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자동차학원 앞에서의 신명난 새해 맞이

가장 외롭고 힘없는 곳으로부터의 연대

등록 2002.01.22 11:01수정 2002.01.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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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동부는 특별감독실시하라"는 요구를 갖고 전주동아자동차학원 노조지부장이 지난 해 12월 23일부터 전주 노동부 정문에서 노상단식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 구호는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몸에 휘발유를 퍼부어 불을 붙이고, 불길에 휩싸인 몸으로 절규하던 그 구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중소·영세 사업장에서는 이런 구호들을 외치고 있습니다. 나는 연말부터 틈틈이 농성장을 방문하면서 지부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70년 전태일 열사의 절규가 아직도

동아지부장은 단식 20일째에 119에 실려갔습니다. 동조단식농성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연일 노동부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졌습니다.

단식하다 쓰러져 병원에 들려가도 노동부와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농성자들이 죽든 말든 무관심한 노동부, 회사를 향하여 구호를 외치고 '죽은 사회'를 애도하는 상여소리를 종일 틀어댔습니다.

종래는 집회참가자들이 노동부 로비까지 들어가 구호를 외쳤습니다. 노동부는 노동자의 소리를 들으려는 태도는 전혀 없이 사진 찍어 고발하려고 법만 따질 뿐 "저들이 왜 저럴까?"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단식농성이 계속되던 나날들이 얼마나 추웠는지 모릅니다. 며칠동안 눈보라가 매섭게 휘몰아쳤습니다. 눈보라를 피하기 위하여 비닐을 쳤지만 바람에 날려버리곤 했습니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두 손을 펴 비닐포장을 지탱했습니다. 단식을 하지 않던 저도 처절한 마음이었는데 단식동조자들은 어떠했겠습니까? 굶고 있는 사람들이 거리를 헤매며 조합원들의 억울함을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언제 누가 쓰러질지 곁에서 보기에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도내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몰려왔습니다. 전국자동차운전학원 노조가 농성장에 모였습니다. 민주노총 공공연맹이 투쟁에 결합했습니다. 전국단위의 사안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노동자의 안타까움을 노동자만 알 수 있었던 것이지요.

"소외된 이웃을 섬기련다"

세상을 옳게 바라보고, 옳게 살려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있다보면 눈물이 납니다.
"돈을 섬기느니, 소외된 이웃을 섬기련다. 가진 자들이 못하는 것을 우리가 해 낸다. 서로기대며, 함께 하는 우리는 기필코 승리할 수 있다"고 저들은 확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급기야 노동부에서는 동아자동차학원에 특별감독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해고자 복직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싸우면 이렇게 희망이 생기는 법입니다.

가장 외롭고 힘없는 곳으로부터의 연대

따지고 보면 동아노조는 아주 작은 노조입니다. 조합원도 3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금속이나 사무연맹처럼 큰 사업장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회적 파장이나 이슈를 일으킬만한 사안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투쟁을 함께 한 사람들은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한마음으로 뭉쳤고,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연대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민이요, 잘못된 것을 고쳐야겠다는 굳은 마음에서 생겨난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가장 외롭고 힘없는 곳으로부터 연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일입니다.

난 매일 그곳을 방문하느라 힘들었지만 즐겁고 신명난 새해 맞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277호

덧붙이는 글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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