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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일 오후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 앞에서 있은 '이문열 책 반환 행사'에서 '조시(弔詩) 한 편이 낭송되었다. 명지대생 김문경 씨가 낭송한 그 조시의 제목은 '한 시절 천재 작가의 곡학아세를 장송하며'다.
시의 구분도 '조시'이고, 시의 제목에도 '장송(葬送)'이란 말이 들어 있으니, '이문열 책 반환 행사'가 저 족벌 언론들에 의해 그저 '책 장례식'으로만 불려지도록 하는데, 이 시는 일정 부분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이 조시를 지은 사람이 바로 나 지요하임을 오늘 밝힌다. 아울러 당시에 내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그 비겁함을 고백하며 모든 깨어 있는 생령들 앞에 사죄를 드린다.
'이문열돕기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부산의 화덕헌 씨로부터 처음 작시를 부탁 받았을 때는 약간의 당혹감이 없지 않았다. 자동차 운전 중에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는데,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응낙하는 일도, 거절하는 일도 정말 쉽지가 않았다. 뜻밖에도 화덕헌 씨가 내게 그런 부탁을 한다는 것에서, 둔중한 감동 같은 것도 있었다.
"이문열 씨와 만날 일이 없는 비문인이라면 구애받을 필요가 없겠지만, 같은 문인의 처지에서 그런 일을 하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우시겠습니까. 그것을 잘 알면서도 선생님께 부탁드리는 것은, 아무래도 문인이 시를 지어야 시도 시다워지고 여러 가지로 뜻이 살 것 같아서요"하면서도 화덕헌 씨는 "거절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했다.
이윽고 내가 응낙을 하자 화덕헌 씨는 또 "선생님께서 불편하시다면, 선생님의 이름을 밝히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내 처지와 심정을 깊이 배려해주려는 의지가 참으로 역력했다. 나는 그의 예의 바른 태도며 정중한 음색에서 그가 대단히 사려 깊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이름을 밝히거나 감추는 문제는 마지막 순간에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시를 지었다. 시를 지어 행사 바로 전날 밤 화덕헌 씨에게 메일로 송고를 하면서 나는 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비겁하지 않느냐는 아내의 의견도 뿌리치고 나는 내 작고 알량한 이름을 감추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비겁하지 않느냐는 아내의 말을 길래 내 뇌리에 달고 살았다. 그렇다. 나는 참으로 비겁했다.
나의 그 비겁함이 오늘 좀더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을 청산하기 위해 내가 지었음과 함께 그 시를 오늘 세상에 공개한다.
당시에 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한 구구한 변명은 늘어놓지 않겠다. 다만 오늘 그 시와 내 이름을 발표하게 된 확실한 연유는 말하겠다.
이문열의 최근 소설에서 그가 소설을 복수의 도구로 삼는 추태를 뒤늦게 목격하면서 그의 시야 밖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문열이 라디오 방송에서 '책 반환 행사'를 주도한 사람들은 독자가 아니라 '운동권'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는 운동권이 아님을 천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물론 운동권을 내가 이문열 씨처럼 온통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평소 존경하던 박완서 선생님의 망발에 가까운 최근 발언들을 접하며 나 같은 피라미 작가가 시 한 편을 놓고 이름 밝히는 걸 두려워한다는 건 너무도 격에 맞지 않는 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문열의 '상처'를 지극히 염려하면서 (나는 아직 그 '상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이문열의 그런 상처에도 마냥 침묵을 지키고 있는 문학단체들의 무감각을 통박했다. 일종의 그 '선동'에 나는 묘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비록 문단 말석에 머물고 있는 무명에 가까운 작가지만, 어느 정도 사리 분별은 할 줄 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 '내 동갑네 이문열 선생께'라는 글을 써서 이문열 씨와 대비되는 내 생각과 신념을 확실히 한 바 있다.
언론 개혁 의지를 다시 한번 좀더 확실히 가다듬기 위해서는 이문열 씨에 대한 논의가 필요불가결한 과제임을 새롭게 확인한다.
11월 3일의 '이문열 책 반환 행사' 때 낭송된 '조시' 한 편이 어느 쪽으로든 큰 비중을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가 의미심장한 시라고 자부한다. 내 일찍이 그런 시를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진짜 조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내 개인으로서는, 내 인생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시일 것으로 믿는다.
안티조선, 더 나아가 언론 개혁의 시대적 사명을 스스로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조시'로 표명된 그 시를 독자들 앞에 제시한다.
<조시(弔詩)>
한 시절 천재 작가의 곡학아세를 장송하며
새 천년기의 첫해가
어느덧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수확과 조락의 변주곡으로
무릇 생령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만추의 중머리
2001년 11월 3일
민초들의 결의가 찬란한 슬픔의 띠를 두르고
너울너울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날
뜨겁고도 정갈한 슬픔 속에서
새 희망이 힘껏 용솟음하는
기쁜 이별의 날
한 시대의 난분분한 곡절이
한 고비의 나래를 접고
장엄한 의미의 꽃을 피우는 날
엄혹한 독재 시절
칠흑의 어둠 속에서도
진실과 거짓을,
정(正)과 사(似)를 분별하여 온
우리 겨레 슬기의 눈들이
마침내 거친 풍우의 둔덕 위에 서서
또 한번 정의와 희망의 이름으로
지성의 새 이정표를 세우는 날
민족혼과 자유혼을 집어삼킬 듯이
저 일제로부터 이어진 기나긴 세월을
광기의 사슬로 지배해 온
그 혼돈의 질곡, 안개 무리 속에서도
부릅뜬 눈빛을 푸르게 지켜온
삼천 리 강산의 모든 생령들이시여
오늘 이 자리에 세워진 시대의 이정표 앞에서
우리가 하나하나 내던지며 부르는
우리의 기쁘고도 슬픈 장송곡이
거센 바람이 되게 하소서
저 편견과 아집의 성곽 위에서
오늘도 도도히 나부끼는 몰염치의 단색 깃발로부터
지역감정 조장의 술수를
이념의 올가미, 색깔론의 묘수를
침소봉대, 왜곡, 오보, 적반하장
끊임없는 기만과 권력욕의 만용을
저 태평양 바다로 날려버리게 하소서
한 시절을 장식했던 한 천재 작가의
천박한 곡학아세
시대정신에 눈이 먼 타락한 지성도
티끌처럼 날아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겨레의 생령들이시여
오늘 여기에서 뜨거운 불길로 승화하는
단장(斷腸)의 장송곡이
동해 남해 서해의 힘센 너울이 되게 하시고
백두산과 한라산을 잇는
기쁨과 평화의 메아리가 되게 하소서! *
(2001년 11월 3일 '부악문원' 앞에서 명지대생 김문경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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