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동물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환경운동연합 <하호>, '슬픈 동물원' 보고서 발간

등록 2002.01.30 14:47수정 2002.01.3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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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가지씩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동물원'에 관한 기억들. 봄날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한 손엔 솜사탕을, 그리고 또 다른 손엔 풍선을 들고 잔뜩 호기심에 부푼 눈으로 동물 우리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던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본다면 분명 '동물원'은 우리에게 특별한 장소다. 오죽하면 '동물원'이란 그룹이 나와 비슷한 느낌의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을 정도.

하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창살 안쪽의 동물들은? 관람객 입장에선 즐거움이지만, 자신의 터전을 떠나 평생을 폐쇄된 동물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동물들에겐 큰 고통일 수밖에 없다. 최근 환경운동연합 동물복지회원 모임인 <하호>는 지난 1년 동안 매달 동물원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동물원' 안에 갇힌 동물들의 '슬픈 모습'들을 들여다보자.

콘크리트 벽과 쇠기둥을 핥고 있는 기린, 벌거숭이 타조, 시멘트바닥의 고릴라. 그뿐만이 아니다. 나귀는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고, 잔점박이물범은 눈각막에 심각한 염증이 생겼다.

그리고, 습지에 사는 시타퉁가와 사막지대에 사는 흰오릭스는 한 집에 산다. 이유는 단 하나, 둘 다 초식동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사육장은 습지도, 사막도 아닌 초원으로 조성돼 있다.

TV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 동물 새끼를 어미가 아닌 사육사가 인공으로 기르는 모습이다. 이런 현상이 단순히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만일까.

그렇지 않다. 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어미들의 모성 본능이 스트레스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를 동물원의 자화상 중 가장 슬픈 모습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러나, 정작 국내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의 실태에 대한 조사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고 먼저 길을 연 것은 환경운동연합의 '야생동물 보호와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모임인 <하호>.


이 단체가 최근 발간한 '슬픈 동물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공원에 있는 많은 동물들이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본격적인 내용 소개에 있어 먼저 <하호>라는 모임의 명칭부터 살펴보자. 왜 하필이면 '하호'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관계자에 따르면 '하호'는 '하늘다람쥐에서 호랑이까지'의 약자다. 또 다른 의미심장한 의미도 가지고 있다. 모든 동물이 '하하 호호' 웃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이야기다.


<하호>는 지난 1년 동안 동물원에서 사육되고 있는 동물들의 실태와 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매달 서울대공원을 찾았다.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의 상태, 사육 시설, 관람객들의 관람 문화, 부대시설과 각종 행사 등 동물원의 전반적인 운영과 문제점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호>는 올해에도 '도시의 까치와 비둘기'라는 주제로 실태 파악에 나설 예정이다.

서울 동물원의 동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 수준이 의심스런 관람문화, 미비한 동물원 행정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슬픈 동물원'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10억 원 몸값, 현실은?

살아 있는 동물을 수집하여 일반인들에게 관람시키는 사회 교육 시설인 '동물원'의 역사는 약 5천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 암스테르담, 베를린 등 전세계 유명 대도시라면 하나씩은 보유하고 있는 근대식 동물원의 효시는 1765년 대중에게 선뵌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동물원이다.

동물원은 크게 ▲교육(동물의 생태와 서식지 자연환경, 동물 정보, 동물 보호 등) ▲휴식제공 ▲연구(관찰과 조사, 야생동물의 행동학·영양학·수의학) ▲야생동물 보전(멸종위기 동물 보호와 번식, 자연환경에 방사)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동물원인 '창경원' 이후 국내엔 부산 동래사설동물원, 대구 시립달성공원 동물원, 광주시 사직공원 동물원,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용인 자연농원의 라이오사파리 등 총 14개의 동물원이 들어서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

이번 보고서의 조사 대상이자 84년 당시 창경원의 동물원이 이사를 온 서울대공원은 지난 78년 착공해 84년 5월에 문을 열었다. 개원 당시만 해도 10개 동물사, 72종 361마리에 불과했던 동물들도 어느새 77개 전시동, 361종, 3100여 마리로 증가했다. 그러나, 동물 사육 실태와 동물원의 관람 문화를 비교하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다는 게 <하호>의 평가다.

가장 먼저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역시 동물 수용 상황과 건강 상태.

이 모임은 "세계 각지에서 비싼 값으로 들여왔지만, 동물 저마다의 생태 조건은 무시돼왔다. 삭막하고 좁은 콘크리트 사육장이 서울 대공원 동물원의 현재 모습이다"며 "습성과 서식지 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사람이 동물을 관리하기 쉽도록 설계되고 유지돼 그만큼 동물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콘크리트 바닥을 선호하는 것은 배설물, 음식 쓰레기를 청소하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 그러나, 이로 인한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달해 있었다.

세계적인 희귀 동물로 몸값만 10억 원에 달한다는 로랜드 고릴라는 원래 숲에서 사는 동물이다. 그런데도 사육장 안에는 울창한 숲은커녕, 나무 한 그루조차 심어져 있지 않다. 부드러운 흙을 밟고 살아왔던 로랜드 고릴라는 두 발의 엄지 발가락을 이미 잃은 상태였고, 여름엔 뜨거운 콘크리트 바닥을 피해 손바닥만한 그늘 밑으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호>는 햇볕을 막아줄 나무를 심는 대신에 벽에 숲과 고릴라를 그려놓은 것으로 자연 서식지를 대신하려는 모습에 대해 이곳의 관리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일침을 놓았다.

습지에 사는 시타퉁가와 사막지대에 사는 흰오릭스는 체구가 비슷한 초식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사육장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사육장은 습지도 사막도 아닌 초원으로 조성돼 있었다.

독수리, 참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들은 그 사육장이 너무 좁아 4∼5미터의 횃대에 올라갈 때 외에는 날개를 쓸 일이 없을 뿐더러, 애초부터 큰 날개를 펼쳐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맹금류들은 그저 가끔씩 날개만 펼쳐 보일 수밖에 없다.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도 마찬가지.

그나마 사육장 중 면적이 가장 넓은 곳에 속하고 개체수도 세 마리뿐인데다 관람 인기도 높기 때문에 그나마 호강하는 동물에 속하지만 그 뒤에는 선택받지 못한 5마리의 사자가 숨어 있다. 이 5마리는 좁은 철창 사육장에 갇혀 달리기는커녕 돌아다닐 공간도 없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지능이 높은 동물로 20여 마리가 무리 생활을 하는 침팬지나 암컷 우두머리의 통솔을 받아 집단 생활을 하는 코끼리 역시 한두 마리만 사육되고 있었다. <하호> 관계자는 영국의 에딘버러 동물원의 경우 이런 환경을 조성해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코끼리 대신 코끼리 상을 만들어 놓았음을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연기념물 관리도 소홀

앨런드를 비롯한 초식 동물원의 사육장 바로 앞엔 무시무시한 사자와 치타 사육장이 위치해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사자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초식 동물들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잘못됐다는 게 이 단체의 평가다.

북극곰도 해마다 여름이 되면 자신과 맞지 않는 무더위와 사투를 벌여야만 한다. 주어진 무기라곤 큰 얼음덩어리 몇 개뿐이다.

<하호>는 적절한 서식환경을 조성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북극곰의 도입을 포기한 대만의 경우처럼 제대로 사육할 수 없다면 아예 들여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냉정하게 비판했다.

야행성 동물도 고난을 겪기는 매일반이다. 올빼미, 부엉이, 박쥐 등 야행성 동물의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육장 안의 낮과 밤은 밖과 정반대다. 낮엔 밤처럼 어둡게 하고 밤에는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어둡게 채광이 유지돼야 할 야생성 동물관에 환기를 이유로 열어둔 문을 통해 빛이 새어 들어온다. 결국 야생성 동물들은 24시간 내내 빛과 함께 지내야 하는 '고문'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마 사육장과 해양동물관은 물을 자주 갈아주지 않아 나쁜 수질 상태를 스스로 이겨내야만 한다. 특히 바다에 사는 잔점박이물범사육장은 비용 문제로 바닷물 대신 지하수를 공급해 눈에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한 마리는 안구가 파열될 정도로 심각했다는 게 이 단체 관계자의 말.

반면 하루 3, 4회 공연을 하는 인기 동물인 돌고래는 민물에선 바로 죽는다는 이유로 깨끗한 바닷물을 공급받고 있었다.

관리가 소홀한 것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368호인 삽살개도 마찬가지. 용맹과 충절의 상징인 삽살개는 여기저기 털이 뭉쳐 있고 생기가 없는 등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고 <하호>는 지적했다.

동물들의 안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 반달가슴곰 새끼는 다른 곰에게 공격 당하여 앞발을 잃었고, 사자 사육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다. 폭설로 인해 큰물새장을 덮고 있던 그물망이 내려 동물들이 압사한 경우도 사육장 구조의 취약점을 보여준 사례로 언급됐다.

동물들의 육체적 건강과 함께 엄청난 스트레스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기린의 경우엔 벽과 기둥을 핥는 모습이 자주 관찰됐는데, 이것은 먹이를 얻고자 하는 것도, 영역을 표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닌 이상행동이라는 것.

푸른 초원을 시원스레 달렸던 타조도 자신이나 다른 개체의 털을 뽑아 흉한 피부를 드러내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보여줬다. <하호>는 또, 실내사육장의 관람창을 발로 차거나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침팬지 역시 시선을 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갇힌 상태의 비참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람문화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동물원에서 마련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해 생태를 더 가까이 체험할 방법이 없는 관람객은 사육장 주변의 풀이나 나뭇잎 또는 가져온 과자 등을 주는데, 심한 경우는 초식동물에게 소시지나 육식성 먹이를 주기도 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

특히 인기동물인 하마는 태국에서 온 한 관람객의 팔을 물어 잘리게 하는 등 사고를 일으키는 단골 손님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관람객은 먹이를 주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는 모험을 시도해,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동물들에게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동전, 돌을 주는 경우도 가끔씩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일부 관람객은 악어거북의 등에 동전을 던지며 즐거워했고, 유치원생 인솔교사는 동물 앞에서 노래를 선창하는 등 시끄럽게 했지만 제지하는 관리인은 아무도 없었다.

휴식 공간이 부족한 나머지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는 볼썽사나운 먹거리 문화도 여전했다. 안내책자도 부실한 건 마찬가지. 너구리나 수달이 보고 싶은 관객은 길 안내판, 안내지도에도 없는 그 동물을 찾아 발견할 때까지 종일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자의 말.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팀 마용운 간사는 "서울시가 관리하고 있는 서울대공원은 엄청난 돈을 들여 화장실을 최신식으로 개보수하면서도, 정작 동물사육시설에 대한 투자와 개선에는 인색하다"면서 "동물 이미지의 인형이나 기념품, 동물원 안내책자, 동물 관련 전문서적 판매 등도 깊이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서울대공원의 주인은 결국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동물들의 사육 여건이 개선된다면 그 보답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며 "조만간 대공원 관계자와 만나 시정을 요구하는 등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민주신문> 250호에 실려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민주신문> 250호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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