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

"그 놈이 그 놈이야" 하며 분노하는 한 노숙자의 독설은

등록 2002.01.26 10:28수정 2002.01.2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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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렵 지하철 한 역사의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 노숙자가 무언가 독백을 하고있다. 다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물으니 대뜸 “ 이 놈이나 그 놈이나, 그 놈이 그 놈이야..” 하며 최근 신문에 연일 보도되는 ㅇㅇ게이트니 부패, 뇌물, 스캔들 등등을 염두에 두고 쓴 소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고급 유흥가가 즐비한 강남의 한 건물, 그 곳은 지나가는 시민을 유혹하는 복합이용시설이 들어찬 곳으로 화상방(TV화상데이트방), 전화방(전화휴게실), 비디오방, 노래방이 각 층을 차지하며 지나가는 행인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었다.

전화방은 15000원 입실료를 내고 들어가 0.5평의 칸막이 공간속의 도구들(컴퓨터, 전화, 안락의자 등)을 이용하여 남성이 상대 이성인 여성과 전화로 데이트를 즐기는 장소로 일반적인 대화 뿐 아니라 은밀한 대화와 매매춘이 거래되기도 한다.

한 여성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30대 초반으로 강남에 거주하는 가정주부인 그 여인은 전화방에 전화했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기는 하지만 호기심에 한 번 발을 담그니 알코올중독처럼 좀처럼 끊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다양하고 은밀한 제의도 받았다고 고백한다.

왁자지껄한 강남 테헤란로 부근의 한 호프집. 벤처기업이 즐비한 그 곳의 민심이 궁금했다. 현재 진행중인 각종 게이트 사건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벤처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일부의 탐욕스런 위장 벤처인이 대다수 벤처인들의 명예와 의욕을 짓밟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위 `국민의 정부`에서 이루어진 친인척과 대통령의 최측근 보좌진, 최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엮어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쏟아내는 독설은 현재의 민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즉, 대통령을 포함한 비리의혹 관련하여 청문회가 열려야 하며 그 시기는 현직 대통령 스스로 발의에 찬성하고 액션을 즉시 시행하라는 것이다.

전화방 바로 윗 층에는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비디오방이 위치해 있다. 두사람이 9000원을 주면 비디오 한 편을 볼 수 있으며 안락한 의자에서 편안하게 영화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약간의 웃돈을 주면 포르노 비디오를 틀어주는 악덕업자로 인하여
그 들은 쉽게 유혹에 넘어가며 포르노비디오를 보며 젊은 남녀가 밀폐된 공간에서 어떠한 일을 벌일지는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이름하여 `선거의 해` 2002년 , 지자체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지는 올해는 누구라도 국운을 가를 중차대한 시기임에는 공감할 것이다. 이미 여야는 선거 열풍에 휩싸이고 있으며 여당인 민주당은 부패의 사슬에서 벗어나고픈 절실한 심정에서 국민경선제 도입을 선언했고 야당도 유사한 제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민심은 생각이외로 차고 냉소적이다. 투명한 정권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저버리는 정치인들에게 민심은 이미 등돌린 지 오래다. 설마설마하며 기대했던 선량의 가슴에 못을 박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간에 포장마차에서 만난 중년의 샐러리맨이 던지는 일그러진 우리들의 자화상이 바로 이것이다.

비디오방 윗층에는 최근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화상방이 존재한다. 입실료 2만 원을 내면 전화방과 비슷한 공간에 텔레비전이 있고 그 위에 카메라 1대가 설치되어 다른방의 여성과 화상으로 대화하며 데이트를 즐길 수 있게 되어있다. 이 곳엔 친구 따라 처음 와봤다는 20대 후반의 한 여성은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퇴출되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왔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리고 화상방을 통해 얻어진 수입은 데이트 비용으로 쓰기도 하고 저축하기도 한다고 한다.


5시간에 걸친 도시의 방담을 마친 나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노숙자와 마주쳤다.

“그 놈이 그 놈이야..”라는 말이 쉽게 지워지지 않은 채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으로 가슴을 달래며 담배를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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