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학번인 나는 4학년 때였던 작년도에 대학신문에서 주최한 <대학문화 어떻게 일어서야 하는가?>라는 좌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97학번 단대학생회장의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었습니다. 분명히 해야할 것들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어찌보면 안타깝고, 어찌보면 신파 개그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말을 듣고 바로 반박을 했었다.
"저는 '상실의 시대'를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94년도에 읽었습니다. 94년도에 이미 상실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2000년도에도 여전히 상실의 시대라면 그 동안 대학 활동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너무 표현이 공격적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편집자가 별로 영양가 없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정리된 기사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토론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바로 이 논쟁이 대학문화 위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으로만 봐도 무수히 많은 대학활동가들, 무수히 많은 대학 내의 저널리스트들이 대학문화의 위기에 대해 청진기와 돋보기를 갖다 대며 진단을 내리고 또 내렸음에도 아직까지 상실의 시대 타령을 하고 있다면 바로 그 위기 진단능력의 결핍이 대학문화의 위기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좌담 기사와 함께 실린 다른 기사 역시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를 인용하더니 결국 이렇게 결론짓는다.
"잔치가 계속될지도 모른다고 희망하던 시인은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는 푸념으로 시를 맺고 말았지만, 역사는 디디알(DDR) 앞에 열지어 3행시를 짓고 있는 2000년의 대학생들에게 “무언가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것은 집회에서의 뜀박질일 수도, 열린 공간에서의 힙합댄스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잔치를 누가, 어떻게 계속해 나갈 것인가. 그 잔치상에 대한 고민이 대답없는 메아리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똑바로 이야기하자면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 역시 이미 94년도에 이야기할 만큼 다 했었다. 왜 6년이 지나도록 문제의식을 그 이상으로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나에게 상실의 시대를 이야기했던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갔던가? 바로 그 대답없는 메아리를 부르는 축적되지 않는 고민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체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한 대중소비문화의 대학 내 침투가 문제이고, 일상적으로는 시대의식이 부족하여 자기 앞길이나 찾아가려는 보수화된 대학생의 머리가 문제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이 떠들었던가?
그렇다면 최소한 20세기가 다 가기 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의 깊이를 더해줘야 하는데 21세기가 되어도 똑같은 위기의 진단만 내리니, 나는 오히려 그 위기의 진단이 위기를 부르는 것이 아니냐고 묻게 되는 것이다. 같은 기획글의 결론에서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는다.
"대학인의 일상이 바뀌지 않고, 다른 방식의 삶을 일구어내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아무리 멋진 행사와 기획들로 '재미있다'고 한들 순간의 일탈과 단순한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가 길 옆으로 비껴섰다가 일순간에 제자리로 돌아온다면 잠시 딛고 섰던 자리에 길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 메카니즘의 일부라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려는 조그만 노력들이다."
나는 이 글이 의미하는 바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야말로 집회 하루 동안만은 세계자본을 다 때려잡을 듯이 덤비다가도 일상으로만 돌아가면 흥청망청 패배주의로 돌아가는 모습을 대학 생활하면서 어디 한두 번 봤겠는가? 나도 일상으로부터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가 아니겠는가? 일상의 변화란 한 개인의 몸과 머리를 죄다 뜯어고치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겠냐는 것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방법을 그 누가 제대로 제시했던가?
90년대 중반 이후의 대학문화는 말이 좋아 대학문화이지 질적 수준으로 보면 유치원 학예회 문화나 다름없다. 문화적 역량이 쌓일 만한 3-4학년만 되면 다들 진로 문제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1-2학년 중심으로 판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대학문학은 수상작을 내기도 힘들며, 대학언론은 같은 대학생들에게조차 외면 받으며, 대학 영화 동아리는 영화 생산 유통을 포기한 지 오래다.
그게 바로 해마다 늘어나는 대학생의 수, 그리고 능력 위주의 채용으로 인해 대학생이라는 명찰 하나로 보장되었던 사회진출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대학의 사회적 위치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화비평가 이동연도 '대학문화의 생성과 탈주'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학생들은 재학 중에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졸업반이 되면 자신의 전공에 맞는 취업공부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동아리 활동은 말 그대로 취미 활동의 연장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간혹 가다 방송국이나 신문사, 영화, 만화 등의 동아리 활동이 자신들의 직업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문화활동과 자기 전망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일단 위기의 진단을 이렇게 일상적인 차원으로 내려주면 대안 역시 이에 맞추어 내놓을 수 있게 된다.
"대학문화운동은 대학문화만을 위한 실천을 생산하는 것이 아닌 대학문화를 통한 사회적 문화기획가, 활동가를 생산하는 많은 장치들을 개발해야 한다. 사회적 문화기획자와 활동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뉴미디어/테크노 문화환경의 도래로 인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문제는 대학문화운동이 대학문화의 대중 주체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적 취향과 감수성을 자기화하는 계기들을 만들어주는 것을 넘어서 주변부로 탈락한 다수의 운동주체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어두운 문화적 매니아들에게 문화의 장을 매개로 해서 다시 사회변혁의 희망을 안겨주는 물적 토대를 어떻게 마련해줄 것인가 하는 데에 있다."
이동연은 위 책의 다른 글에서 학술 및 교육 등 여러 가지 대학문화 기획 프로그램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지만 나는 그보다는 그가 98년도부터 뉴미디어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더 주목한다. 바로 그 희망의 물적 토대를 뉴미디어로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자, 그럼 이동연의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뉴미디어의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진단할 것은 다 진단했고 대안의 방향도 나올 것은 다 나오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97학번 이하의 학생들이 또 다시 '상실의 시대'라느니 '서른, 잔치는 끝났다'느니 하며 복고주의로 회귀해선 끝없는 패배의 유희만이 남을 뿐이다.
이동연과 함께 위의 책을 집필한 권경우는 사이버 공간의 가능성을 언급하며 문화 웹진 '스키조', '샨티', '스폰지'를 예로 들었다. 이들 웹진은 그의 글이 쓰여진 1998년도에는 활발히 활동했었지만 지금은 권경우의 우려대로 이 웹진들은 폐간되었거나 어설픈 상업주의 웹진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다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화 웹진뿐 아니라 '딴지일보'의 성공을 기대어 출발했던 여타의 네티즌 시사웹진 역시 '대자보' 하나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물론 이러한 웹진의 대안 정신을 총화시킨 '오마이뉴스'가 날로 발전하는 성과를 내긴 했지만 제 2의 '딴지일보', 제2의 '오마이뉴스'가 연달아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권경우는 "각 언론사가 막대한 자본을 투여해 웹진을 창간함으로써, 이러한 독립적인 웹진들의 자생성이 위협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라는 원인 분석을 했지만 직접 웹진에 참여하고 있는 내 경험으로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웹진이 대안 미디어로의 가능성을 담보한 것은 이론적으로는 한 달에 10만원 정도의 도메인과 서버 비용만으로도 4천만 국민에게 무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디 온라인 세상이라고 그렇게 만만하겠는가? 생업에 바쁜 일반 직장인들로서는 웹진 일에 전념할 수가 없었고, 그들이 모여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1년 정도는 의지로 버틸 수 있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이를 억지로 끌고 가기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여기서 바로 아직도 살아있는 대학의 에너지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생업의 부담이 없는 수많은 학생들, 4평 이상 되는 과방 및 동아리 방, 어디든지 널려 있는 컴퓨터 및 공짜 서버 등 대학은 네티즌 웹진이 그토록 갖추고 싶어한 물적 조건을 이미 확보해놓고 있다. 나는 오히려 이런 조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이다.
네티즌들의 힘으로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을 왜 그토록 저항적인 공간이라는 대학이 주도하지 못하고, 디지털 카메라로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인터넷 영화를 왜 대학영화 동아리가 아닌 상업 사이트가 먼저 제작하도록 선수를 빼앗기냐는 것이다.
한 발 늦긴 했지만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의 시사웹진 '듀'(dew.ewha.ac.kr)를 시작으로 한양대학교 언론학과의 시사웹진 '언론세상'(www.unsei21.com)이 뒤를 이으며 대학웹진이 사이버 공간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단지 미디어에 관심이 있을 언론관련 학과뿐 아니라 경희대학교 우주학과 웹진 'EOS'(myhome.netsgo.com/khvnova), 단국대학교 역사학과 웹진'History'(www.history.co.kr)와 같이 분야별 전문웹진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대학웹진들은 1년 이상 유지되고 있을 정도로 탄탄한 재생산 구조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런 대학웹진들이 아직까지는 취미 여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공간의 특성상 얼마든지 무한히 조직을 확장할 수 있음에도 소규모 공동체라는 장벽 때문인지 이 이상 더 치고 나가 제도언론과 맞설 만큼 힘을 키울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운영 마인드를 가다듬으면 사회과학대학의 정치경제 웹진, 예술대학의 문화예술 웹진으로까지 영역을 더 확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특히 전문 웹진의 경우라면 졸업생과 대학원생까지 포함하여 인원을 100명 이상 늘려 학회와 문화활동과 미디어를 결합시켜 기존 언론과도 경쟁해보겠다는 패기를 발휘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런 패기가 바로 2001년도 판 대학의 청년문화 저항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웹진이 이 정도 수준으로까지 발전하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와의 열린 소통을 할 수 있다. 그럼 대학 내의 활동만으로도 언론사, 문화산업 기업, 인터넷 기업 등에 특채 채용될 수 있도록 각 매체의 힘을 합쳐 강력하게 요구하라. 아니면 아예 과감하게 창업을 하든지. 그래서 4학년만 되면 취업전선으로 빠지는 대학활동가들을 붙잡아라. 그것만 되면 활동의 경험을 통해 대학원이나 시민단체 혹은 기업에 진출하여 거기서 거꾸로 대학과 소통하며 대학시절의 정신을 사회로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당신 자신이 대중인 한에서 전위에 보다 밀착해야 한다. 전위란 누구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했던 대학문화 활동가 김남훈은 지면 매체를 접고 서울대 인터넷 미디어 '스누나우'(www.snunow.com)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매체든 공연이든 영화든 만화든 모든 활동을 담아낼 수 있는 사이버 공간, 바로 그 공간을 통해서 대중에 접근하는 전위라는 어려운 문제가 쉽게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를 끝장내고 싶은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동아리방의 컴퓨터 한 대로 시작할 수 있다.
[인터뷰] 왜 이제껏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야 한다.
창간 1년을 맞아 9월 10일로 예정된 대대적인 사이트 개편을 한창 하고 있는 서울대 문화예술 사이트 '미인'(www,meizine.com) 편집장 임고은 씨를 만나보았다.
- 현재 대학의 활동 상황은 어떠한가?
"한 마디로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극소수의 몇몇 활동가를 제외하고는 자기 앞길 찾기 바쁘다. 특히 3학년만 넘어서면 활동가들조차 포기하고 나가고 있다. 그러니 학회 하나를 해도 1년 이상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그러면서 뭘 해도 안 된다라는 패배주의 의식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 왜 대학이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보는가?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대학생들의 특권적 지위가 사라지면서 신입생 때부터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 대학 내에서 무언가 활동을 할 여력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활동가들이 예전에 해오던 것만을 그대로 답습하다보니 새롭고 창의적인 실험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혹시 그런 의지가 있는 학생들이 있다 해도 오히려 대학 중심 밖으로 밀려나니 대학문화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 웹진 미인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미학과 학생들은 문화예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나, 마땅히 학내에서 풀어낼 공간이 별로 없었다. 왜 미인을 기획했느냐고 묻지 말고 왜 이제껏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야 한다. 우리가관심있는 것,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만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미학과 학부생 8명으로 시작했다."
- 왜 인쇄매체가 아닌 웹진으로 시작했는가?
"95년도와 98년도에 미학과 종이 신문이 있었다. 3개월을 못 버티고 무너졌다. 인터넷은 기술적으로는 양적 제한이 없는 무한한 공간이다. 미학과 학부생으로 시작한 미인이 지금은 전 단과대학 학생들 30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도 미인이 인터넷 매체였기 때문이다. 또한 미학과 학생들끼리 돌려보다 지쳐 망한 종이신문과는 달리 웹사이트는 시작부터 외부와의 소통이 가능한 매체이므로, 우리의 활동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웹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오프라인 책자도 내고 있고 내년부터는 정기적인 종이 잡지를 내서 유통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 미인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비전은?
"음악, 미술, 공연, 서평, 문학, 건축팀 등 30명의 편집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학내에서의 반응이 너무 좋아 내년 초까지 대학원생을 포함해서 100명 이상의 편집위원을 확보하여 문화예술과 인문학 전 방면의 학술 언론 단체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돈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재정적으로도 인문대학의 지원금과 온라인 서점과의 유료 컨텐츠 계약으로 다른 단체보다 넉넉한 편이다.
미인은 밖에서 보듯 단순한 웹 잡지가 아니다. 학생들의 학술과 취미와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풀 수 있는 오프라인 교육단체나 마찬가지이다. 웹잡지는 이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지금 당장 보다는 내년을 지켜보라. 학생들이 영향력 있는 매체를 확보하게 된다면 대학의 병폐인 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권력 문제 재정립, 인문학의 위기 극복 등등 미인이 해야할 일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 미인을 벤치마킹할 대학의 활동가들에게 한 마디한다면?
"우선 정확히 뭘 하고 싶은지 찾아내서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한다. 그리고 시작할 때부터 대학에만 머무를 생각을 하지 말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져야 한다. 학부생, 대학원생, 졸업생이 함께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내서 제도권과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울 생각을 해야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 2001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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