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보호 대상자 이 씨가 내민 2만 원

"그 동안 받기만 해서 너무 미안"

등록 2001.12.31 14:23수정 2002.01.02 12:05
0
원고료로 응원
사회지도층 등 고위급들이 청탁과 비리 등 온갖 때국물(?)에 찌든 돈에 연루돼 연이어 구속됐던 2001년.

생활보호대상자인 한 1급 장애우가 손때(?) 묻은 돈 2만 원을 "도움만 받아 누군가 주고 싶었다"며 전달한 사실이 밝혀져 혼탁한 연말을 밝게 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2리에 살고 있는 이윤호(남. 46) 씨가 그 주인공. 이 씨는 12월 31일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월롱면 보건소의 신계숙(39. 보건주사보. 방문보건 담당) 씨에게 "누군가를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손에 꼭 쥐고 있던 2만 원을 내보였다.

처음에는 1만 원이었다. 신 씨가 "보육원 아이들 책을 사주겠다"고 하자 "그럼 1만 원이면 적다"며 1만 원을 더 내놨다.

이 씨는 이 돈을 내보이며 "20년만에 해 보는 불우이웃 돕기"라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직접 전하지 못하고 시켜서 미안하다"며 환한 웃음과 함께 미안하단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씨는 사고 전 서울 독산동에 살면서 매달 불우이웃을 찾았던 소외된 이웃들의 작은 독지가였다. 그러나 이 씨는 군제대 직후인 22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쪽 무릎 위부터 다리를 절단했고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만 건졌다.

또 사고 후 부인과 이혼하는 이중고를 겪고 한 때 실의에 빠져 알콜중독으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씨는 지금도 언어장애에다 당뇨까지 겹쳐 있는 상태고 팔순 노모가 7년 전부터 뇌졸중증으로 투병중에 있다.

또 79세 되신 아버지도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이 씨가 직접 조석으로 밥을 해 가며 노부모님을 극진한 효심으로 모시고 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4~5년 전 부터 보건담당 신계숙 씨와 적십자 등 주변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했고 큰 고마움과 함께 작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젊은 시절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다니던 기억에 '누군가'를 생각하게 했다. 이 씨는 20m만 걸어도 의족결합 부분이 헐어버릴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 또 생활보호대상자로 파주시에서 조금씩 지급되는 장애수당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우이웃돕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월롱보건소 신계숙 씨는 "이 씨가 언어장애가 있어 처음에는 도와달라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도와주겠다는 뜻인 줄 알고는 가슴이 뭉클했다"며 "좋은 곳에 가면 한 끼 밥값도 안되는 적은 액수지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 씨의 2만 원의 가치는 요즘 세태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신씨는 2만 원으로 몇 권 안되는 책이지만 아이들이 서로 돌려볼 수 있도록 보육원에 전달할 계획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파주지역신문사에서 31년째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농민신문에서 접하게 됐고 중앙일간지나 각종 언론에 많이 할애되지 못하는 지역의 소외된 이웃이나 진솔된 삶을 살아가는 이웃, 그리고 문제점 등을 알리고 싶어 접속하게 됐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80대 아버지가 손자와 손녀에게 이럴 줄 몰랐다
  2. 2 "은혜 모른다" 손가락질에도... 저는 부모와 절연한 자식입니다
  3. 3 "이재용은 바지회장"... 삼성전자 사옥앞 마스크 벗고 외친 젊은 직원들
  4. 4 "내 연락처 절대 못 알려줘" 부모 피해 꽁꽁 숨어버린 자식들
  5. 5 한국에서 한 것처럼 했는데... 독일 초등교사가 보내온 편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