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지금도 청바지가 입고 싶다

등록 2001.12.10 15:18수정 2001.12.1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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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기분이 많이 처질 때면 재래시장엘 간다. "우울한 사람은 장에 가 보라"는 속담 이전에 내가 재래시장을 찾는 데는 나 나름의 역사가 있다.


85년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데 남 두어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나는 매일을 긴장으로 시작했다. 늘 남보다 거의 한 시간 일찍 출근을 했는데, 버스를 갈아타는 곳이 남대문시장 앞이었다.

리어카 하나에 대롱대롱 무엇인가를 매달고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는 아줌마들이 만들어주는 토스트를 먹으며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곤 했던 데서, 재래시장을 찾는 내 버릇은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 이맘 때처럼 쌀쌀한 날씨였고 연말을 앞두고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이들을 위한 선물을 사기 위해 다른 날보다 좀더 일찍 남대문 시장 앞에 내렸다.

한 겨울을 따스하게 날만한 선물을 고르느라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가 가죽 장갑을 하나씩 사기로 하였다. 남성용만 세 개를 달라고 하여 까만 비닐 봉투에 물건을 건네받으며 물건값을 건네는 순간이었다.

'갈취'라는 표현을 써야 할까, 새벽시장의 그 삼십대 후반의 남자는 내 손에 든 돈을 낚아채갔다. 나는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무심하게 받아든 돈을 확인하고 거스름돈을 거슬러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돈을 건네주었다. 그리곤 다시 외쳤다. 골라, 골라... 오히려 무안해진 건 나였다.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다시 재래시장을 가기 시작한 것은 88년부터였다. 결혼 후 가족들의 입성 때문에 철철이 가야 했다. 금방 크는 아이의 옷이며 젖이나 아기의 침이 묻어 금방 색깔이 변하는 내 옷을 사기에도 그만이었다.

결혼 후 내가 주로 가던 재래시장은 동대문 시장이었다. 집에서 좀더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찾은 첫 날은 사실 아무 것도 살 수 없었다. 너무나 많고 다양한 물건들에 질려 그냥 한두 바퀴 돌다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던 것이 차츰 익숙해지면서는 다리품 파는 일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아기를 뒤에 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가곤 하였다. 88년 당시 처음 동대문 시장을 갈 때, 한 2만원 정도의 돈을 들고 갔다. 그리고 1만5천 원어치 정도의 물건을 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보리색 메리야스 면에 아주 가는 형광색의 줄무늬가 있던 아기 트레이닝복을. 보세가게에서 약간 하자가 있는 제품이라고 한 벌에 2000원에 샀다.

동대문 의류시장엔 한국의 모든 옷이 종류별로 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속옷에서부터 정장스타일, 캐쥬얼 스타일, 그리고 연령대별로 갓난아기부터 노년기의 사람의 옷까지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동대문재래시장으로 향하는 내 발길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했다. 마땅하게 입을 만한 옷도 없고 어쩌다가 한번 입어볼까 생각하다가도 뭔가 석연치 않아 그냥 발길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동대문시장을 다니던 88년 당시는 주로 보세의류가 많았다. 보세의류란 수출을 위해 만든 제품으로 세금이 붙지 않은 상태에서 내수로 나온 의류를 말한다.

이들 보세의류들은 디자인이나 품질 면에서 브랜드 수준이면서 가격은 일반시장 가격이므로 서민들의 구미에 두루 맞는 의류였다. 대개는 약간의 문제가 있는 것(크레임이 걸린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만한 가격에 그만한 물건이라는 나름의 계산대로면 싼값에 괜찮은 물건을 사는 것.

그러던 것이 차츰 국내의류 수출이 감소되고, 의류산업의 발달로 하자제품이 차츰 줄어들면서 급격히 보세시장이 축소되었다. 보세의류의 또 하나의 장점은 특별한 유행이 없이 꾸준히 일정한 패턴의 옷이 나온다는 점.

보세시장이 축소되면서 기존의 보세를 주로 하던 가게들이 차츰 국내용 의류들을 취급하기 시작하였다. 어쩌면 나처럼 어정쩡한 나이의 아줌마들이 주로 공략하던 틈새가 바로 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특별히 유행하는 의류를 입자니 좀 어색하고, 그렇다고 전형적인 정장풍을 입기엔 아기와 함께 거동하기 힘들고, 불편하다. 해서 내가 주로 찾던 곳은 제일평화 2, 3층이었다. 지나치게 유행을 좇지도 않거니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낡아(주로 면티나 바지 등 자주 빨아입는 옷이었으므로) 2, 3년 후 다시 시장에 나가보면 그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다시 구입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보세 옷을 좋아하게 된 이유.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언제고 구입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요즘도 나는 마음에 쏙 드는 청바지를 하나 갖고 싶다.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는 동안 볼록하게 나온 아랫배, 둔해진 허리선을 보면서도 아직 때론 청바지가 입고 싶다.

교복을 벗고 난 후 제일 처음 입었던 옷이 청바지였고, 학창시절 내내 또 하나의 교복 구실을 해준 청바지. 어느 선전 문구처럼 막 입어도 십 년을 입은 듯하고, 십 년을 입어도 막 입은 듯한 청바지가 나는 아직도 좋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시장엘 가도 내가 입을 청바지를 살 만한 곳이 없다. 내가 동대문 시장으로의 발길에 뜸해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요즘은 동대문 시장 어딜 가나 똑 같은 스타일의 옷들만 눈에 띈다.

청바지 하나를 사려 해도 다 허리선이 짧다. 사실 배가 좀 나온 경우 허리선이 높이 올라간 것보다는 허리선이 짧은 것이 낫다. 왜냐면 바지의 웨이스트라인이 나온 배의 선을 가로로 잘라 나온 배를 살짝 가려줄 수 있기 때문.

허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허리선이 낮아진 바지에 배꼽티도 아니면서 기장이 짧은 상의가 주류다. 티셔츠나 스웨터를 하나 사려 해도 조금만 팔을 움직이면 허리선 짧은 바지와 기장 짧은 웃옷 사이의 허리가 나와버린다. 젊은 층이라면 발랄한 느낌으로 이쁘고, 또 그것이 유행이다 하면 누구나 비슷한 스타일을 입는 우리나라 패션경향도 있고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그런 모양새의 옷이 어울릴 리 없고, 또 다 그 모양새를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나처럼 불혹 전후의 나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꺼려지는 모양새일 수밖에. 그 모양새가 싫다고 한다면 그 다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전형적인 정장풍의 옷이다.

정장이라 하면 어딘지 규격이 느껴지고 관리하기도 까다롭다.(대개가 물세탁이 안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장은 비교적 갖추어 입어야 하는 옷이라 경제적인 부담도 적잖은 옷이다. 거기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정장을 입으면 옷 속에 사람이 갇히는 기분이 든다.

어느 정도의 나이면 이런 옷을 입고 이렇게 행동하고, 생각도 이렇게 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패션은 이렇게 나이와 상황에 사람을 맞추라고 하고 있다. 비록 불혹의 나이지만 아직도 활동하기 편한 옷을 입고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나에게 옷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나이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청바지에 대한 애정은 비단 나 개인만의 것은 아닐 듯싶다. 그러면서도 나이 사십이 가까워지면 청바지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바로 패션업계의 경직된 사고가 불러낸 정형화일 것이다.

지금도 동대문시장에 가면 정장풍의 여성의류를 살 만한 곳은 많이 있다. 그러나 볼혹의 나이의 사람이 입는 캐쥬얼은 찾아보기 어렵다. 운동복이 아닌 편하고 자유스러운 캐쥬얼 의상을 갖고 싶다.

모델 홍진경이나 이소라가 아니면 입을 수도 없이 길고도 긴 청바지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을까?

이런 우리의 패션 경향으로 인해 내가 원하는 너무나 평범한 일자 청바지를 찾기는 정말 어렵다.

그 틈새를 밀고들어온 것이 바로 '구제시장'이다. 의류수출의 급격한 침체로 보세가게가 줄어들면서(아직은 몇몇 업체가 제일평화, 광희 등에 남아 있지만 예전처럼 다양한 종류를 찾아볼 수 없다) 보세를 주로 하던 가게들이 시작한 것이 바로 '키치'열풍을 타고 들어온 '구제의류' 판매다.

미국, 캐나다 등지의 벼룩시장 등에서 보따리로 들여온 옷들을 말한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오래된 옷. 그러나 색상이나 모양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독특한 것들이 많다.

지금 6, 70년대를 추억하는 바람이 우리 문화계에도 불고 있다. 엄마, 아빠 어렸을 적의 일이나 소품들이 다시 먼지를 털어내고 빛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 그 바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구제에 대한 멋쟁이 미시족(젊은 층은 좀 더 아방가르드하게 소화해내고 있다)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백화점에서 10만 원을 호가하는 리바이스 청바지가 싸게는 2,3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게다가 가장 편안한 스타일의 일자청바지를 거기 가면 구입할 수 있다.

너무 많이 낡아 너덜너덜 떨어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 가장 평범한 모양이면서 새 옷이 주는 불편함이 없고, 이전에 입었을 누군가도 잠깐 떠올리며(간혹 청바지에 페인트 자국이나 물감 얼룩이 있다. 어쩌면 극장 간판을 그린 이였을까하면서 말이다.) 싼 가격에 구입해 잘 손질해 입으면 예전 시절 그대로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요즘 내수에도 구제흉내를 낸 것들이 있는데 역시 너무 길다.

구제는 말 그대로 낡은 옷이므로 기장을 잘라버리면 멋이 살지 않는다. 바지 끝단의 낡은 맛이 그대로 살아야 맛이 나기 때문. 구제는 하나의 허리 사이즈에 다양한 길이의 바지가 있다.

실제 미국에선 그렇게 생산이 된다고 한다. 하나의 허리 사이즈에 맞춰 다양한 사람의 다리 길이에 맞는 바지들을 생산해낸다는 말이다. 왜 우리에겐 그렇게 사람에 맞추는 옷이 생산되지 않을까? 미국에 비해 인구가 적어 경제성이 없는 걸까?

요즘은 동대문의류시장을 찾는 사람의 수가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줄었다고 한다. 밀리오레나 두타 등 백화점식으로 꾸며진 몇몇 상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수출도 많이 줄고(값싼 옷을 원하는 외국바이어들의 발길은 지금 중국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새로 생긴 백화점식 상가들과의 변별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듯.

의류제작과 관련된 업체들이 집적된 동대문이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옷을 소량으로 만들어내면 어떨까? 이미 대량의 물량을 소화해내던 보세시장이 피폐해진 지금 소규모로 발 빠르게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들을 반영해 옷을 만들 수 있다면 동대문의 미래가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을 듯.

그렇게 되면 나처럼 규격화되지 못한 어정쩡한 아줌마가 입을 만한 옷들도 많이 생기겠지 싶다. 나는 나에게 맞는 옷을 갖고 싶다.

나? 불혹, 그러나 나는 아직 청바지가 입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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