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성공한 사례는 드물고, 거의 다 실패한다는 국내에 무성한 괴소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현지 취재를 해 보았다. 한국기업의 여건과 세계 시장의 변화를 감안할 때 문화적 동질성이 가장 많은 중국을 해외생산 기지의 미래 시장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대안은 없는가. 왜 중국진출은 실패의 연속인가. 과연 성공을 위한 지침서는 없는 것인가. 수교 10년의 세월속에 묻혀 있는 현지경영 실패사례담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리라 확신한다.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시 개발구에 피혁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차지환(K피혁대표. 49세) 사장에게 지방법원에서 ‘이 회사 董事長(대표이사)은 범법행위를 했으니, 당신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없으며, 당신 명의로 운영하는 사업장에서의 생산과 판매행위는 명의 변경수속이 완료될 때까지 금지합니다’라는 법원의 통고장을 받았다.
2년전 차 대표는 중국내수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여 직접 판매하기로 결심하고, 수도 베이징과는 불과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중국북방 최대의 중공업도시인 톈진(天津)시의 공상국(工商局)에 회사설립신청을 하고 營業執照(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았다.
대외경제무역위원회의 비준을 받고 기술감독국의 승인을 신청하여 허가를 기다리던 중, 오래전부터 사업거래를 해오던 중국친구인 왕빈(王斌. 판매상) 씨가 자신이 예전에 공장을 운영하다 지금은 생산중단을 하여 비어있는 공장이 칭다오시 개발구에 있으니 사용하라는 권유를 몇 차례 했다고 한다. 임대료와 물류 비용이 싸다는 이점도 있었지만, 판매상과의 향후 관계를 고려해서 공장설립의 수속도 위탁하여 2년간 경영상 아무런 문제도 없이 순탄하게 생산과 판매를 해왔다는 것이다.
법원이 위반했다는 사항은 다름 아닌 과거에 톈진시에 등록한 기업을 청산수속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외상기업등록 신청을 한후 방치한 것이 외상기업관리법에 저촉된다는 것이었다. 중국 법률상 외상독자투자기업은 투자 자본금에 따라 총자본금을 투입해야 하는 기간상의 차이는 있다지만, 200만 달러 이하일 경우에는 대개 6개월 이내에 모든 수속을 완료해야 정상적인 회사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차 대표가 간과한 것은 첫째로 중국친구를 너무 믿고 이런 청산수속도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라는 안일함이었다. 둘째로 청산수속을 하지 않고 타지역이건 동일지역이건 2년 이내에는 설립회사의 명칭을 기존회사와 동일하게 사용할 수 없는 것과 본인이 대표로 등록할 수 없다는 중국법률을 몰랐던 것이다. “손실을 전부 계산해보니 이만저만이 아니예요. 톈진시에 설립신청한 회사를 청산하는 데에 걸린 시간과 비용, 국세, 지방세를 내지 않았다고 벌금을 내고 해결하는데 두 달이 걸렸습니다.
두 달후에 겨우 조업을 시작했는데 몇 년간 고생해서 번돈을 한순간에 날리고 경쟁업체만 좋은 일 시켰죠. 그 당시 청산을 하는데는 2만위안이면 될 일을... 제일 마음고생 한 것은 중국정부가 나를 범법자로 취급하는 것이었어요.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어이 없는 일이죠.”
안일함이 낳은 엄청난 사업손실이었다. 차 대표는 “설마 톈진시 정부가 특급열차로 12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칭다오시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여 법률 위반을 적용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범법자로 몰려 벌금을 내고 사업자 명의변경을 안하면 조업을 계속 중단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이해가 안됐어요”라고 했다. 중국정부 당국이 허술할 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으면서 때를 기다리다 일격을 가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심지어 칭다오시의 세무국 직원들이 회사에 파견되어 회사의 재무제표를 조사하고 다른 위반 사실을 하나라도 더 밝혀내려는 듯이 할 때는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생산이 중단되자 몇 년간 공을 들여 현지 기술자를 양성했는데 그들도 경쟁업체로 이직하고, 회사가 부도났다는 등의 소문에 정말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일부 판매상은 내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가 문제가 있다면서 제품은 좋지만 거래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예전보다 판매액이 절반 수준에도 못미친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의 주재원들이 투자이전에 미리 현지조사도 하고 투자 및 회사설립에 관한 중국관련 법률도 파악하는 등 치밀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게 사실이다. 해외 사업을 함에 있어 주재국의 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 명제이다. 지금의 중국사회는 법제화를 지향하고 있고, 모든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지금도 중국사회를 단순히 ‘관시(關係)의 사회’라고 단정짓고 경영활동을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호된 결과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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