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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일(토)에 청주 옥화대 '하나의 집'에서는 조지송 목사의 칠순잔치가 있었다. 조지송 목사는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가 횡행하던 6-70년대에 영등포 산업선교회를 이끄신 분이다. 비좁은 방에는 그 분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곳곳에서 달려온 손님들이 빼곡이 앉아있었다.
재야 원로인 박형규 목사, 민중신학자 김용복 박사, 조 목사와 같은 시기에 감리교 쪽에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에서 고생하신 조화순 목사 등 눈에 띄는 분들을 비롯하여 어려웠던 시절 산업선교회를 만나면서 새 삶의 길을 걷게 된 여러 노동자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조 목사님은 바쁜 와중에도 먼 곳까지 찾아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하셨고, 소감을 털어 놓으셨다. 자신이 70년이 끝날 무렵 산업선교회를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와 농사 지으며 살기를 잘했다는 것. 왜냐하면 80년대까지 일을 했더라면 아마 그 급박한 시대에 죽을 쑤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지금 시골에 묻혀 농사짓고 음악을 즐기며 마을 사람들과 한담을 나누는 삶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하지만 가까이 사시는 청주 도시산업선교회의 정진동 목사의 말에 따르면, 조 목사님은 이 지역에 들어와서 그냥 한가하게 노후를 즐기며 사신 게 아니었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존경받을 정도 주민을 위해서라면 발벗고 나서시는 분이었다).
그 분이 옥화대 '하나의 집'이라는 작은 집을 마련하여 은거해 계시는 중에도 처음에는 산업선교 관련 많은 분들이 드나들었나 보다. 하지만, 목사님의 추상같은 꾸지람이 늘 계속되는지라 찾는 발길이 점차 줄었다 한다.
이를테면, 산업선교회를 거쳐간 사람들 가운데 보수정당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에게는 "니가 산업선교회 출신인데 그렇게 하면 되냐?"고 하시고 그 분의 뒤를 이어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는 "그렇게 슬렁슬렁 일을 해서 어찌하느냐?"는 질책을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나중엔 알아서 잘 찾아오지도 않더라는 거다. 젊은 사람들이 노인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한다지만, 그 잔소리에 담긴 삶의 원칙과 지혜를 결코 무시하거나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더구나 조 목사님 같이 올곧게 청렴결백한 삶을 고집하며 사시는 분의 말씀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작년 여름 조 목사님댁을 들러 1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말로만 듣던 목사님을 처음으로 뵈었는데, 첫인상이 말 그대로 소탈한 시골 노인이셨다. 하지만 그 분에게서 여느 시골 노인과는 다른 독특한 게 엿보였으니, 직접 그리고 만드신 그림과 공예품들이 집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위의 사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는 손수 재배하여 거두신 감자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목사님은 내게 대뜸, 이 감자들 가운데 가롯 유다가 하나 있는데 유다를 찾아내어 보아라고 주문하셨다. 내가 보기엔 아무리 보아도 같은 감자들에 불과한데 분명 유다를 나타내는 표시가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도 여기서 잠깐 찾아보시기 바란다.
결국 난 포기하고 말았는데, 목사님의 설명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이른바 '뜨거운 감자들'이었다 한다. 그들은 말 그대로 체제 반항적이요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시대의 이단아들이었다. 한데 그들 가운데도 스승을 팔아먹은 배신자가 앉아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가롯 유다이다. 위 사진에서 가롯 유다는 예수님이 주신 잔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잔을 엎어놓고 있는 감자가 바로 그라는 설명이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마20:22)
예수와 더불어 풍찬노숙하며 고난의 길을 걸어왔던 제자들, 그들은 가롯 유다처럼 까놓고 배신하는 자도 있었지만 서로 크고 높아지려고 스승 앞에서 싸움박질을 일삼기도 했다. 그리고 스승이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는 모두 도망치지 않았던가?
"이런 특별한 날에만 찾아 오지들 말고 평소에도 가끔씩 놀러 오라"는 조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작년 목사님을 졸라 얻은 이 사진 한 장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과연 아직도 '뜨거운 감자들'로 남아있기나 하는 걸까? 오히려 체제와 타협하며 너절한 삶을 살고나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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