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구입해 읽은 동기는 단순하다. 아내가 현재 자폐아 치료 교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폐아가 대체 어떤 아이들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폐증'이라는 말은 전부터 많이 들어보았고, 자폐아들이 어떤 증상을 보이는 지에 대해서도 아내를 통해 가끔 듣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자폐아를 이해했다고 감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자폐아를 둔 부모나 치료 교사들마저도 자폐인 스스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지 않고는, 자폐아의 내면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매우 보기 드문 기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자폐인 템플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털어놨기 때문이다.
자폐증에 걸린 아이가 자폐를 극복할 확율은 거의 희박하다고 한다. 따라서 자폐아를 둔 부모의 걱정은 무엇보다도 아이의 불안한 미래일 것이다. 그런데 템플의 이 책은 자폐아들에게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주위의 자극 때문에 돌출행동을 벌이곤 했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기 일수였다.
특히 템플의 반복적인 질문이나 행동의 고착성은 항상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거나 그를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자폐증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은 오해와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템플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의 장애 극복을 위해 부단히 애쓴 흔적이 엿보이며, 템플 그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현재의 연구결과를 곳곳에 소개하면서 자폐증 극복을 위한 매우 유익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자폐아 아동들에게 있어 자신만의 비밀공간을 갖는 것과 압박기 사용의 효과를 매우 비중 있게 적고 있다. 저자의 경우에 압박기에 대한 고착성은 마침내 그를 동물학 교수로 만드는 직접적 동기가 되었다.
이것은 자폐인의 중요 특성인 "고착성"을 창조적으로 잘 활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기까지는 그를 가장 잘 이해하고 훌륭한 지도와 아낌없는 도움을 준 칼록 선생이 있었다. 저자의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칼록 선생은 템플의 고착적 생각을 기괴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잘 살리도록 유도해 주었던 것이다.
칼록 선생의 조언에 힘입어 템플은 더욱 열심히 공부했으며, 자폐인들을 위한 치료 기구로서 압박기를 고안해 내기에 이른다. 자폐아들은 주변 사람들의 과도한 포옹이나 접촉에 대한 기피와 불안을 나타낸다고 한다. 압박기는 이러한 자폐아들의 애정결핍 현상을 치유하는 데 일정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져 현재 미국에서는 많이 쓰는 추세라 한다.
저자 템플은 아직까지도 자폐증을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즉 언어 습관 교정 등, 대인관계의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자기 계발에 전력을 다한다. 자가 진단을 해가면서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자폐증을 완치하기 위한 특별한 방도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저자 템플의 경험처럼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훌륭한 지도가 병행될 때, 자폐인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데까지 이를 수 있으리라 본다.
이러기까지 자폐인에 대한 일반의 관심과 이해가 폭넓게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의 경우 자폐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했던 시절 자랐음에도, 그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우리네 풍경과는 사뭇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우리 문화 속에서는 자폐아가 초등학교 마저 정상적으로 졸업하기도 힘든 형편이 아닌가?
국내 자폐아 인구는 4만 명 이상이나 되는데도, 지금까지 정부에서 운영하는 자폐아 전문치료기관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게다가 그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눈길은 쌀쌀하기만 하다. 이 책을 통하여 아직도 "특수 아동"으로 취급받는 자폐아에 대한 일반의 인식과 이해의 폭이 더욱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자폐인 이야기 - 개정판
템플 그랜딘 지음, 박경희 옮김,
김영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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