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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상황부에 '원서교부'라는 사유로 조퇴 신고를 하고 거리로 나서니 교실 창 밖으로 샛노랗던 은행잎이 발 밑으로 모여든다. 어지러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듯 나뭇 가지에선 버티다버티다 못 내 날리는 은행잎이 발등을 덮는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누군 이 시험 보고 싶어 봅니까? 그래도 합격만 하면 보장되는 거 아닙니까. 뭐 합격만 하라지요. 그리고
뭐 납부금 거 나오면 빚을 내서라도 다녀야지요."
경기도 중초 원서교부 첫 날, 기간제 교원을 하는 33살의 주부는 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왔다면서 젊은 사람(갓 졸업한 학생이나 졸업 예정자를 두고)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단다. 표시과목이 '국어'인 자기는 불리하겠다며 중등 임용고시를 보기엔 너무 공부가 안 된 상태라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면서 작은 호들갑까지 떤다.
잔디밭, 체육관 앞, 심지어는 벽에까지 대고 원서접수를 하는 현장은 저물어가는 학교 운동장에 커다란 그림자까지 만들고 있었다. 혹여 중초 시험을 저지하려는 교대생과의 몸싸움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며 여기저기 수군대는 사람들은 그럴 일이 있겠냐는 지나는 사람들 말에 안심을 한 듯 접수를 하고 있었지만 모두들 께름칙한 말 한 마디씩은 내 뱉는다.
"대학 나오고 또 대학을 다녀야하는 것도 화가 날텐데, 대학원 졸업하고 다시 대학에 편입하는 심정은 참......"
그런가 하면 사회 전공자는 "일단 붙고 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이 가르치는 일이야 중학교 초등학교 가릴 일이 아니니까요. 전 차라리 초등학생이 더 좋습니다" 라면서 이번이 어쩜 기회가 아니냐고 한다.
대부분 주요 과목이라 불리워지는 "국, 영, 수" 를 제외하고 몇 명 뽑지도 않는 과목의 사람들이 지치다 못해 중초 시험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군다나 2년이란 세월은 대학원 다시 다닌다, 재수한다는 심정으로 눈 딱 감고 다니면 그만이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험천국. 시험에 찌들린 사람들은 불안해서인지 원서접수 창구에 서있으면서도 미리 적어온 교육학 수첩을 놓지 않았다.
둘러보니 열 줄 넘게 만들어 서있는 창구엔 직장에 다니는 아내의 손을 잡고 원서 접수를 하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주부, 대학원을 나와 기간제 교원을 하는 딸을 위해 원서를 접수하러 온 엄마의 모습도 보였다.
아직 줄을 서지 못한 사람들은 부랴부랴 이만오천 원 상당의 수입인지를 사고 구비된 서류를 작성한다. OMR카드를 작성해 본지 오래인 사람들은 모자라는 책상 대신 구령대 옆으로 나있는 시멘트 바닥 위에서 저마다의 인적사항을 적는다. 한 편으론 이미 접수를 끝낸 사람들이 옷자락을 휙 감추며 사라진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의 메마름처럼 어두운 얼굴 언저리에 작은 희망을 달고 교문을 빠져나가는 듯 했다.
수원역에서 내려 버스로 30여 분을 가야하는 그 곳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꿈처럼 원서 접수를 하고 오니 찌그러진 어떤 이의 사진과 버려진 컴퓨터용 싸인펜이 흙과 함께 밟힌다. 해는 이미 졌고 약속했던 오후 6시 마감시간은 이미 넘고 대략 1300여 명의 접수가 이뤄진 듯 하다.
경기도에는 교대가 없기 때문에 한국교원대학교와 인천교육대학교의 원서를 대행 접수하고 있다. 오는 22일 목요일까지 접수를 받는 데 첫 날 접수율이 이렇게 높을 걸 보면 중등 시험과의 복수 지원 현상이 많아 어쩌면 허수가 많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1,2차 지망에서 우선 순위를 인천교대에 두는 것으로 보아 학교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덧붙이는 글 | 어디서부터 교육을 이야기해야할 지 모르겠다. 다 입장을 가지고 있으니. 원서 접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 착잡하다. 돌아가는 버스 속에 함께 탄 사람들이 술렁거린다. 조바심과 희망 한 쪽씩을 손에 쥐고 가는 기분. 접수를 했다고 시험을 꼭 보리란 법도 없을 것이고, 막말로 그깟 선생님 안 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발목이 묶이는 지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어깨와 머리가 내려앉는다.
중등의 자격증을 가지고 초등학교로 가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합지졸 우후죽순격인 교육제도 앞에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마치 머리와 가슴은 산 속 어디쯤 묻어두고 다니는 것 같다. 울 수도 없다. 한 선배가 그랬다. 바깥에서 교육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봤자 바깥 목소리일 뿐, 직접 제도권으로 들어가서 할 말을 하고 행동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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