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CNN이나 NBC 를 보면 미국인들은 지금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 동시에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났음을 볼 수 있다. 독립전쟁 이래 그처럼 본토가 침습당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진주만 기습도 기껏해야 하와이에서 일어난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로서는 이번 테러가 건국 이래 처음으로 목전에서 직접 겪는 전쟁이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인들과 미국인 아닌 사람들과의 차이는 확연한 것 같다. 1,2차대전은 전유럽을 폐허로 만들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산야와 밀림을 불태우고 도시를 잔해더미로 만들고 숱한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끝에 종지부를 찍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전쟁의 파괴와 죽음이 일상사가 된 지 오래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자국 영토 안에서 전투가 벌어지든 먼 곳으로 병사를 보내 싸우게 하든 전쟁의 참상을 겪음은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자국의 병사를 먼 곳으로 원정 보내 그 전황을 우편이나 전신이나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직접 국토를 유린당하고 민간인들을 융단폭격에 희생당하면서 전쟁을 치르는 것과는 커다란 질적 차이가 있다. 인간은 감각에 좌우되는 '일차원적' 생물이다.
죄없이 학살을 당한 미국인들을 한없이 동정하고 그들의 명복을 빈다. 잔혹한 테러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잔혹함 뿐임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오늘의 참상을 전쟁의 비극으로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이것은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철저하게 보복하겠노라는 취지의 연설을 하는 것도 보았다. 미국인들 대다수가 그의 전쟁 수행을 찬성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세계무역센터와 팬다곤 테러는 분명 전쟁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무차별 침공한다면 그것은 다만 전쟁의 비극을 확대재생산할 뿐이다. 운이 좋다면 미국인들은 스크린으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벌인 걸프전과 같은 컴퓨터 살상 게임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스크린 게임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현실이다. 한반도나 베트남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전쟁의 슬픔>이라고 번역된 베트남 작가의 소설이 있다. 북베트남 병사로 전쟁에 연루되어 미군과 싸우고 살아남은 작가였다. 그는 전쟁에서는 진정한 승리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전쟁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지독한 야만성을 입증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전쟁의 슬픔>의 주인공은 살아남았으되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산 자 아닌 존재로 살아가며 죽은 이들의 환상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환상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가 사람들의 시각을 길들인지 오래이다. 지금 일어나려고 하는 전쟁은 자유의 수호자가 살상의 광신자를 자유의 이름으로 응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텔레비전을 보면 라덴도 부시도 탈리반의 수반도 모두 명배우처럼 연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려고 하는 것은 실제 전쟁이다. 현실이다.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내장이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전쟁, 400미터 빌딩에서 밀려 떨어진 사람이 토마토처럼 으깨져야 하는 전쟁 말이다. 살상을 피할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