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빈자리와 인절미

인절미 맛있게 만들어주신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등록 2001.12.29 18:08수정 2001.12.3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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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에 동생이 식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어머니가 누워 계실 때에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은 꼭 왔었는데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오는 횟수가 적어졌습니다. 동생만이 아닙니다. 서울에 사는 두 누나도 어머니가 계실 때에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왔는데 이제는 거의 오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만 어머니와 다른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편찮으셨기 때문에 자식들이 여러 번 왔지만 아버지는 건강하게 계시니까 가끔 전화로 안부만 묻습니다.

동생이 이번 겨울방학 때에 특기적성교육을 한다고 형에게 한턱 낸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아내, 두 아이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설렁탕 집에 갔습니다. 애들도 지난번에 보니 잘먹어서 그 곳으로 간 것입니다.

동생과 같이 앞장서서 걸었습니다. 순댓국 집이 보입니다.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동생에게 예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습니다.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휠체어를 끌고 아버지와 함께 그 순댓국 집을 갔습니다. 어머니가 얼큰한 그 국물을 좋아하십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아서 먹는 곳이었습니다. 걱정이 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왜 탁자 있고 의자 있는 곳에 가지 않았냐고요. 자주 갔던 순댓국 집을 이번에는 좀 바꾼 것인데 내부가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난 어머니에게 조금 고생이 되더라도 잘 앉혀드릴 테니 그냥 여기에서 드시라고 했습니다.

얼굴을 심하게 찡그리는 어머니에게 나도 좀 언성을 높였습니다. 아버지와 힘을 합쳐서 어머니를 잘 부축하여 앉혀드렸습니다. 뒤에 벽이 있는 곳에 앉혀드리고 등을 벽에 대라고 했습니다.

식사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어머니는 투덜대셨습니다. 나도 신경질이 났습니다. 그냥 조금 참고 드시면 되는데 이런 곳으로 왔다고 타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맛있는 순대국이지만 어머니를 빨리 모시고 나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생에게 얘기를 하니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어머니가 예전에 먹던 곳, 탁자와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을 때에 화를 내지 말고 갔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가면 휠체어에서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탁자에 있는 의자를 두 개 빼고 거기에 휠체어를 갖다대면 됩니다.

몸이 성한 나만 생각했지 몸이 몹시 불편하여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어머니를 생각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제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설렁탕 집에 갔습니다. 아버지, 동생 식구 넷, 형 식구 넷 해서 모두 아홉 명이 앉았습니다. 아버지는 내 앞에 앉으셨습니다. 옆에는 두 며느리가 앉았습니다. 동생은 내 옆에 앉았습니다. 아이들 넷이 사이좋게 끝에 가서 앉았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미소를 머금은 모습입니다. 좋을 겁니다. 두 아들 식구와 같이 외식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래서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겁니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더 났습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머니가 건강하신 몸으로 아버지 옆에 앉아서 두 아들 식구와 같이 식사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몸이 불편하여 휠체어에 탔어도 좋습니다. 두 아들이 휠체어 서로 번갈아가며 끌고 의자 있는 식당에 가서 외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컸습니다. 앞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시는 아버지를 보니 더 어머니 생각이 간절히 났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들보다 더할 것입니다. 어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날 것입니다. 밖으로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특히 오늘 이 자리에서 더 어머니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외로워 보였습니다.

풍으로 누워있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당연히 남편이 맡아 해야 할 몫이지만 4년 동안 정말로 애 많이 썼습니다. 어머니는 순대와 떡을 좋아하셨습니다. 집에서 아버지가 순대를 사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주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또한 떡을 사 가지고 와 집어주는 모습도 가끔 봤습니다.

나도 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어머니를 닮아 순대와 떡을 좋아하기 때문에 퇴근길에 포장마차에 들러서 순대를 사거나 떡집에 가서 인절미를 샀습니다. 가지고 집에 가면 부모님이 좋아하십니다. 많이 드시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나와 아내와 아이들이 먹습니다.

어머니는 인절미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사 남매 중 유일하게 얼굴도, 식성도, 성격도 어머니를 그대로 빼닮은 나도 노란 콩고물을 묻힌 찹쌀 인절미를 좋아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두 접시라도 먹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먹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시골에 사실 때부터 인절미 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찹쌀을 쪄서 낮은 절구에 넣고 절굿공이로 찧습니다. 부드럽게 되었을 때에 칼로 알맞은 크기로 자릅니다. 거기에 노란 콩고물을 묻힙니다. 그 자리에서 인절미를 집어서 먹으면 참으로 맛있습니다.

군대에 나갔을 때에 난 어머니 덕분에 정기휴가 끝나고 귀대할 때마다 인절미 한 상자씩 해갔습니다. 말년 휴가까지 세 번을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내가 좋아서 그것을 생각한 것이지만 동료들도 거의 맛있게 잘 먹었기 때문입니다.

군에 들어가서 두 달 정도 지나 자대 배치를 받고 졸병 시절을 힘들게 보낼 때에 어머니와 큰매부가 면회를 왔습니다. 입대 후 처음입니다. 어머니와 큰아들의 만남,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맛있는 것을 많이 해오셨습니다. 지금 인절미와 통닭이 생각납니다. 그 자리에서 통닭은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인절미만 두 접시를 속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정신 없이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영양분 많은 통닭을 조금이라도 먹으라고 했지만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직 어머니가 만든 인절미만 눈에 들어와 그것만 먹었습니다. 그 덕분에 나와 함께 면회장소에 간 고향친구 광균이가 통닭을 신나게 먹었습니다.

제대하고 다시 직장에 다니다가 진학 문제로 고민하다가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진학 공부를 했는데 하도 집안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신경성위염에 걸려 공부도 중단하고 병원 돌아다니느라고 고생했습니다. 솜틀일을 하는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아들 병 고쳐야 된다고 같이 이 병원 저 병원에 다니셨습니다.

집에서 힘없이 앉아 있으면 어머니가 방문 창으로 솜 트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먼지와 소음 속에서 오직 자식 잘되라고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가끔 어머니가 수건을 머리에 쓰고 마스크를 한 얼굴로 안을 들여다봅니다. 아들의 얼굴을 봅니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웃는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도 좋아하시고, 아들이 아프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 어머니도 슬퍼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몸이 좋지 않은데도 웃으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기분을 좋게 해드리려고요. 왜 그 당시 그렇게 몹시 아팠는지요?

어머니는 솜틀 일이 끝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재래 시장에 가셔서 인절미를 사오셨습니다. 그 당시 한 개에 50원입니다. 꼭 열 개를 사 가지고 오셔서 병든 병아리처럼 방에 앉아 있는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인절미를 먹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는 좋아하셨습니다.

이제 그 어머니가 안 계십니다. 하늘나라에 가신 어머니 생각만 앞으로 더 날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만 더할 것입니다. 동생 식구들과 같이 아버지 모시고 식사하는 그 자리에 어머니가 이제는 계시지 않습니다.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큽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순대와 인절미를 사 가지고 가더라도 어머니는 집에 안 계십니다. 그 동안 못 다한 효도를 한다고 애를 쓰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때의 노계 박인로의 시조가 문득 생각납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고자 하나 이미 세상을 떠난지라 그것을 슬퍼하는 그 분의 시조가 생각났습니다. 나의 지금 심정이 그러합니다. 원문은 고어가 많아 여기서는 현대어로 풀이한 것을 인용합니다.

소반의 일찍 빨갛게 익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유자가 아니라도 가슴에 품을 만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부모가 없으니 그것을 서러워하누나

(참고)
품을 만하다마는 - 중국 3국 때에 육적이란 사람이 여섯 살 때 원술이 주는 귤을 품속에 품었다가 자기 어머니께 주려고 한 고사 '육회귤(陸懷橘)'에서 온 말

덧붙이는 글 | 앞으로 어머니가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워질 것입니다. 특히 명절 때에 어머니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어머니께 못 다한 효도 아버지께 하면 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입니다. 살아 계실 때에 효도해야 하는데 우리 인간들은 그것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덧붙이는 글 앞으로 어머니가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워질 것입니다. 특히 명절 때에 어머니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어머니께 못 다한 효도 아버지께 하면 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입니다. 살아 계실 때에 효도해야 하는데 우리 인간들은 그것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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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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