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뛰어넘은 자매애, 그것은 희망

영화 속의 노년(17)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등록 2001.12.08 12:33수정 2001.12.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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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다고 하기엔 너무 늙었고, 늙었다고 하기엔 청춘이 아까운 여자가 있다. 아이는 다 자라 기숙사로 떠났고, 남편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음식 접시를 들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 스포츠 중계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너무 살이 쪄서 발이 안보일 정도인데도 먹는 것을 자제할 수 없고, 급기야는 살맛이 안나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여성강좌를 들어보기도 하고 운동을 해보기도 하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두려워 그저 우울하기만 하다. 이름은 에블린.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양로원에 계신 숙모님을 만나러가지만, 숙모가 자신을 향해 물건을 집어던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혼자 휴게실에서 기다리게 되고 거기서 82세의 니니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니니 할머니가 들려주는 루스와 잇지라는 두 여자 이야기. 버디라는 청년의 연인 루스와 여동생 잇지, 그들은 철길에서 사고로 버디를 잃고 깊은 상처를 각자의 가슴에 새기게 된다.

시간이 흐르지만 원래의 모습 그대로 여전히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루스, 오빠를 잃은 분노와 슬픔을 반항과 거친 행동으로 감추는 잇지. 결혼한 루스가 남편 프랭크에게 맞고 사는 것을 알게 된 잇지는 루스를 자신에게로 데려오고, 두 사람은 카페를 연다. 휘슬 스탑(Whistle Stop) 카페만의 특별 메뉴는 튀긴 토마토(Fried Green Tomatoes).

루스가 낳은 프랭크의 아이에게 버디 2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두 사람은 열심히 살아가지만, 프랭크는 아이를 빼앗아가려 하고 결국 우발적인 살인이 벌어진다. 그 후 프랭크를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서는 잇지, 무죄 판결, 루스의 죽음 등이 이어진다.

니니 할머니의 이야기에 빠져든 에블린은 일주일에 한 번씩 양로원을 찾게 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차 다가가기 시작한다.


죽음을 친구처럼 기다리는 고령의 니니 할머니와 갱년기 장애에 시달리는 에블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용감하게 맞서며 살아온 니니 할머니를 보면서 에블린은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니니 할머니 또한 에블린을 만나면서 중요한 한 가지를 깊게 깨닫는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친구, 진실한 친구라는 것을.

양로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간 니니 할머니. 그러나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낡은 집이 헐려 나간 빈 자리뿐. 인생의 고비에 자신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할머니는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이미 안 에블린은 자기가 모시겠다고 손을 내민다. 니니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속의 잇지는 바로 니니 할머니였다.


웃음과 희망은 전염되며 그 전염은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고 했던가. 에블린을 만나는 동안 생일이 지나 이제 83세가 된 니니 할머니의 밝고 씩씩한 삶의 모습이, 희망으로 고스란히 에블린에게 전염돼 이제 에블린은 더 이상 자기 비하와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루스와 잇지에게 집중해 영화를 보는 바람에 니니 할머니와 에블린의 모습을 놓쳤던 것에 비해, 두 번째의 영화 보기에서는 나이를 뛰어 넘는 또 하나의 자매애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노년에도 다른 사람에게 삶의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Fried Green Tomatoes / 감독 존 에브넷 / 출연 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 메리 루이즈 파커, 캐시 베이츠, 제시카 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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