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 지식의 신화를 거부한다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신화>

등록 2002.01.22 16:35수정 2002.01.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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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미하엘 쾰마이어 지음·유혜자 옮김·현암사 펴냄)는 일단 두 가지 점에서 성공 가능성을 내비친다.

우선 하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독자들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는 시점에 시의적절하게 나왔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교양과 품위를 적당히 벗어던진 입말체 글투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쉬운 신화 책 시의적절한 출간

이 책의 이 두 가지 특징은 읽고 싶었지만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져 망설이던 당신들을 "이래도 안 읽을 테야!"라고 채근한다.

지금까지 선보였던 그 어떤 신화책보다도 명쾌하고 간결한 이 책은 지은이가 '작가의 말'에서 진술한 "신화는 본디 이야기였다"는 명제에 충실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지은이 쾰마이어는 우리가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남에게 처음부터 술술 이야기해주지 못하는 것은 애초 이야기였던 신화를 학문이나 교양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이 시대의 호메로스를 자임한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쓴 호메로스가 애초 시각장애인이어서 그렇긴 했겠지만 두 눈 지긋이 감고 신과 영웅의 이야기를 줄줄 읊던 이야기꾼이었다지 않은가.


1988년 소설 '영웅들의 유희장'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 '요한 페터 헤벨 상'을 받은 바 있는 쾰마이어는 「텔레마코스」나 「칼립소」(이상 현암사 펴냄) 등 품격 있는 역사 소설로 우리와 어느 정도 낯익힘이 돼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1995년 오스트리아 제1라디오(ORF)로부터 방송에 나와 신화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때마침 소설 「텔레마코스」를 막 끝내고 공허감에 빠져 있었던 차에 쾰마이어는 이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지만 매회 반 시간씩 열네 번 방송 예정이란 말에 난감해한다.

그러나 방송 준비는 시작되었다. 열심히 준비한 원고를 성우가 멋들어지게 읽어나갔지만 막상 읽혀보니 귀에 솔솔 쉽게 들어갈 단어나 문장이 아니었단다.

해서 궁여지책으로 그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로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방송은 애초 할애된 반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너무 짧아졌다.

한 권에 담은 그리스 신화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수없이 반복돼온 그리스 신화를 지은이의 독특한 이야기로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이 책은 1부 '오르페우스에서 오디세우스까지'와 2부 '에오스에서 아이네이아스까지'에 이어 3부 '에로스와 프시케에서 포세이돈까지'에서 신과 인간의 사랑과 증오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질 뿐만 아니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오디세이아』를 포함한 그리스 신화의 모든 것을 이 한 권에 담아놓았다.

그러면서 이 책은 늘 변화하는 신화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지은이는 이같은 입장에 충실하여 신화의 본류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재미있고 새롭게 썼다.

특히 신을 개별적으로 구분해 놓아 신화라는 큰 틀 속에서 자칫 한꺼번에 뭉뚱그려질 수 있는 신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신화 속에 빠져들어 오이디푸스의 독백에 마음 졸이게 되고, 신들이 사는 천상의 세계를 비웃고, 최고의 신 제우스의 넘쳐나는 정력에 미소를 머금고, 오디세우스의 안전한 귀향을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오레스테스의 뜨거운 복수심이 제발 가라앉기를 빌게 된다.

어느덧 이 책을 읽은 당신은 또 한 사람의 신화 이야기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신화의 샘은 영원히 마르지 않기에. 또 신화를 이야기로 꾸미는 사람은 이야기를 계속 새롭게 꾸밀 수 있기에.

그래서 당신은 신화 전문가이다. 누구나 신화를 남에게 들려주면 그 순간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그리스 신화
미하엘 쾰마이어 / 현암사 / 704쪽 / 19,500

덧붙이는 글 그리스 신화
미하엘 쾰마이어 / 현암사 / 704쪽 / 19,500

그리스 신화 - 문명의 내밀한 상징과 기호를 푸는 이야기 퍼즐

미하엘 쾰마이어 지음, 유혜자 옮김,
현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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