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인종차별

등록 2001.12.30 18:04수정 2001.12.3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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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나 화가 날 때 운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분해서, 참다참다 더 이상 분을 참지 못할 때,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즉, 청순한 여인의 한 떨기 눈물과는 거리가 먼, 악에 찬 눈물이라고나 할까?

어제 나는 울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I’m American”이라는 광고가 나올 때, 나는 예전처럼 코 웃음 치면서 바라볼 수 없었다.

요즘, 미국에서 비행기 타기 겁난다. 테러 이후 UA의 주가가 폭락하고, 대통령까지 나와서 비행기를 타자는 광고를 할 정도니 미국인들이 얼마나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 하는 지 알만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행기 사고를 두려워 하는 사람은 단지 미국인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들도 인간인 이상, 비행기 테러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었다. 공항의 경비는 무척 삼엄하다. 짐을 다 풀어보고, 선물의 포장 마저 다 뜯어서 안에 무엇이 들었는가 확인한다. 외투를 벗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신발에 폭탄을 숨긴 테러범 탓인지, 신발도 벗어서 엑스레이로 찍어야 한다. 몇 번 하는 이 검사에 비록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안전이 중요한 만큼 이런 불편 쯤은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워싱턴에서 보스턴으로 비행기를 갈아탈 때 생겼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는 내 짐과 선물과 신발까지 다 검사를 마친 뒤였다. 비행기에 타려고 티켓을 보여주고 비행기 입구로 들어가려 하고 있는데 한 비행사 직원이 내게 와서 줄에서 나오란다.

‘무슨일이지?’ 하며 나오는데, 몸 검사와 짐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에 내 뒤에서 줄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다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과 나의 차이를…. 그 작은 비행기에 타는 몇 안되는 사람 중 내가 유일하게 검은 머리를 가진, 비록 미국에서 공부를 하지만 미국 시민이 아닌 관계로 여권을 보여주어야 하는 외국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를 한번씩 쳐다보며, 비행기를 탈 때 비행사 직원 두 명은 내 짐을 뒤지고 또 룸메이트를 위한 내 선물도 다 뜯어 보았다. 심지어 나는 경찰도 헌병도 하닌 그들 앞에 서서 신발을 벗고 또 다른 승객들 앞에서 벨트까지 풀어야 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나는 그들에게 왜 내가 뽑혀야 했냐고 물어보았다. 직원들은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급이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직원이 머뭇거리며 자기들은 임의적으로 사람을 뽑아 검사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어떤 변명보다도, 나는 그들의 '임의(randomly)’라는 말에 눈에 힘을 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 비행사 직원들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피곤했다. 단지, “내가 여권을 가지고 있어서겠죠.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는 씩씩하게 걸으며 비행기를 탔다. 풀이 죽거나, 울면 loser가 된다는 생각에 나는 씩씩하게 “Hi, how are you?”하며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눈을 감고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보스턴에 올 때까지 한 잠도 잘 수 없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여러 번 무시를 당하거나 차별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 만이 무시를 한다는 어설픈 생각으로 '불쌍한 인간들이여..'하며 쓴 웃음을 지어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는 처음부터,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있어왔다. 학생들에게는 신경질 적이지만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에게만 굽신거렸던 S대학교 직원들, 비자가 담긴 여권을 던지며 말을 쏘아대는 미 대사관 직원들, 그리고 내가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게 해 주는 F1비자- 미국에 돈 쓰러 가는 것이니, 제발 미국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구걸의 상징.

그렇게 온 미국에서 나는 어제 그런 인종차별 아닌 인종차별을 당하면서까지 이 나라에서 이 나라 말을, 문화를, 학문을 배우겠다고 아둥바둥 하는 내가 너무나 한심하게 여겨졌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잘못 된 것은 아니라 믿고 싶었다.

9월 11일 테러 이후, 미국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사람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랍사람과 인도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한 미국인은 아프간 사람인 줄로 알고 한 인도인을 쏘아 죽이고, 그 가게에 불도 질렀다.

국민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슬람교 신도를 놓칠 수 없는 부시정권은 당장 한 아랍계 미국인이 그들의 특유한 억양으로 “I am American”하는 공익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부시는 비록 민족이 다르더라도 미국인임은 매 한가지라며, 미국인들은 뭉쳐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미국에서 사는 외국인은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60년대, 흑백을 나누던 그들의 광기는 테러이후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몰려 가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아직도 당시 게르만이 아닌 민족을 가혹하게 차별하고, 또한 집단 학살까지 한 나치를 혐오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인의 집단 광기 미국인들은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끈을 잡고 집에 도착한 뒤, 비행사 직원들이 헤쳐 놓았던 내 옷가지들을 보면서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날 밤 나는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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