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교수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서평]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등록 2002.01.10 11:44수정 2002.01.1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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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어느 날 학교로 올라가는 대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조국 교수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누이지 마라"

당시 조국 교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나중에야 조국 교수란 사람이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울산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는 사실, 그리고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스신화에 보면 프로크루스테스 침대가 등장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들을 자신의 침대에 쉬어가게 한다. 그러나 그냥 침대에 쉬어가게 하는 게 아니다. 그 침대에 누우면 모두 주검이 돼야 했다.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게 늘려서, 침대보다 크면 잘려서 나그네들은 그렇게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죽어갔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 맞춰 남의 생각을 고치려는 버르장머리,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를 일컬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후세 사람은 일컬었다.

며칠 전 조국 교수가 각 신문 사회면에 얼굴을 내밀었다. 모교인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이었다. 그를 향한 '수사'는 대단했다.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에 앞장선 사노맹 출신 서울대 교수, 386의 기수, 박종철 열사의 고교, 대학 선배, 국제 앰네스티에서 정한 양심수 등.

한 권의 책

▲조국 교수가 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그러나 조국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그같은 수사들을 기억하기보다 그가 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1992년 쓴 <사상의 자유>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양심과 자유라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발딛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양심과 자유가 어떻게 굴절되고 왜곡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양심수 출신의 인권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또 다른 사상전향제인 '준법서약제' 문제. 여전히 존재하는 보안관찰처분의 망령들을 조목조목 끄집어냈다. 어디 이뿐인가. 최근 사회적인 의제로 떠오른 양심적 집총거부권이 단순히 이단 종교에 빠진 '병역 기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나라의 예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집총거부권이 국제법으로 승인된 소중한 인권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양심적 집총거부권에 대한 색안경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양심적 집총거부권과 관련 그가 예로 든 스톤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다를 수 있는 자유의 실체는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사안에 대하여 다를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검증되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빨갱이 콤플렉스와 국가보안법에 대한 총론적인 비판에 있다. 조국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사상'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피 냄새가 난다고 표현했다. 빨갱이 귀신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최장집 교수, 한완상 장관, 태백산백의 작가 조정래가 그 귀신 앞에서 나가떨어졌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사상의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국외의 사회주의와는 평화를 나누면서, 국내의 사회주의자와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반체제 사상과 활동이 두려우면 이를 탄압하기 전에 체제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조국 교수는 강조하고 있다. 왜냐. 반체제 사상과 활동은 바로 외부에서 주입된 산물이 아니라 이 땅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빨갱이 콤플렉스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 괴물 국가보안법은 극복의 대상이다. 그에게 국가보안법은 냉전과 독재를 위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였다. 이 책 마지막 장 '국가보안법 총비판'에서 조국 교수는 이 법의 반통일성과 반민주성, 그리고 이 법의 존속을 요구하는 주장이 왜 잘못됐는지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지금이야 소용 없는 이야기가 됐지만 한때 개정안으로 상정됐던 법안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덧붙여져 있다. 그는 주체사상 만세를 외치거나 인공기를 게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경범죄로 처벌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법률로 존속시킬 필요가 있느냐고 마지막으로 반문하고 있다.

사회 진보를 위해 사상의 자유는 필수요소다. 사실 기존의 제도와 통념, 다수자의 목소리만 무조건 추종했다면 사회는 이만큼 진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결단코 사라져야 한다.

책을 덮으면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에 수차례 인용한 볼테르의 말이 서울대 교수로 새롭게 출발하는 조국 교수의 다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조국 지음,
책세상,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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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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