영태(78) 씨가 지난 달 24일 50년만에 학살현장을 찾아 그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그 당시 현장에서 무고하게 숨진 자들의 마지막 모습과 참혹했던 상황들을 이날 모인 유가족들에게 전해주자 유가족들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이 고였다.

50년전의 회상하며 차근차근 말하는 김 씨의 목소리에서 가느다란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자네 아버지는 그 때 네 옆에서 애꿎은 담배만 피며 자포자기를 했지."
그 당시 상황 얘기를 유가족들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기울이며 관심을 보였다.

김영태 씨는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다. 당시 4명이 학살현장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현재는 김 씨만 생존해 있을 뿐, 3명은 사건이 일어난 후 3-4년 뒤에 모두 운명을 달리했다. 김 씨는 이 사건후 곧바로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고향을 떠나 타지로 이사갔다.

김영태 씨 현장 증언

"죄도 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그 때가 아마 51년 2월 26일 새벽 4시나 됐을 겁니다.
낮일로 몸이 고단해서 곤하게 자고 있는데 개짖는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들리더니 마을 앞으로 모두 모이라는 방송이 들리더군요. 옷을 주섬 주섬입고 나왔더니 "공비가 마을에 숨어 들어왔다. 공비를 찾으려 하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마을 앞으로 나와라"는 경찰의 말에 아들, 딸, 아내와 함께 집에서 나왔습니다.


200여명의 마을 주민 모두가 만호정앞에 모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경찰들이 쑥 훑어 보더니 "너, 너, 너 그리고 할아버지 나오시오" 그 가운데 저도 지목이 됐습니다. 명단을 보고 호명을 하는 게 아니라, 경찰들에 의해 무작위로 선별해 약 35명 정도가 지목되더군요. 이건 완전히 재수 없어서 걸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목된 사람들 가운데 60세 이상 나이 든 노인들과 여자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그 당시 노인들이 빨치산 활동을 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허탈하게 웃으며)
순전히 마을 주민들에게 겁을 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찰들이 아침밥을 먹기 위해 이장집을 가는 와중에 우리마을 강상운이라는 자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마을 앞 공동변소에 들어가 10분동안 나오지 않자, 경찰이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이장 집으로 밥먹으로 갔습니다.


훗날 강 씨에게 물어 보았더니 따라가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헛 변소를 갔답니다. 아마 강 씨도 그 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더군요.

뒷산에 끌려 올라와 젊은 사람들은 윗 능선에, 나이든 노인들은 50미터 아래 움퍽한 곳에 앉히더니 갑자기 노인들을 향해 경찰들이 총을 쏴버리더군요. 그걸 지켜보던 우리들은 아연실색했지요. 이제 죽었구나. 자포자기가 되더라구요. 함께 있던 우리마을 양 씨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저를 붙잡으며 울기만 했습니다.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니까.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 서 씨가 경찰 앞에서 무릎을 끓고 앉아서 살려달라고 빌더라구요.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공명'이라는 경찰이 총을 쏴버렸습니다. 서 씨는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져 산밑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습니다. 눈앞에서 총에 맞아 죽는 걸 보니까 나도 모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만요.

이 때 누군지 모르겠는데 경찰 한 명이 서찬수 씨에게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말하자 서찬수 씨와 서상렬 씨가 뒤도 보지 않고 갱갱굴쪽으로 저는 노가리재 쪽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 때 경찰들이 새도 한 마리 잡을 줄 모르는 실력으로 총을 쏜 것 같아요. 얼마나 뛰었을까, 산 두 능선을 넘어 노가리재로 올라가는데 밑에서 경찰 둘이 '탕, 탕, 탕'총을 쏴대더군요. 그 때 생각했지요. 이제 살았구나, 경찰들도 빨리 가거라하고 다른 곳에 총을 쏴댔으니까요."

78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김 씨는 이날 유가족들과 함께 길도 나지 않았을 뿐더러, 잡풀이 무성한 현장을 들러봤다.
50년이 지나서인지 처음에는 현장을 찾느라 고생했지만 10여분 정도를 둘러 본 후 그 당시의 생생한 모습들을 여기저기 가리키며 설명했다.

김 씨는 그가 50년전 앉아있었던 자리에서 "언제 찾아 올려나 했더니 50년만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라며 허탈웃음을 지으며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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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신문에서 역사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정치, 스포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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