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선제 관건은 도시락(?)

7만여 명, 2끼 도시락 비용만 7억 소요

등록 2002.01.31 13:35수정 2002.01.3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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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금일봉을 건네지 않겠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경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돈선거'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져가고 있다. 한 대선주자의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선 100억 운운하지만, 우리측에선 10억 이하로 보고 있다"며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정적인 인식이 커질까봐 공개적인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근태 고문은 1월 중 이뤄졌던 지구당 방문시 금일봉을 건네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주목을 받았다. 지난 23일엔 대선주자들의 '경선자금 규모와 경선후 회계내역 공개'를 공식적으로 제안하며 다른 캠프들을 일순간 긴장시키기도 했다.

민주당 예비경선서 돈을 쓰고 타락선거가 되면 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제안의 근거다. 이어 그는 "국민들이 돈쓰는 정치, 돈쓰는 선거를 반대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돈 쓰는 세력에 대해 정치수완이 있다고 평가를 하면 한국사회는 결코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며 국민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개혁성향의 또 다른 한 주자도 "이번 과정에서 노란 봉투가 하나라도 눈에 띄면 안 될 것"이라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는 전언이다. 이미 각 선거 때마다 지구당 대의원들과 당원들에게 '살포'되던 금일봉고 돈선거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제기돼 왔었다. 다음은 서울에 지역구를 둔 한 초선 의원의 증언.

"도시에선 더 이상 매표행위를 찾아 볼 수 없다. 문제는 당원들에게 돈이 든다는 것이다. 돈을 원하는 대로 안 대 주면 오히려 악선전을 하고 다닐까봐 어쩔 수 없다. 선거 후마다 '양심선언'이 그토록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대철 고문도 우리 정치풍토를 설명하며, 이런 예를 든 바 있다.
"지역구를 돌며 유권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닐 때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고 인사하자 밍크코트를 입은 한 중년 부인이 불쑥 '맨 입으로 됩니까'라고 답하더라"


평상시에는 돈 안드는 정치를 거론하다가도 막상 중요한 시기가 되면 인정과 의리에 치우친다는 게 그의 설명. 정고문은 "그렇다고 그 부인이 결코 촌지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뭐 '설렁탕이나 커피라도 한 잔 하자'는 뜻 아니었겠느냐"며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문화가 변화해야 하며, 이는 유권자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어떤 정치인은 꽃값만 월 3천만 원이 든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선물과 뇌물의 개념이 불명확한 것도 '돈드는 정치'에 한 몫 단단히 해 왔다. 때문에 김 고문을 비롯한 개혁성향의 의원들 일부는 "동원정치가 아닌 돈 안드는 정치를 위해서도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선거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이번 국민경선제 과정에서도 홍보만 예정대로 잘 이뤄진다면 도시의 경우엔 자원 봉사 체제로 갈 수 있는 혁신적인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게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소외된 농어촌 지역과 지방 변두리의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 총선서 전남 지역의 한 선거구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는 "기존의 투표 성향으로 볼 때, 이곳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었고 결과도 그렇게 됐다"며 "하지만, 일부 유권자들은 그 와중에서도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런 상황은 올 국민경선 기간에도 사정은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 이런 점을 볼 때 "7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실험이다. 인터넷을 이용해 참여하는 사람은 그 중 2.5%에 불과하다. 결국 예전과 같은 관행을 생각한다면 여기에 맞먹는 도시락과 교통수단, 이를 준비하는 인력이 필요한 셈"이라는 관계자의 지적은 상당히 흥미롭다.

1인당 5천 원의 도시락 비용을 책정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만 3억 5천만 원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정가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실제로는 하루 온종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두끼의 식비가 배정돼 1만 원이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기에 차비, 선물값, 선거운동원의 수고비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금까지의 선거풍토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임은 당연해 보이며, 이것이 다른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도 상당히 의문스럽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여권 일각에선 각 지역마다 경선을 치르는 만큼 차비와 식사를 제공하지 말고, '자원 봉사 체제'로 가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국민경선제 성공의 중요한 기준이 '돈 안 드는 선거'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공정한 경쟁의 장이자, 축제로 치러져야 한다는 점에서 도시락을 제공하느냐, 안 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애써 오는데 도시락 정도는 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면서도 "동원정치의 상징이 '도시락'이라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돈이 적게 드는 선거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고 털어놨다.

내각제 개헌과 3당 합당설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쇄신안을 하나 하나 실행에 나가야 하는 민주당의 고민이 더욱 풀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민주신문사> 250호에 실려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는 <민주신문사> 250호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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