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김근태 고문의 에세이집 <희망은 힘이 세다>

등록 2002.01.10 10:49수정 2002.01.10 15:25
0
원고료로 응원
"충동과 일시적 '고함'이 아닌 나의 '비명'을 들어달라!"
"살다보면 괜히 좋은 사람이 있다", "그는 희귀한 사람"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정치권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차기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은 저마다의 경쟁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홍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인터넷을 이용한 멜진의 운영이 급부상하고는 있지만, 역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것은 책을 통한 것이다.

대선 주자들이 최근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갖고 자신의 저서를 알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지지자와 독자 입장에서도 한 정치인의 숨겨진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물론, 정치인들의 저서는 가볍게는 일반 에세이에서부터 무겁게는 자신의 정책적 비젼을 다룬 책들까지 실로 다양하다. 점차 대선정국의 중심으로 다가서고 있는 대권주자들의 책을 모아 소개한다.

새해를 시작하며 모든 사람은 '희망'을 꿈꾼다.
특히 대선이 있는 올 해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는 주자들의 희망은 더욱 특별할 것이다.

매년 기자들이 뽑는 '백봉신사상'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민주당 김근태 고문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희망'이다. 책 제목인 <희망은 힘이 세다>(다우출판사)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그는 '인간의 가치가 품고 있는 희망의 질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단언한다.

사실 김 고문의 저서는 이 전에도 여러 권 있었다. 과거 자신이 체험했던 고문의 참상을 다룬 <남영동>(87년), 인간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옥중 서간집 <열린 세상으로 통하는 가냘픈 통로에서>(92년)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 지난 95년에도 김 고문은 사회비평집 <희망의 근거>를 통해 자신의 '희망'을 드러낸 바 있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김 고문의 희망론에 대해 "많은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말 중의 하나가 '희망'이지만, 김근태는 유난히 이 단어를 자주 거론하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김근태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는 희망은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김근태는 단단하게 여문 강냉이를 튀겨 팝콘을 만드는 사람처럼 작은 목소리로 '희망'을 얘기하면서도 듣는 사람의 가슴속에 커다란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아주 희귀한 사람이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희망은…>을 발간한 이유에 대해서도 김고문은 이렇게 설명한다.


"솔직히 이 기회를 통해 나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충동이거나 일시적인 '고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이 '비명'에 대해 공감과 조력을 얻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동안 발표한 글들을 막상 모아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니 "대체로 완곡한 어법 뒤로 숨거나, 심지어 지난날 권위주의 시대 때처럼 은유 뒤로 꽁꽁 숨어 버린 듯한 글이 적지 않아 내심 당황스러웠다"며 "생각은 왜 그리 영글지 못했는지, 표현은 왜 그리 서툰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큰 야망과 꿈을 가진 정치인으로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한 게 탄로나면 그 때 나는 '얼굴 빨개지겠다, 부끄러워하겠다'는 뜻으로 이 글들을 받아달라"는 게 김고문의 소박한 부탁.

<희망은…>는 크게 ▲기억 혹은 사랑에 관하여, ▲희망은 힘이 세다 ▲상식과 대안을 찾아서 ▲스무 살의 젊음들에게 ▲살다보면 괜히 좋은 사람이 있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군에 간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부담없이 늘어놓은 그의 글에선 인간 내음새가 물씬하다.

'정치인과 신사', '개혁이 어려운 이유?', '정치 9단은 없다' 등 그간 각종 언론과 인터넷 사이트에 기고한 김고문의 글들은 그의 정치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사의 정통성, 정체성만으로 나라의 새로운 디자인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열정과 믿음만을 가지고 미래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변화할 것이다. 우리는 문제제기 집단에서 문제해결 집단으로 정당하게 변화해야 한다"

왜 YS, JP, 허주 등을 만나냐는 주위의 질문에 김고문이 스스로 답한 내용 중 일부분이다.

이와 함께 '스무 살의 젊음들에게'에선 드레퓌스와 만델라, 드골과 마틴 루터 킹, 비틀즈, 김미현과 장한나, 히딩크, 조수미, 최민식, 그리고 김수영 등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듯이 펼쳐놓는다. 또 한명숙 여성부 장관, 김병종 정운찬 서울대 교수, 함세웅 신부, 지선 스님, 이인영 민주당 구로갑 지구당 위원장, 영화배우 장미희씨 등이 김 고문에 대해 쓴 글도 눈길을 끈다.

지난 99년 김 고문에 대해 "살다보면 괜히 좋은 사람이 있다"고 평한 당시 노무현 최고위원의 글도 찾을 수 있다.

보수성향을 가진 독일 나우만재단의 마이나르두스 소장은 최근 한 일간지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신념과 정책면에서 볼 때 김 고문이 가장 뚜렷하고 신뢰할 만 하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지식인 계층에서도 김 고문은 늘 최상급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늘 한자리대의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낮다는 점은 김 고문측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예전에 김 고문이 택시를 탔더니 운전기사가 "이근안 씨 되시죠?" 하면서 반겼다는 얘기를 더 이상 우스개소리로 받아들이기엔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는 게 관계자의 말.

최근 한 강연 자리에서 "중요한 자리에 오르면 꼭 하고 싶은 것 한가지를 말해 달라"는 한 청중의 질문에 김 고문은 "정말 투명한 지 믿을 수 있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단순히 '개인 도덕'이 아닌 '사회적 신뢰'를 만드는 리더십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답한 바 있다.

김 고문의 웹진인 '사발통문'은 지난 연말을 맞아 소식을 전하면서 끝없는 희망과 함께 전인권의 '돌고 돌고 돌고'를 추천했다.

그처럼 하루가 다루게 급변하고 있는 올해, "적어도 민주화세대의 깃발을 들고 온 사람이 중심이 돼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최소한 징검다리 역할은 할 것"이라는 김 고문의 '희망'이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민주신문 247호

덧붙이는 글 민주신문 247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