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일색 지방미인대회 유감

등록 2001.10.09 19:38수정 2001.10.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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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에 들어서는 순간 도로 주변에 걸려 있는 태극기와 군기 그리고 다양한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군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여러 가지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어 누가 보아도 군 전체가 축제분위기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러 행사가 열린다고 하는 가평 문화예술회관에 도착했을 때 건물 앞에서는 장승깎기 대회와 짚으로 만든 수공예품 경연대회가 치러지고 있는 중이었다. 여러 고을에 축제를 가보았지만 참가자들이 저렇게 즐겁고 재미있게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참여하는 이나 구경하는 이들도 마냥 즐거워 보였으며 완성된 작품 또한 수준급이었다.

이를 뒤로 하고 문화예술회관 실내로 들어서자 낯설지 않은 현수막이 보였다. '제8회 가평아가씨 선발대회'라고 적혀 있었고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열심히 본행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열리는 여느 아가씨 선발대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행사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출연자들이 하나둘 소개되고 친구인지 가족인지 모두들 응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직도 이런 대회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마을청년회에서 나누어주는 안내 책자를 받아보고 읽었는데 여느 아가씨 선발대회와 다른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이 여성단체들의 반발에 고장아가씨 선발대회 자체를 폐지하고 있고 대회를 치르더라도 수영복 심사와 같은 성을 상품화한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종목은 삭제시켰는데 반하여 가평에서는 아직도 수영복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평에서는 여론의 반대가 심하지 않았구나 하고 단순히 생각하고 안내책자의 다음 페이지를 열어본 순간 놀랍고 이상한 점을 또 한 가지 발견했다. 본선 진출자 15명 중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학생이 10명이나 되는 것이었다. 그나마 졸업한 이들도 대부분 작년 졸업생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군 청년회에서 주최를 하고 군에서 후원을 하는 행사에 수영복을 입은 고등학생을 무대에 올려놓고 그 아이들이 연예인들이 하는 원색적인 춤을 따라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보며 박수를 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질 않았다.

안내책자에는 참가자들의 신체사이즈와 출신고교 생년월일 취미 특기 등이 나와 있었고 한쪽 귀퉁이에는 선발 기준과 수상자에게 주는 특혜 등이 설명되어 있었다.


선발기준은 한복 20점, 수영복 10점, 드레스10점, 교양 10점, 리허설 10점, 참석률 10점... 수상자에게 주는 특혜는 100만원 안팎의 상금 이외에 군 내외 방송 및 행사 활동, 2001년도 미스 경기선발대회 가평군 대표로 출전자격. 본인의 희망에 따라 취업 알선...

축사를 읽어주시는 내빈들은 한결같이 지식과 지혜를 겸한 여성인재를 찾아 군과 군에서 생산되는 특산물을 홍보하는 기틀을 만드는 뜻 깊은 행사라고들 하니 필자 또한 거기에 현혹되어 수영복을 입고 나온 참가자들이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은 잠시 잊을 뻔했다.


더군다나 이런 대회가 8년째 열리고 있는 장수행사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웠고 '인류에의 봉사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사업임을 믿는다'고 기조를 내세우고 활동하는 젊은 청년들이 이런 대회를 없어지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주최를 하고 있다니 더 마음이 아팠다.

그럼 우리는 이런 청년세대가 지나갈 때까지 이런 추한 아가씨선발대회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인가? 그날따라 무대에 서있는 여성들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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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통신 기자를 거쳐 오마이뉴스 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사 제보와 제휴·광고 문의는 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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