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자료집 시리즈 5 - 서울은 '문화사각지대'

최재승 문광위원장 <서울 문화공간 현황 보고서> 발간

등록 2001.11.12 13:05수정 2001.11.12 17:36
0
원고료로 응원
20일간에 걸친 국정감사가 끝이 났다. 그러나, '이용호 게이트'를 둘러싼 무수한 의혹과 공방 속에 정작 정책감사를 충실히 준비했던 의원들의 질의는 쉽게 묻힐 수밖에 없었다. 국감이 열리기 전 열린 한 토론회 자리에서 "아무리 정책감사를 열심히 준비해도, 언론이 잘 다루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한나라당 관계자의 우려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정기국회를 맞아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정성을 쏟아 내놓은 주요 정책자료집들을 소개한다.

인구 1100만의 세계적인 도시, 지난 88년 올림픽을 개최한데 이어 내년이면 2002월드컵을 일본과 함께 공동 개최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러나, 우리나라 중심부의 문화 인프라에 대한 문화관광위원회 최재승 위원장의 평가는 '부끄러움', 바로 그 자체다.

매년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맞아 문화관광 분야 현안에 대한 자료집들을 발간, 호평을 받았던 민주당 최재승 의원은 지난 9월에도 서울 문화공간의 현황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펴내 주목을 받았다.

서울시에 소재하는 '공연장', '국·공립·사립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문화의집' 등 관련시설과 각 자치단체의 문화예산을 바탕으로 조사·분석한 이 자료집에 따르면 문화 인프라에 있어서도 강남과 강북 지역의 빈부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게 최위원장의 결론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오페라, 뮤지컬, 발레 등 수준 높은 대형 공연이 예술의 전당(87년 설립)에 집중되고, LG아트센터·현대자동차 아트홀, 한전 아츠풀센터 등 첨단 시설을 갖춘 공연장이 강남권에 잇따라 문을 열면서 문화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

이에 비해 강북지역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국립국장 해오름극장, 호암아트홀, 문예회관 대극장 등 대부분이 90년대 이전 지어졌으며 객석 점유율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료로 제시한 운영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예술의 전당 매출액이 200억여원에 가까운데 반해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국장은 각각 80억여원과 9억7천여만원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시 문화인프라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선진국과의 차이는 더욱 현격하게 드러난다. 최위원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의 대표적 문화시설은 지난해 12월 현재 공연장 133곳, 영화관 177곳, 박물관 66곳(대학박물관 13곳 포함), 도서관 37곳(시립 포함), 문화의집 19곳, 미술관 16곳(화랑 제외)에 그치고 있다. 도서관 1곳 당 277,670명, 박물관 1관 당 155,664명, 영화관 1관 당 58,044명인 셈.

이를 세계 주요국가와 비교하면 그 빈약함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문화 선진국인 서구 유럽의 독일(도서관 1관당 인구수 4,347명·박물관 1관당 인구수 19,702명), 오스트리아(도서관 1관 당 3,249명·박물관 1관당 인구수 10,726명)등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가까운 일본은 박물관의 경우 1관 당 154,615명으로 우리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도서관 1관 당 인구수는 83,754명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문화시설의 부족현상에도 불구하고, 문화인프라의 특정 지역 편중과 빈곤 상황은 날로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게 최위원장의 지적이다. 자료집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막에 풀 한 포기 있는 정도'로 빈약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이야기다.
문화시설의 분포현황과 문화예산에 따라 최위원장이 분류한 서울시 자치단체의 등급은 다음과 같다.

▲최대 취약지역 : 금천구, 강북구, 구로구, 도봉구, 은평구
▲취약지역 : 동대문구, 성북구, 성동구, 중랑구, 양천구, 동작구, 관악구
▲양호지역 : 서대문구, 노원구, 영등포구, 마포구, 용산구, 광진구, 강동구
▲최대 양호지역 : 종로구, 중구,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종로구와 중구는 영화관, 박물관 등이 집중돼 있어 오랫동안 서울 문화의 중심지역으로 자리잡아 왔고, 경제력이 우월한 강남의 '최대 양호지역' 역시 90년대 이후부터 고급대형문화시설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이에 반해 70년대 산업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후 침체되어 있는 공단지역인 금천·구로 지역과 80년대 이후 주거 베드타운으로 급속히 개발된 강북·도봉 지역은 문화시설이 매우 취약하여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게 최위원장의 설명이다.

또한 보고서는 지역의 공공 문화시설 통계로 잡힌 서울시의 23개 구민회관도 주말엔 대부분 예식장으로 활용되는 등 시민 문화공간으로서의 활용도는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현실에 대해 최위원장은 "문화창의력과 예술활동의 기본이 되는 문화시설에 대해 정확한 문화통계조차 존재하지 않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며 "지역주민의 문화활동 참가와 문화 향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국가 차원의 장기적 계획 수립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최근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한류(韓流)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최위원장의 두 번째 정책보고서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 일대를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에 대해 "우리 대중 문화가 다른 민족의 정서를 파고드는 새로운 현상은 분명 자긍심과 막연한 기대를 안겨준다는 점에서 환영 일색의 분위기는 이해할 만 하지만 돌고 도는 유행의 한 고리일 수도 있다"며 "화려한 정책발표보다는 연예인이나 업계가 시장 진출에서 겪는 애로점을 해결해 주고 제도상의 제한을 풀어주며 중국전문가들을 양성하는 등 조용하고 차분한 지원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류'에는 정작 한국의 문화가 없고, 오히려 중국 내 조선족들이 간직한 전통에서 한국의 문화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며 "중국에 보급되는 한국대중문화가 미국과 일본 대중문화의 답습은 아니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우려도 잊지 않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