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에 문맹 탈출한 오영희 씨의 새 아침

육십평생 처음, 군대간 아들에게 보내는 감동의 육필 편지

등록 2002.01.02 18:38수정 2002.01.0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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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의 한을 풀고 한평생 가장 신바람 나는 임오년 새해 아침을 맞은 할머니가 있다. 태안읍 구 터미널 입구에서 14년째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 오영희(여·61) 씨.


유년 시절엔 피난길을 전전하게 만든 6·25전쟁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잃고 고향 금산에서 논산 강경역까지 밀려와 온갖 장사를 하며 겨우 끼니를 이은 것이 전부였다.

결혼을 하면서 태안에 정착했지만 어린 5남매만 남겨두고 남편 장성준 씨는 46세의 나이로 14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절대로 자식에게는 문맹의 설움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또 다시 리어커를 끌고 장사에 나서 네 딸을 모두 교육시켰다. 그리고 청주대를 다니다 군에 입대한 막내아들 두성(21) 군도 내년이면 복학한다.

'불에 넣어도 안 탈 여자'란 억척스러움으로 자식을 통해 못 배운 한을 풀긴 했지만, 노점상 단속 공무원에게 하루에도 두 번씩 리어커를 뺏기는 울분을 안고도 노점상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응어리진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지난해 5월 붕어빵을 사러온 한 할머니로부터 한글공부 하러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태안군선거관리위원회가 무효표 방지를 위해 개설한 한글교실. 그곳이 바로 오할머니가 나이 환갑에 겨우 찾은 문맹탈출구였다.

14년 동안 무휴였던 리어커를 세워두는 일이 매일 한 시간씩 반복되자 주위 사람들은 속도 모른 채 “춤 바람났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러길 8개월, 지난해 12월28일 마침내 군대간 막내아들에게 자필 편지를 썼다.

'두영이 보아라
이 추운 날씨에 군대생활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엄마 걱정은 하지 말고 네 건강이 주의 하거라....'

오씨는 아들에게 처음으로 이렇게 편지지 한 장 분량의 안부 편지를 보냈다. 물론 맞춤법에 어긋나는 글자가 곳곳에 발견된다. 하지만 이런 편지를 쓰기 위해 참아온 60평생의 한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쁜 일이다.

“평생 소원이 당당하게 성경책 끼고 다니는 것과 책방에 들어가서 내 눈으로 보고 직접 책을 고르는 일인데, 앞으로 한 5개월만 더 배우면 그렇게 될 것도 같아요.”

오 할머니는 글눈을 뜨니 세상이 다 시원해보인다며 앞으로 글 몰라서 못했던 일 다해 볼 작정이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임오년 새해 아침, 작지만 평생의 소원을 푼 오씨 할머니의 풋풋한 웃음이 해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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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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