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

등록 2001.10.27 12:08수정 2001.10.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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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적당하게 따뜻한 25일 오후 수원 장안공원 옅에 있는 선경도서관은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40대의 아저씨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까지 누구를 막론하고 책에 얼굴을 파묻고 공부하는 사람들로 무척 조용했다.


대학교 시험 기간도 끝나고 해서 한가할 줄만 알았던 생각은 보기좋게 어긋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취업준비를 하러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잠시 후였다.

S대 무역학과를 96년에 졸업했다는 김모씨 (남. 29)는 기자가 다가가자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다 이내 밝은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의 매일 이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한다는 김 씨는 관세사 2차 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ROTC로 지원해 지난 98년 제대했지만 자신이 졸업할 96년도만 해도 이렇게 취업이 어렵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97년 IMF가 터졌을 당시에도 저는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지는 솔직히 몰랐죠. 제가 제대할 때쯤이면 형편이 나아질 줄 알았어요"라며 멋적게 웃는다.

제대하고 나서 잠깐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다가 적성에 안 맞아 사직서를 제출한 후 동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동기들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전공과 상관없이 세무사나 회계사를 준비하고 있고 취업난이 계속되자 대학원 진학으로 방향을 선회한 친구들도 부지기수다.


"작년의 경우 10군데 정도 이력서를 보내면 최소한 50% 정도는 면접 보라고 연락이 왔었는데 올해의 경우 6군데 이력서를 냈지만 이제는 면접조차도 보지 못해요"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관세사 시험을 준비했지만 그것도 잠시 곧 이어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자신의 목을 조여 왔다고 말한다.


"이제 내년이면 30살입니다. 시험에 붙으면 그런 걱정은 없어지겠지만 붙는다는 보장도 없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담감도 커지고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가장 죄송하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부는 계속해서 취업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이 김 씨에게는 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다.

"신문이나 TV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 등에서 사람을 많이 뽑는다고는 하지만 전혀 피부로 느낄 수가 없어요"라며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자동차를 만드는 한 대기업에서 300명의 신입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자 이에 응시한 사람은 모두 5만여명, 무려 16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대학에만 붙으면 취업까지 보장되는 줄로만 알았던 시대는 이제 가버린 지 오래다. 이제 대학에 합격해도 취업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산이 졸업생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김 씨는 (남. 45) "중.고등학교 시험기간 때는 학생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요즘에는 취업준비생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며 "나도 자식 키우는 입장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죠"라며 아쉬워 했다.

"기자님은 젊은 나이에 취업하셔서 마음 편하시겠어요"라며 다시 열람실로 들어가는 김 씨의 발걸음은 그래서 더욱 무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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