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마다 조선일보 사설집 판매?

대학생들 조선일보 사설모음집 불매운동 안하나?

등록 2001.12.14 01:55수정 2001.12.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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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에서 한국작가컨텐츠작가협회 총회 행사를 한다며 며칠전부터 알고 지낸 누님이 꼭 오라고 한다. 행사 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가 세겹으로 무장한 옷도 무시하고 뼛속을 파고 들었다. 화양동에서 이대까지 갈려면 542번 버스를 타면 바로 갈 수 있다. 오늘만 그랬던 건지 아니면 매일 그런지 도로는 온갖 잡다한(?) 차들로 빼곡히 들어섰다. 아마도 이렇게 가면 더 늦을듯 싶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가방에서 책을 한권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문학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는 청년문학도이기에 항상 가방안에는 시집과 소설책으로 가득하다. 버스가 한양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대학운동의 중심에서 항상 놓여 있던 한양대학교. 하지만 올해 비권 총학생회가 당선되었다고 호들갑 떨었던 여러 글들을 보면서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한양대 정문에 이르러서 '6년동안 최우수대학에 선정된 한양대학교'라는 플래카드를 보게 되었다. 올 한해 교육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진적도 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 플래카드가 우습기만 하다. 나의 시선은 다시 교문앞 행상으로 옮겨갔다. 원서접수철인가 보다. 매일 신문을 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였지만 대학원서접수일을 잊고 있었다.

"조선일보 사설 모음집 판매"
나의 눈은 갑자기 또렷해 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사설모음집을 대학입구 한켠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냥 지나치면 아무 일도 아닐법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순간 가슴 한켠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왜 하필이면 조선일보 사설모음집이야, 그것도 갓 대학을 들어가고자 하는 입시생에게 말이야, 대학생들 조선일보 사설모음집 불매운동은 안하나?' 예민하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나에게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올 한해 교육문제만큼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조선일보'. 단순무식한 나도 조선일보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했다. 안티조선운동을 누구처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만나는 사람들만큼은 왜 조선일보를 보지 말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던 내가 아닌가.


그런데 내 눈앞에서 펼쳐진 조선일보 사설모음집 판매는 더욱 우려스럽기만 했다. 이제 막 대학을 들어가고자 하는 저 대학입시생들에게 조선일보 사설모음집이 얼마나 득이 될 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일보의 편향된 편집방향과 사설내용이 개인적으로는 전혀 순수하지 않다고 믿는다. 순수하지 않을 뿐더러 한국 사회 안에서 그 얼마나 많은 권력을 누려왔으며 횡포를 저질러 왔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는가. 기분이 찝찔하다.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말이다.

버스는 한양대학교를 지나 종로를 달려갔다. 12월이어서 그럴까. 종로는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곳곳에서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기념품을 마련하고 있을 게다. 다사다난한 올 한해를 생각하는 동안 버스는 신촌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화여대역에서 내린 나는 약속된 시간을 의식하고 뛰기 시작했다. 종로나 신촌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을 피해가는 것이 오락실에서 총알을 피한듯 했다. 이화여대는 처음 가본다. 물론 내가 여자가 아닌 남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올 기회가 없었다.


'조선일보 사설 모음집'
또다시 내 눈을 고정시키는 푯말이 보였다. 한양대학교에서 보고 다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보는 두번째 '조선일보 사설모음집 판매현장'이다. 푯말도 한양대학교에서 본 것과 똑같은 것이다. 장사속으로 이렇게 준비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불현듯 전국의 대학입구마다 '조선일보 사설 모음집'이 판매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걱정스러웠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치면 될 일이지만 밤잠을 설쳐가며 생각을 하게 되니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에이, 요즘 고등학생들이 어떤 학생들인데, 조선일보 안보는 거 다 알겠지?' 속으로 이렇게 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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