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소리에 저는 까까머리가 됩니다

<임종진의 삶, 사람 바라보기 5>

등록 2002.02.09 17:02수정 2002.03.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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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진



어린 시절
읍내에서도 강 하나를 넘어 산을 두 봉우리나 넘어야 펼쳐지는 우리 동네.
까까머리 촌 머스마는 장날만 돌아오면 신이 났습니다.

식당일 바쁜 어미의 치맛자락에 매달려서는 징징거리며 졸라대더니
"반 바가지만 가져가야 돼!"
까까머리는 어느새 뒷마당으로 내달려 묻어놓은 항아리에 머리를 들이밀었습니다.
팔을 뻗어 푹 퍼낸 반 바가지의 쌀.

아쉬운 듯 바라보다 엉큼한 작은 손이 다시 항아리에 들어갑니다.
한 주먹 더 쥐어들고는 들킬까 싶어 까까머리는 그대로 날아갑니다.

시골장날 가장 바쁜 아저씨.
덥수룩한 수염에 구릿빛 얼굴.
뻥튀기 아저씨는 반갑게 까까머리의 쌀바가지를 받아듭니다.
이내 장고처럼 생긴 검은 기계 속에 집어넣고는 빙빙 손잡이를 돌려 댑니다.

"귀 막아야지. 아가."
항상 빙그레 웃기만 하는 뻥튀기 아저씨의 말에 정신이 번쩍.
두 눈을 꼭 감고
귀도 힘껏 틀어 막지만….
심장은 쿵쾅거리고 이마엔 땀방울이 촉촉하더니
"뻥이요!" 소리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펑!"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을 뜨니
온몸을 둘러싼 하얀 연기 사이로 어느새 반 바가지의 쌀은 한 자루의 튀밥이 되었습니다.
놀란 심장은 잠잠해지고
촉촉한 땀방울도 사라지고
이내 앞에 놓인 먹을 것에 두 눈이 팔려 버렸습니다.

까까머리는 푸댓자루를 짊어진 채 의기양양 집으로 향했습니다.
반 바가지가 뭐이리 많으냐는 어미의 타박쯤은
일은 다 끝났다는 듯 귀에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다락방 구석에 자리를 잡아
푸댓자루에 머리를 박고는 행여나 소문날까봐 조용히 튀밥을 우물거렸습니다.

"형아! 어디 떠어!"
어디선가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참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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