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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자료집 시리즈 7 > 김민석 의원 <소방공무원 근무 여건 실태 조사> 보고서 발간

등록 2001.11.26 14:36수정 2001.11.2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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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여론과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속에 20일간에 걸친 국정감사가 열렸다. 그러나, '이용호 게이트'를 둘러싼 무수한 의혹과 공방 속에 정작 정책감사를 충실히 준비했던 의원들의 질의는 쉽게 묻힐 수밖에 없었다.

국감이 열리기 전 열린 한 토론회 자리에서 "아무리 정책감사를 열심히 준비해도, 언론이 잘 다루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한나라당 관계자의 우려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정기국회를 맞아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정성을 쏟아 내놓은 주요 정책자료집들을 소개한다.

'불'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계절, 겨울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13년만에 태풍없는 한 해를 보내 재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하반기를 보냈지만, '화재'에 대한 감시와 예방의 끈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게 관계자의 지적이다.

행정자치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만 모두 3만4844건의 화재가 발생해 사망 531명, 부상 1853명의 인적 피해와 1500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정작 화재진화와 구조활동에 애쓰는 소방공무원들의 근무 여건은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그러다, 올 3월 홍제동 화재사고 진화과정에서 소방관 6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친 뒤에야 이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이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지난 95년 이후 화재·구조·구급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은 모두 38명. 이와 함께 735명이 이 과정에서 다쳤다. 그만큼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에 부딪힐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생활해야만 하는 소방공무원들의 육체적·정신적 피로도는 상상외로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난 9월 정무위 소속 민주당 김민석 의원이 내놓은 <소방공무원의 근무여건에 대한 실태 조사보고서>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자료집은 크게 ▲홍제동 사고 이후의 변화와 한계 ▲한국의 화재·구조·구급 현황 ▲소방공무원의 여건과 실태 ▲소방예산 현황과 개선방향에 대한 논의 ▲구급업무의 급증과 담당 인력의 부족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따르면 지난 3월 사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소방공무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과 수당을 개선, 인상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하고, 이들에게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를 하라"고 지시했지만 아직도 개선할 부분이 많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민 여론에 밀려 행정자치부가 부족한 인력·장비 확충, 의무소방대 설치(2002년 상반기 배치 추진), 소방공무원 처우개선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소방력 확충 및 소방공무원 처우개선대책'을 발표했지만, 정작 일선에선 지방자치단체 재정의 열악함 등을 이유로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최근의 소방업무는 화재, 구급, 구조업무 모두 증가추세에 있으며 특히 지난 95년을 기점으로 구급·구조 활동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자료집은 지적했다. 96년 구급활동이 44만여 건, 46만여 명에 그쳤던 것에 비해 지난해엔 89만여 건, 94만여 명에 달한 것도 이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서울소방방재본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소방활동 실적> 역시, 화재 3만5219건, 구조 10만544건, 구급 97만8939건으로 소방공무원들의 역할이 점차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김 의원이 자료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의 근무여건은 여전히 열악하고, 강도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내근직을 제외한 외근직 소방공무원들은 현재 오전 9시에 출근하여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하는 2교대 격일제 근무를 하고 있어 막대한 업무시간과 야간근무로 인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근무하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한 피로의 누적과 스트레스의 증가, 가족간 생활패턴의 불일치로 여가 및 사회생활을 영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근무자의 만족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여기에 같은 조의 근무자가 연가, 휴가를 사용할 경우엔 다른 조의 근무자가 대신 근무에 투입됨에 따라 3일 연속 근무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며, 젊은 신참의 경우엔 5일 연속 근무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결국 소방직과 일반직 공무원의 1년 근무일수를 비교해 볼 때 소방공무원이 일반직보다 연간 약 3개월이 더 긴 노동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게 자료집의 분석이다. 여기에 24시간 근무 후인 비번시간대에도 각종 조사 및 행정업무, 유동순찰, 훈련, 독거 노인 방문 등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다음은 김민석 의원실에 E-mai로 접수된 사례들 중 일부다.

저는 ○○소방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24시간 교대근무는 너무 힘들어요. 저도 남들 쉴 때 쉬고 싶습니다. 휴가 내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어요. 제가 휴가가면 인근 파출소 구급대원이 많이 힘들거나 남은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요. 현재 인원에서 2교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애국심만으로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2001.8.29)

한 명이 연가라도 가면 그 사람 대신 근무를 서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러면 3일을 연속 근무해야 합니다. 3일을 연속 근무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이해를 하지 못할 겁니다. (2001.8.29)

전 화재진압요원인데 어차피 할 수밖에 없으니까 격일제 근무에 불만은 없습니다. 그런데, 쉬는 날에 정기검사, 특별검사, 행사참석, 각종훈련 등 비번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사기가 떨어집니다. 낮에 문을 열지 않는 업소에 대해선 저녁 늦게까지 검사해야 합니다. 인원이 모자라는 관계로 휴가도 눈치보면서 가야하고, 비번날 하라는 대로 하면 집에 들어갈 날이 며칠 안돼서 솔직히 대충대충 해요.


소방재난홈페이지 게시판 글도 소방공무원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일주일에 84시간을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조직 어느 회사가 84시간 근무하는 곳이 있습니까? 지금 노동자들은 주 40시간 근무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근무시간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84시간입니다. 그것도 명절도, 휴일도 없이 말입니다. 3교대가 실시돼도 우리는 근무시간이 많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왜냐면 명절이나 휴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니까요. 3교대 근무 꼭 실시돼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5월 개정한 <소방공무원근무규정>에서 3교대 근무의 시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시, 도의 지역실정, 인력환경, 업무량 등을 감안하여 3교대 근무를 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당분간은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행정자치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1일 현재 소방력 기준 인력은 3만2345명이지만 실제 현인원은 72%에 불과한 2만3239명에 그치고 있다. 그만큼 소방공무원들이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파출소, 구조대 등에서 심하다는 것.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수 역시 2001년 현재 2058명으로 일본의 845명, 미국 208명, 영국 942명, 프랑스 247명과 비교해 볼 때 현격한 차이를 보여줬다. 이와 함께 자료집은 인명구조장비와 소방차량의 노후와 과부족문제도 지적했다.

그러나, 이를 보상하기 위해 지난 3월 처우개선대책의 방안 중 하나로 발표된 시간외 근무 수당 역시 지역에 따라 상당한 편차가 난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지난 8월 1일 현재 전국 16개 시·도 중 10개 시도만 최대 75시간까지 전액 지급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자치단체의 재정상태와 의지에 따라 지역별 격차가 큰 만큼 지자체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재정격차를 고려한 정부차원의 지원대책이 마련돼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처우개선에 관한 대책마련 이전에 소방공무원들의 근무여건에 대한 실태파악이 우선돼야 한다"며 "근무시간 단축, 3교제로의 전환, 인력의 확충, 비번활동의 억제, 종합 방재관리체계 대책의 마련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덧붙이는 글 | 241호

덧붙이는 글 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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