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젊은이들이 눈을 떠야 한다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1.09.07 08:49수정 2001.09.0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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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론과 현실의 괴리를 맨처음 느낀 때는 군대 시절이었다. 군에 입대한 후 이등병 시절에 이른바 '삼선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라는 것을 병영에서 치른 후부터 언론의 실상과 한계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완전 무결한 '공개 투표'였다. 병영 안에서 거의 마구잡이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공개 투표의 실상은 나에게 깊은 충격과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군대의 병영은 절해의 고도와도 같은 느낌으로 내게 투영되었다.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어떤 것도 바깥 세상에 절대로 알려지지 않으리라는 느낌은 내게 큰 공포감으로도 작용했다. 바깥 세상의 언론의 힘이 병영 안으로는 미치지도 않으려니와, 병영 안에서 뭔가를 바깥 세상에 알리려는 그 시도조차, 아예 마음먹기부터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일종의 체념적인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리고 나는 월남에서 언론의 실상과 한계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군의 전투 상황과 전과에 대한 많은 보도들이 나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했다. 언론 보도와 현실의 괴리, 즉 사실과 동떨어진 보도들은 언론의 존재 가치의 이면 ―언론의 또 하나의 현실적인 소용가치 따위를 내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전상병들을 원대 복귀시키지 않고 귀국할 때까지 대대본부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대 본부중대의 '경비소대'에서 생활할 때 만난 한 친구를 나는 지금도 잘 기억한다. 그와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 언론 문제 등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장**이라는 그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으리만큼 그 친구와의 월남 병영에서의 그 대화들은 지금도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월남에서 귀국하여 부산의 한 부대에서 며칠 동안 대기병 생활을 할 때 받은 이른바 '정훈교육'이라는 것은 지금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 월남에서 보고 듣고 겪은 '실상'들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는 것이 그 정훈 교육의 요체였다.

정훈 장교는 '국익'을 운운하며 우리가 함구하고 살아야 할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었지만, 나는 한 가지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함구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별로 소용 가치를 지니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지레 거의 체념과도 같은 무기력증 속으로 빠져드는 나 자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군대는 참으로 오랜 세월 '금단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도저히 언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언론은 아예 군대 쪽으로는 눈길을 보내지도, 보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5공 정권과 야합한 친일 친독재 족벌 신문인 <조선일보>는 5공 시절 내내 대한민국 군대에 신문을 납품한 유일한 매체였다. 조선일보가 매일같이 분대당 1부 꼴로 전군에 보급되었던 것이다.

아직 비판 정신이며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끼치는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조선일보는 순진한 청년들의 감수성을 최대한 자극했고, 그들의 말초 신경까지도 가능한 한도까지 효율적으로 공략했다.

군대의 병영 안에서 내리 3년 동안이나 조선일보를 접한 청년들은 제대를 할 즈음에는 조선일보에 완전히 중독이 된 상태였다. 그래서 제대를 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십중팔구는 조선일보를 구독하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정확한 추정이다.

조선일보가 종전의 4위에서 5공 정권 시절에 일약 1위로 뛰어오른 배경에는 정부의 그런 '특혜'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군대를 이용하여 1위로 뛰어오를 수 있는 발판을 착실하게 만들어가던 그 5공 시기는 물론이고, 명실공히 1위임을 자타가 공인하게 된 6공 시절에도 군대는 여전히 언론의 촉수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 지대였고 금단의 영역이었다.

5, 6공 시절에 우리나라의 군 병영에서는 '의문사' 사건이 무수히 발생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은 군대 안에서 간단히 해결되었고, 민간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니 아예 '사건'일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세월이 좋아지면서 과거 군대 병영에서의 의문사들이 뒤늦게나마 하나의 사건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개별 사건들이 하나의 큰 덩어리 사건으로 집합하게 되어 국회에서의 쟁점 사항으로 '승화'하더니 마침내는 '군대내 의문사 진상조사'라는 단계까지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생때같은 아들의 알 수 없는 죽음을 온 가슴으로 부둥켜안고 오열하며, 그 의문사의 진상만이라도 알기 위해 아스팔트 길바닥에서 풍찬노숙하기를 밥먹듯하며 살아온 어머니 아버지들의 그 기가 막힌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그런데 '군대내 의문사'라는, 이제는 제법 큰 이름이 된 그 사건의 덩어리 안으로 집합해 있는 군대 내 의문사들은 사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참으로 많은 부모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아들의 의문사를 아예 과거지사로 치부해 버리고 체념과 포기의 나락 속에서 일찌감치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하여 뒤늦게나마, 또 미약하게나마 세상에 알려진 군대내 의문사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군대를 발판으로 삼아 종전의 4위에서 일약 1위로 뛰어오른 조선일보의 행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군대에서 아들을 잃은 많은 부모들(조선일보의 속성을 모르는 순진한 이들)이 전군에 보급되는 유일한 신문 ―그리하여 군대 내 사정에는 좀더 눈이 밝을 것 같고 능력도 있을 것 같은 조선일보에 눈물 어린 탄원서도 보내고 직접 찾아가서 억울함을 눈물로 호소하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한 번도 그들을 제대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병사들에게 매일같이 자기네 신문을 보게 할 줄만 알았지, 허구헌날 자기네 신문만 보다가 의문사를 당한 병사들의 죽음에는 철저히 무관심했던 것이 조선일보였던 것이다.

조선일보는 오늘날에도 '군대내 의문사 조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도 과거지사인데, 과거를 들추어서 좋을 게 뭐냐는 태도이다. 그들은 그것을 '색깔론'의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한맺힌 부모들의 그 애면글면을 불순한 세력이 개입해서 더욱 크게 조장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군대내 의문사들의 진상을 조사하는 일을 군의 사기와 명예를 훼손하는 일로, 더 나아가 국기(國基)를 흔드는 일쯤으로 파악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만저만 큰 '안보병'이 아닐 수 없고, 시대착오적인 과대망상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써온 수많은 언론 개혁 관련글들 속에 한번씩은 다 다루어진 사항들이지만, 족벌 신문 조선일보에는 친일·친미·친독재·사대주의·권언유착·권력지향·비리구조·지역감정·색깔론·이분법·양비론·호도와 왜곡·분식과 기만 등등 온갖 불순하고도 불의한 것들이 다 결부되어 있다.

이런 조선일보를 그대로 두고서는 언론 개혁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오늘의 언론 개혁 운동은 안티조선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일보를 개혁시키는 일로부터 언론 개혁은 확실하게 진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언론 개혁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올바른 사회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좀더 민주적이고 참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독단적이고 편협하고 소아병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자기도취적인 족벌 신문들 ―그중에서도 대표격인 조선일보를 가장 확실하게 개혁해야 한다.

또 그렇다면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언론 개혁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세상에 대한 바른 눈뜸을 위해서이고 바른 눈을 갖기 위해서이다. 아직 사물에 대한 분별력과 비판 정신이 틀잡히지 않은 연령 시기에 '진정한 가치관'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또 없다. 균형 잡힌 바른 가치관은 사고(思考)의 탄력성과 융통성으로부터 가능하다. 그리고 그 가치관은 의분(義憤)을 낳을 수 있는 정의감으로 이어져야 바른 가치관일 수 있다.

그런 가치관은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 절대로 관대하지 않다. 자신의 과거 허물이나 오늘의 실수를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변명하지도 않는다. 참회와 반성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떳떳한 그런 가치관만이 자신의 미래를 창조적으로 충실하게 개척해 갈 수 있고, 더불어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올바른 가치관은 '정기(精氣)'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개인의 정기들이 모아질 때 우리는 그것을 일러 '민족정기'라고 부른다.

그 동안 우리는 민족정기를 상실한 채로 살아왔다. 가치관의 혼돈 상태는 민족정기의 유실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뒤죽박죽 혼돈스러운 것은 우리가 일제의 사슬에서 벗어나고도 민족정기의 큰 줄기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잃었던 민족정기를 되찾고, 똑바로 세우며 살아야 한다. 그것의 계기를 참된 언론 개혁으로부터 마련할 수가 있다.

언론 개혁은 절대로 독립되어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가치관 ―민족정기의 회복이라는 명제와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언론 개혁의 참된 성과로 말미암아 우리는 민족정기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확실한 토대를 마련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언론 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젊은이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확실하게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젊음의 기개와 기백으로 이 운동에 힘껏 동참해야 한다. 오늘의 이 성스러운 운동의 성공 여부에 젊은이들의 바른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산 위의 마을>로부터 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가을호 게재) 이 글을 인터넷 세상에도 띄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산 위의 마을>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주교 <예수살이공동체>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산 위의 마을>로부터 청탁을 받고 쓴 글입니다. (가을호 게재) 이 글을 인터넷 세상에도 띄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산 위의 마을>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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