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대통령 참석 행사서 기습시위

등록 2001.10.13 18:26수정 2001.10.1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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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13일(토) 오후 3시 32분경 전북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소리축제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개막식 장소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 도착, 전용차량에서 막 내리는 순간, 이로부터 불과 20여 미터 떨어진 폴리스라인 바깥쪽 군중들 사이에서 구호소리와 함께 플래카드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식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경찰과 경호원들의 삼엄한 경계가 있었던 터여서 이같은 기습시위에 군중들은 일순간 동요하기 시작했다.

"쌀값은 농민값, 쌀 생산비 보장하라!"
"시가수매 빨리 하고, 중단기정책 수립하라"

이날 기습시위는 추수를 하다말고 뛰쳐 온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소속 15명의 농민들이 벌인 것. 이들은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경호원들 몰래 가슴에 품어 왔던 플래카드를 꺼내들고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농민들은 시위가 시작된 직후 경찰과 경호원들의 제지로 행사장 뒤까지 밀려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리'가 대통령에게 전해지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하며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날 현장에서 기습시위를 벌인 전농 전북도연맹 박흥식 사무처장은 "지금 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알리고 싶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기습시위라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며 "현재 400만석 추가 시가매입을 해도 농민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마당에 그 가격마저도 정해지지 않았고 15만 원을 웃돌던 쌀값은 14만원대로 주저앉은 형편이라 농민들의 가슴은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 대통령이 전주소리축제 공연장에서 들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살고 있는 농민들의 절박한 소리를 듣는 대통령이길 바랬으나 그렇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는 말을 전했다.

지금 농촌 들녘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하지만 추수의 현장에서는 수확의 기쁨보다는 내일에 대한 막막함으로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다. 오락가락 하는 정부의 쌀정책과 쌀값 폭락 등의 이유로 농민들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서려있다. 이날 소리축제 개막식이 있던 그 자리에서는 농민들의 절박한 '소리'는 한낱 '소음'으로 내몰리고 대통령의 귀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오케스트라의 소리'만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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