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 이야기

한 남자는 창살 아래에서, 한 남자는 한국 사회의 감옥 속에서 비상을 꿈꾸고 있다

등록 2002.01.14 16:58수정 2002.01.1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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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비는 이제 네 나이 40으로 잡았다"
"종수야 형은 꼭 남극으로 갈꺼야. 펭귄들의 남극으로"


한 남자는 장성한 아들을 구치소 면회실에서 만나야만 했던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회한 섞인 말씀을 들어야했다. 그의 나이 서른 하나. 공안사범으로 구속되기 이번이 세 번째인 문명주 씨는 이제 곧 교도소로 이감을 가야한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 걱정하시는 아버지는 "이전처럼 안동으로 가게 되면 면회는 이제 다 갔다"면서 아들이 그나마 가까운 수도권 근처의 교도소로 옮겨가길 바랬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는 종로의 한 술집에서 술을 연거푸 마시면서 "나 다시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힘겨운 고백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잘 살 수 있을 꺼라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한국 사회에 적응한다는게 너무 힘들다"는 정동신 씨의 나이도 올해 서른 하나.

그는 99년에 인도 여행을 시작으로 이국 땅을 밟은 지 3년 만인 작년 8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터키에서 자전거로 체코 프라하까지 달려 유럽을 여행한 후 이스라엘에 머물며 막일을 해서 번 돈으로 아프리카를 4개월 동안 종단했다. 그후 다시 인도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한국엘 돌아왔건만 사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들처럼 현실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게 힘들다고 한다.

90년대 저항 정신과 혼탁했던 한국 사회

이 두 남자가 걸어온 삶의 방식은 조금 달랐다. 91학번인 명주 씨는 90년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93년 청량1동 철거민 투쟁에서 용역깡패들과의 몸싸움에서 폭행죄로, 98년에는 좌파 학생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 7조 이적표현물배포소지죄'로, 그리고 2000년에는 서울시립대 본관 점거 투쟁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세 번의 구속을 당해야만 했다.


아들을 소식을 듣고 경찰서와 구치소, 병무청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사신 아버지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 들어간지 오래돼 이제는 하얀 잿가루로 변해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책을 놓지 않아서 문학에 참 재능이 있었어.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도 고려대 국문학과를 추천하셨는데 차라리 그때 선생님 의견을 따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어. 하도 마음이 그래서 용하다는 점집엘 갔는데 하는 말이 명주는 40이 넘어야 빛을 본다는 거야"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학 후배인 나에게서 대학시절 명주형의 모습을 찾고 싶어하셨다.

"선배는 항상 모범이었고 명확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직도 그 후배들이 학교에 남아 싸우고도 있고요. 리더쉽도 참 뛰어났습니다. 언제가 세상이 좋아지면 형의 삶이 인정받을 때가 분명 올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아버지는 이제 아들 못지 않은 쓴소리를 곧 잘 하셨다.

"대중이가 당선되면 사회가 좀 좋아지지 않겠냐고 명주한테 물어보니 그 녀석이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라고 하더라고. 그 말이 맞아. 지금 봐. 사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썩어빠졌어.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명주 씨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동신 씨는 한때 사업가이기도 했다. 90년대 말 한창 벤처 열풍이 불 때 그도 '홈쇼핑' 관련 벤처기업를 경영했다. 열풍이 사그러 들고 자금난이 닥쳐 회사는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후 그는 배낭을 꾸리고 훌쩍 인도로 떠났다. 한 신문의 기사를 잃고 "인도에 가면 내 인생의 후반부를 다시 설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생각한 그는 여느 여행가들의 책에서처럼 '구도자의 깨달음'같은 것을 얻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한국에 돌아갈 자신감이 들 때까지 무작정 자신을 혹사시켜가며 바랑을 했다.

프라하에서 자전거가 부서져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페달을 밟았고 아프리카에서는 소를 실은 터럭 위해 걸터앉아 하루 종일 열사의 땅을 헤매기도 했다. 그렇게 힘든 여정을 꾸려가면서 세계를 부딪치고 돌아온 그에게 한국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었다.

"4개월간의 한국생활 동안 5kg나 불어진 몸과, 피폐해져버린 정신, 다시금 술에 찌들어져 사는 생활. 그러한 것들에 불현듯 일어난 생각들이 여행이었는데…그러나, 또다시 여행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제는 그럴만한 자신감이 없어. 마지막 여행지였던 방콕에서, 그리고 나를 태운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막 착륙하려는 순간, 스스로가 자위하던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내 인생의 후반전(여행 후)에는 절대로 고난은 있을지 되 불행은 없으리라'하던 자신감이었지. 지금 나 자신이 불행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감이 너무나 지나쳤던 나머지 되돌아와 맞게될 한국생활을 너무 얕잡아 보았던 거겠지. 마치 내가 세상을 변모시킬 수 있는 양, 아님, 현실이 오히려 내게 맞추어질 것이라는 양 착각을 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 k(그의 닉네임) 씨가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지, 그만큼 우매한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 하는 말일 뿐이야.

다시 비상을 꿈꾸며

그가 자신이 속한 한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적어 놓은 글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다시 남극을 꿈꾸고 있다. 2월이면 인도로 떠나 현지에서 '길잡이' 일을 하면서 돈을 모을 생각이란다.

현재 그는 자신이 제안해서 한 인도 전문 여행사에 '아프리카를 거쳐 인도로 30일' 이라는 배낭여행 상품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인도 생활을 6개월 정도 한 후 돈이 모이면 남미를 거쳐 남극 세종기지에서 자원봉사자로 지낼 것이라고 한다.

"종수야 난 저 하얀 남극으로 갈꺼야. 내가 아프리카를 꿈꾸었을 때와 같은 남극에 대한 열망이 날 다시 떠나게 해.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 책도 쓰고 그렇게 해서 정말 잘 살꺼야"

그가 지난 힘든 여행을 접고 한국에 들어온 결정적인 이유는 아프리카를 4개월 동안 함께 여행한 여자가 너무 보고싶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다시 만나 그녀에게서 "여긴 아프리카가 아니라 서울이야"라는 말을 듣고 그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극을 목적지로 다시 배낭을 꾸리는 그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다시금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번에 떠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때 정말 지금처럼 실패하진 않겠다고.

두 남자의 이야기였다. 한 남자는 창살 아래에서, 한 남자는 한국 사회의 감옥 속에서 자신을 감금당하고 있지만 언제가 다시 비상을 꿈꾸고 있다. 독일어 공부를 마치고 다시 불어 공략에 나섰다는 명주 선배는 출소 후 유럽으로 유학을 갈 계획이고, 동신 형은 전 세계를 한 번씩 다 밟게 되는 이번 '남극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1년 여 후면 다시 이 두 남자를 한국의 어느 술집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만나는 그들이 비상을 위해 한껏 날개를 펼치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디젠고프'유스호스텔에 머물면서 정동신 형을 만나 고약한 유대인 보스 밑에서 함께 막일을 하면서 만났습니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디젠고프'유스호스텔에 머물면서 정동신 형을 만나 고약한 유대인 보스 밑에서 함께 막일을 하면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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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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