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를 사랑하는 성직자들

김동민의 <언론시평> 정의없는 사랑도 '독'이다

등록 2002.01.06 07:47수정 2002.01.0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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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를 믿지만 교회는 잘 나가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했지만 돌아온 것은 상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사이 신앙은 뿌리를 내려 예배를 보거나 기도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다.

2000년 8월7일의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지식인 1차 선언' 이후 4차례에 걸쳐 발표한 명단을 보면 목사 신부 스님 등 성직자들이 꽤 많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이 분들이 시무하는 교회나 절의 신도가 되었다면 상처받지 않고 아마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성직자들 중에서 이렇게 바른 생각을 갖고 실천에 옮기는 분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사회정의의 문제에는 무감각하고 개념 없는 사랑 타령만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이 정말 예수를 제대로 알고 믿는 사람들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조선일보 1월4일자에 정의채 신부가 <사랑없는 正義는 '毒'이다>라는 제목의 시론을 썼다. 제목은 아마 편집자가 붙인 것 같다. 우선 조선의 이 같은 극악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 신부는 '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미움에 찬 정의는 정의가 아니며, 불의(不義)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 찬 정의와 정의로운 사랑만이 인간의 마음을 화해시키며 항구한 평화를 약속한다."

여기에서 사랑 없는 정의는 '독'이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의 없는 사랑도 '독'이라는 의미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는 것쯤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글도 제 멋대로 해석하고 악용하는 버릇이 발동한 것이다.

사실 정 신부의 글은 정의보다는 사랑을 강조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대부분의 성직자들과 교회, 그리고 신도들이 이와 같은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정의의 문제에는 무관심하고 불의에 관대하면서 사랑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불의와 타협하며 정의를 외면한 비신앙적인 생활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속죄하고자 하는 심리가 팽배해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핍박하며 불의를 일삼으면서도 야훼의 이름을 파는 자들을 바리새인이라 불렀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했다. 예수는 사랑과 정의를 부르짖었던 선지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았으며 죽음으로써 불의에 항거했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에서 정의는 찾아보기 어렵고 위선적인 사랑만 넘실댄다. 민족을 팔아먹으면서까지 불의와 타협하고 이제는 불의 그 자체가 되어버린 조선일보에 예수의 제자들이 등장하여 사랑을 설파한다! 더구나 조선이 정 신부의 글을 왜곡하여 사랑 없는 정의는 '독'이라고 했을 때, 정 신부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은 정의를 저주하게 될 것이다.

같은 날 19면에는 새안산교회 담임목사인 김학중 목사의 <솔로몬의 약>이라는 글이 실려있다. 솔로몬이 소위 만병통치약을 선물로 받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개봉을 해보니 그 약이 남아있지 않더라는 것이다. 사연인즉슨, 그 약은 쓰지 않으면 점점 말라서 사라지는 약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중한 것일수록 쓸 때는 쓸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하며, "그 현명은 헛된 욕심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이웃과 생명을 사랑하는 데서 나온다"는 '말씀'이다.


새안산교회는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목회로 교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교회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기존의 교회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담임목사의 젊고 진취적인 성향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김 목사는 목회뿐 아니라 각종 신문과 방송의 출연에도 매우 열성적인 편이다. 그 자체야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조선일보에까지 진출하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젊은 목사가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목회로 주목을 받는다 해도 사회정의를 외면하는 교회는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다.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성장 제일주의나 물질 지상주의와 별반 다를 게 없이 방법론상의 차이만 두드러질 뿐이다. 교계의 주목을 받는 것도 바로 개척교회를 일군다는 것이 예전같지 않은 현실에서 성공의 새로운 모델이 되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보다는 정의감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풋풋한 정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다. 반면에 정의보다는 불의가 판을 치는 사회다. 그리고 그 불의한 세력의 한 가운데 조선일보가 있다. 예수를 알고 바른 신앙을 가지고서야 정의를 외면하고 불의와 싸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정의 없는 사랑도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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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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