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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북쑥 같은 머리를 정비하러 동네 미용실에 갔었다. 서울 생활 십수 년에 단골이라고는 없었는데 요즘 내가 다니는 곳은 꽤 정이 들었다. 언제나 한가로워 기다릴 필요가 없어 좋고 이것저것 묻지 않아 좋고 담배가게를 겸하고 있는 그 집의 가난이 좋았다.
어제도 나는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웬걸 손님이 그것도 두 사람이나 있다. 오늘 머리 정비하기는 틀렸다 생각하고 나가려는데 미용사 아주머니가 자리에 앉으란다. '다 끝났단 말인가?'생각하며 두 손님을 번갈아 쳐다보는데 닮았다. 자리에 앉아 머리에 세수대야 같은 용기를 둘러쓰고 있는 여자는 딸, 대기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는 어머니다. 두 사람이 어찌나 닮았는지 딸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나이가 들어 어머니가 된 것만 같다.
딸은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이려나본데 이제 막 초벌과정이 끝났나 보다. 짧은 치마에 다리를 꼬고 앉았는데 엄지발가락에 조리를 끼워신고 덜렁덜렁 흔들고 있는 것이 영 모범생은 아닌 듯, 거울에 비친 어머니를 째려보며 "이거 볼 거야?"하고 자기가 보고 있던 여성잡지를 들어 보인다. 어머니는 딸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미용사에게 얼마냐고 묻는다.
"사만오천 원요."
"뭐가 그렇게 비싼가요?"
"파마랑 염색이랑 각각 이만오천 원씩인데 오천 원 깎아드리는 거예요."
"그래두…."
어머니는 할 말을 잃고 가방에서 얇은 하얀 봉투를 꺼내 그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데 아마도 월급 봉투인 듯하다. 미용사에게 돈을 건네면서 속이 더 상하나 보다.
"이제 다시는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지 마. 니가 알아서 해."
"언제 해달라고 한 적 있어?"
"왜 없어? 지난 번에도 해주고 지지난 번에도 해주고……"
"지난 번에 이만 원 보태준 거?"
"나 갈테니까 너 혼자 하고 와."
어머니가 찬바람 소리 나게 사라져 버리고 나니 상대를 잃은 딸은 시무룩해져서 어머니 없는 거울만 쳐다볼 뿐인데 그 속에는 응당 세수대야 같은 용기를 둘러쓴 그녀 자신이 담겨 있지 않은가. 딸은 조리를 까닥까닥하며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
사만오천 원이면 작은 돈은 아니다. 큰 돈도 아니지만 이제 중학생이나 되었음직한 그녀에게는 적지 않는 액수일 것이다. 거리나 지하철에서는 파마나 염색한 소녀들을 보면서 벌써 기성세대가 된 눈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마냥 그녀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그녀들이라고 왜 고급스럽고 세련된 머리단장을 싫어하리? 텔레비전이나 영화는 최신유행을 보여주는데 여념이 없으니 어린 마음들이 따라가고 싶어 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일 나가는 어머니가 얇은 봉투를 벌려 비싼 염색비를 치르는데 딸의 마음이라고 편할 리 있을까? 그 딸이 혼란스럽게 성장하여 다시 어머니의 가난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어머니를 노려보던 눈도 안쓰럽기만 하다. 세상은 화려한데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 참으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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