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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시골에 가기 위해 막 출발을 서두르고 있는 토요일 오후에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시골 갈 때 광주 누나 집에 들러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매번 시골에 갈 때마다 광주를 거치기는 하지만 해남까지 가려면 시내 통과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광주에 도착할 때쯤이면 새벽녘이 되기 때문에 한번도 들르지 않고 외곽도로를 따라 그냥 집에 갔었는데, 이번에는 일부러 전화를 해 새벽이건 밤이건 상관없으니 들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기로 하고 나서 차에 올랐습니다.
광주까지 가는데는 생각보다 길이 많이 막히지는 않았습니다. 오후 2시 30분경에 출발했는데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 좀 자고 식사하고 그리고 광주에 도착하니 저녁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누나가 차려준 늦은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문가에 쌓여있는 과일상자가 결국 나를 누나집에 들르게 한 이유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과일이 몇 상자 들어왔는데 자신은 먼저 시댁에 가야 하니 우선 나보고 먼저 친정 집에 가지고 갔으면 했던 것입니다. 트렁크는 이미 들어갈 공간이 없어 뒷좌석에 포개어 싣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추석날 우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고 아버지 산소에 갔습니다. 벌초는 해남에 사는 동생과 이웃 어르신이 이미 해놓아서 성묘만 가면 되었습니다. 차를 세워 놓고 약 5분정도를 걸어 산소에 도착하여 기도를 드리고 아버지가 평소 즐겨 부르시던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이라는 찬송을 목 메이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려올 때는 다른 길을 잡아서 내려오는데 앞에 가던 동생이 "벌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여섯 살 난 나의 아들 일신이를 번쩍 안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나는 일신이 이마에 붙어있는 땅벌을 발견하고 "이마다" 라고 외치며 같이 뛰었습니다. 몇 발짝 뛰지도 않는 그 순간 나의 가슴이 따끔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저곳 벌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일곱 살 난 나의 딸 일희, 일신이는 물론이고 두 조카들의 울음소리, 애들 엄마들의 비명소리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차로 도망 온 우리는 애들 옷을 벗기고 옷 속에 들어있는 벌들을 잡아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몸 속에 있는 벌들을 잡아내야 했습니다. 차 속은 애들 울음소리와 비명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사태를 파악해보니 일신이가 가장 많이 벌에 쏘여 10여군데.... 그리고 애들 작은 아빠와 나, 그리고 어린 조카가 많이 쏘였고 나머지는 한 두방 쏘였습니다.
땀으로 얼룩진 몸이기에 일단 집으로 가서 씻고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가면서 얼마전 벌초하러 갔다가 벌에 쏘여 죽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우리 가족이 뉴스에 나올 뻔 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나와 동생, 일신이와 조카 네 명은 병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우리는 벌에 쏘인 이유를 가지고 모두들 제 나름대로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으니 왜 자주 안 찾아오니 하면서 그랬다는 해석이 유력했습니다. 더구나 일신이가 가장 많이 벌에 쏘인 것은 그가 장손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추석의 밤은 휘영청 보름달과 함께 풍성했습니다.
처가인 강진에서 농사지으신 첫 수확인 햅쌀과 단감을 가득 싣고 어머니가 뭘 싸놓으셨다 길래 다시 해남에 들렀습니다. 3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혼자 시골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는 집 마당에 꿀벌을 키우고 그 꿀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날은 벌꿀과 함께 광주에서 내가 가져온 과일, 냉동실에 들어있던 생선, 내가 좋아하는 게장, 애들이 좋아하는 약호박 몇 개, 차에서 먹으라고 오징어 등을 트렁크에 가득 넣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막 골목길을 돌아가는데 뒤에서 어머니의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깜박 잊으셨나 봅니다. 뒤를 돌아보는데 차는 이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소리내어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항상 몸 건강하고, 신앙생활 잘하라는...
어머니 건강하세요.
덧붙이는 글 | 3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부쩍 늙어버리신 어머니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습니다.그러나 어머니는 오늘도 아버지가 은퇴후 키우셨던 꿀벌을 통하여 아버지의 흔적을 느끼며 정성을 다하여 키운 결과 아버지가 물려주신 6통의 벌을 이제는 22통으로 늘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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