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 몰리는 '명품족'
남대문시장의 웃음잃은 미싱공

[세밑 현장 르포]백화점과 재래시장의 명암

등록 2001.12.31 09:15수정 2002.01.0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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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물 경기 지표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사진은 연말을 맞이하는 백화점과 재래시장의 모습 ⓒ오마이뉴스 김종철


"크리스마스 선물도 고르고, 겸사겸사 오게 됐어요. 어떤 브랜드를 살지는 아직 결정 못했지만 정장 하나 하고 핸드백 정도 보고 있어요. 새로 들어왔다고 하니까."

지난 23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한 고급 외국계 매장에서 만난 정아무개(36. 여) 씨. 정 씨를 포함해 10여 명이 옷과 악세사리를 구경하고 있다.

"디자인이나 옷감, 서비스 등이 다른 곳과는 다르죠. 그리고 여기에 있는 것을 들고 다니면 내 자신이 남과는 좀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되는 게 좋기도 하고…그건 여자라면 본능 아닌가요."

'어떤 점이 국내산 물건과 다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정 씨는 여성 정장과 핸드백 구입 예산으로 500만 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24일 오후 5시 서울 남대문 시장 입구.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가하다. 남대문 쪽으로 옷 가게가 밀집해 있는 골목도 마찬가지다. 가게마다 인기척을 느낄 수 있는 곳도 거의 없다. 다만 일부 리어커 좌판에 '장당 만원'이라고 씌여져 있는 곳에 몇몇 사람들만이 모여 있을 뿐이다. 최근에 이곳을 자주 찾는 조선족들 마저 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백화점 등 대형 유통점과 달리 우리의 재래시장은 최근 2~3년 사이 매우 어렵게 버텨 오고 있다. 상인들은 하나둘씩 떠나고 시장에는 거대 자본의 새로운 유통 단지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르마니 정장과 에스카다 핸드백

서울 강남 일대에서 정 씨와 같이 이른바 '명품족'이라고 불리는 여성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명품족을 딱히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일반적으로 강남 부유층 지역에서 살고 전문직에서 일하며 머리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외국 유명 브랜드로 자신의 외형을 가꿔 나간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경제 구조 개혁 등으로 소득 계층간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져 나갔다. 경제 전문가들은 시장 만능주의와 경쟁, 효율 등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으로 공정한 소득 재분배보다는 계층간 소득 격차 확대로 사회 계층간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종철
고가의 수입 모피부터 시작해서 고급 백화점과 양주, 외제차 등 고가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신선한 뉴스가 안 될 정도다. 문제는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곳 현대백화점 본점을 비롯해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롯데, 신세계 등의 강남쪽 백화점의 외국 명품매장 매출액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현대백화점 해외 명품 매출 신장률은 지난 여름에 50~70%에 달했다. 이같은 신장률은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발리, 불가리, 구찌, 페레가모, 프라다 등의 브랜드 매장 매출이 많게는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 새롭게 문을 연 신세계 강남점이나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등 강남 유명 백화점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앞의 정 씨는 후에 L 매장에서 350만 원짜리 추동 정장 한벌과 190만 원짜리 핸드백을 샀다. 친구와 쇼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정 씨는 "나름대로 오늘 쇼핑이 만족스러웠다"면서 "매장 브로슈어(백화점이나 의류 매장 등에 여러 제품들이 소개돼 있는 책자)에서 모피 코트를 봤는데 올 겨울이 가기 전에 꼭 구입할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가격은 1000만 원에 육박하는 옷이다.

ⓒ 오마이뉴스 김종철
장사 포기할까 생각중이죠, 남대문 아동복 15년 김아무개 씨

한편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오후 6시 서울 재래시장 대명사 남대문 시장. 찬바람이 좀더 세게 불고 있다.

“이젠 먹고 살기가 힘에 부쳐요. 특히 최근 몇 년새는 더 힘들군요. 내년부터 주변 곳곳에 새로운 쇼핑몰이 들어서고 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고, 그렇다고 그곳으로 옮기자니 수천만 원에 달하는 입주 예정금도 없고, 접고 다른 걸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죠"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아동복 매장만 15년째 해 왔다는 김아무개(45) 씨. 자판기 커피잔을 두 손으로 꼭 쥐어잡고 한숨부터 내쉰다.

10평 규모의 크지 않은 아동복 매장을 만들어 오기까지 묵묵히 일만 해온 그에게 최근 2~3년 사이의 경제 상황은 김 씨 4인 가족의 생계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98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꾸려온 가게 매출이 99년 이후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지난 추석과 올 연말에는 특수를 잊은지 오래다. 하루 매출이 적을 때는 5~6만 원까지 떨어지고 있다.

이 곳을 떠나는 상인들도 크게 늘고 있다. (주) 남대문시장에 따르면 98년 이후 이곳을 떠난 상인들이 수백여 명에 달하고 있다. 전반적인 평균 매출도 해마다 20~30%씩 떨어지고 있다고 시장 관계자는 전했다.

"재래시장요? 그거 이제 별 의미 없어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들로 북적이고 흥정하던 과거 시장의 기능을 잃어 버린지 오래 됐어요. (주변 백화점과) 품질, 가격, 서비스에서 더이상 경쟁이 안돼요." 김 씨는 말끝을 흐렸다.

▲재래시장의 수많은 상인들이 점차 그들의 터전을 등지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옷더미 사이에서 옷 수선에 여념없는 수선공들과 상인들 ⓒ오마이뉴스 김종철
자리를 움직였다.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남대문 유통상가 골목으로 거대한 옷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주로 군부대에서 입는 옷과 신발 등이 쌓여 있다. 거대한 옷더미 틈 사이로 40~50대 아주머니들이 미싱 기계를 열심히 돌리고 있다. 수선공이다.

사람이 가까이 가더라도 알지 못한다. 오로지 옷더미에 묻혀 있어 자신의 옆에 쌓여 있는 옷가지를 수선하는 일 밖에 다른 쪽으로는 눈도 돌리기 어렵다. 바지 밑단을 줄이는 것부터 점퍼나 웃옷 등의 마무리를 주로 한다.

이아무개(47. 여) 씨에게서 어렵게 말을 붙여 보았다. 일을 시작한 지 3년째인 이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하루종일 이곳에 나와 미싱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보수는 규칙적이지 않다. 하루 일감에 따라 많기도 하고 아예 없을 때도 있지만 그런 날은 별로 없다고 한다.

"남편이 일을 하다가 몸을 다쳐서 이 일을 시작했지. 처음에는 잘 되지도 않고 어려워서 몇 번이고 때려 치우려고도 했지만 안되더라구. 일도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거는 꾸준히 일감이 있어서 그냥 해…" 이 씨는 말을 아꼈다. 추위 때문인지 얼굴이나 손, 발 등 피부가 많이 상해 있다.

▲외국 유명 브랜드 광고판을 백화점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 국내 한 백화점 ⓒ오마이뉴스 김종철
샤넬, 까르티에, 티파니 그리고 사라지는 재래 시장

지난 25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매장. 백화점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샤넬, 프라다, 까르티에, 티파니 등 외제 고가품 전문매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롯데 본점은 지난 98년 이후 매장 고급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외국 유명브랜드를 유치해 왔다. 일부에서는 국내 다른 매장 입점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특혜까지 주고 있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이들 매장의 하루 매출은 5~6억 원에 이른다. 최근 2~3년 사이에 매출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 하나에 150만 원부터 300만 원을 훨씬 넘는 손목시계도 곧잘 팔려 나간다. 특히 결혼시즌인 지난 10월부터 12월까지 예물 등으로 팔려나간 시계만도 수천만 원어치를 넘어선다고 매장 관계자는 귀뜸 했다. 이같은 외국산 고가 브랜드의 소비 증가는 비단 의류나 악세사리에 그치지 않는다. 화장품, 양주, 심지어 과자와 초콜릿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오마이뉴스 김종철
롯데백화점 본점 1층 한 외국 유명브랜드 화장품 코너.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해 선물을 사려는 젊은 소비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미 국내 화장품 시장은 외국제품이 거의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매출실적만 봐도 이같은 현상은 뚜렷하다. 매출 상위 20개중 국산 2개를 제외한 18개 브랜드가 외국제품이다.

연말분위기에 외국산 고급 위스키와 와인 등도 불티나게 팔리는 건 마찬가지다. 고급 룸살롱이나 특급호텔에서 한 병에 40만 원 가량에 팔리는 `시바스 리갈' 18년산, `발렌타인' 17년산 등 은 없어서 못 팔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하고 있다.

같은 날 오전. 서울 영등포시장은 거의 한산했다. 커다란 원형의 영등포 시장을 나타내는 간판만 있을 뿐 연말을 맞이해 북적거리는 상인과 사람들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이곳도 주변의 백화점과 눈에 띄게 대비됐다.

영등포동 1, 4가에 이르는 6000여 평의 영등포시장은 빠르면 2~3년 안에 사라진다. 서울시는 영등포시장을 없애고 서울 강서구에 대규모 서남권 농수산물 유통단지를 세우기로 하고 상인들을 그쪽으로 이전시킨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30년째 시장을 지키고 있다는 기순이(67) 아주머니. 추운 날씨에 아침부터 나와 밤늦도록 과일 좌판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종철
재래시장의 성공적인 변신사례로 꼽고 있는 서울 동대문 시장. 하지만 이곳은 간판만 시장이지 이미 거대 자본에 의한 대형 쇼핑몰로 변신한 곳이다. 그나마 이곳도 최근에는 값싼 중국산 의류에 밀려 매출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밀리오레, 두산타워, 거평프레야 등으로 상징되는 동대문 유통단지의 뒷골목을 보면 뚜렷해진다. 지하철 2호선 동대문 운동장역에서 내려 청계 고가도로 주변을 따라 널려있는 수많은 노점상과 상점들을 운영하는 상인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 않다. 대규모 유통단지가 들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물건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수건부터 가방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물건을 팔고있는 이모(43. 서울 중랑구 면목동) 씨는 이곳으로 들어온 지 4년째다. 그나마 자리를 잡은 지 2년이 갓 넘었다.

"기대가 컸죠. 물건도 많이 갖다 놓기도 했지만 이젠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벌어도 만족하는 편"이라며 "수천만 원의 권리금과 물건 비용을 가져야 (쇼핑몰에) 들어갈 수 있고 그것도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어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는 조만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모은 돈으로 농사를 지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재래상권의 변화된 모습은 자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우리에게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경쟁력 논리에 파묻혀 그 누구도 우리의 전통적인 재래시장의 모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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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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