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와 문학 '사업'

진해와 군산의 차이

등록 2001.09.29 22:17수정 2001.09.3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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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경상남도 진해에서 열린 김달진 문학제에 다녀왔다. 진해라면 군항과 벚꽃으로 잘 알려진 남해안의 작은 항구도시이다. 하지만 문학인들 사이에서 그곳은 매년 김달진이라는 시인을 기리는 문학제가 열리는 곳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나는 올해로 세 번째 진해행을 하였으니, 나같은 외지인에게 그 문학제는 아름다운 진해를 만날 수 있게 해준 뜻깊은 행사인 셈이다.


해마다 똑같은 곳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치러지는 공식행사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만 구비된다면 문학제를 준비한 그곳 문학인들과 시(市)의 노고가 더욱 빛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물론 올해는 작년에 없던 경남문학관도 새로 생겼고 시인들의 낭송회도 있어 작년보다 풍요롭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행사를 치르는데 필요한 돈이 모자라 빚을 지고 있다는 그곳 문학인들이 걱정하는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무관하다면 무관한 나같은 사람이 잠깐이나마 무슨 방도가 없을까 하는 궁리를 해야 했던 것은 일을 준비한 분들이 무척이나 정성스럽고 진지하게 보였던 탓이리라.

그런데 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군산에 있는 외로운 채만식문학관이 생각났던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채만식문학관 개관식 광경이 떠올라 무척이나 우울했다.

올봄 채만식문학관 개관식이 있던 날 그곳에서 나는 군산의 문학인이라 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두어 분 참석하기는 하였으되 그것으로 군산을 대표하기에 손색 없는 문학인의 기념관 설립을 자축하는 자리라고 믿어줄 수는 없었다.

더 심각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관제행사였다. 시장은 무슨 부끄러운 일로 나오지 못한 채 부시장과 그곳 국회의원과 기타 등등의 지역 유지들이 모여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작가의 유족들은 참석하였으되 의례적인 인사말을 할당받았을 뿐이고 채만식문학관 건립에 조언을 했다는 많은 문학인 명단 가운데 정작 초청을 받아 참석한 분들은 없었다. 관은 문학인들을 믿지 못하고 푸대접하고 문학인들은 그런 관을 원망하는 관계임이 분명했다.


요즘 문학인들이 관(官)과 관계를 맺고 문학적인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지방자치 시대가 되면서 관도 문학인들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도시에 따라 문학인들의 태도에 따라 관가의 풍향에 따라 그런저런 사업들의 의미는 한결 빛나기도 하고 한없이 퇴색하기도 한다.

채만식을 연구한 내게, 그리고 사회의 '문학화'를 지향하는 내게 채만식문학관의 개관은 뜻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매년 열리는 김달진문학제만 못한 졸속 행사였다. 그간 들인 돈과 노고가 퇴색해버린 자리였다. 그곳에 그 고장 문학인들이 없고 시민들이 없다면 고장의 대표자이며 유지들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문학과 문학인이 개개 지방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상품이 되고 있는 오늘이다. 그러나 문학인이든 관이든 젯밥에 관심이 크다 보면 일은 속된 말로 빛좋은 개살구가 된다. 문학이라는 것이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면 글을 쓰고 출판하고 읽는 일은 물론 그 과거를 보존하고 기억하고 재창조하는 일도 정신적 기품이 필요하리라.

그 날 나는 풍경 좋은 진해를 부러워하는 한편으로, 채만식과 '탁류'의 군산을 안쓰러워 하며 우울한 귀경길에 올랐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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