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 오묘함에 대하여

<아줌마만 봐!> 결혼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

등록 2002.03.01 23:39수정 2002.03.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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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녁을 먹어도...


오래간만에 밖에서 저녁을 먹는다. 형님네가 한턱 낸다는 말에 22개월된 아들녀석 손을 잡고 나들이 삼아 길을 나섰다. 아들녀석은 집안에 있다 나온 것에 마냥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며 엄마는 아랑곳도 없다.

아주버님과 남편이 함께 장사를 하는 관계로 아주버님이 교대를 해주어야 남편이 퇴근을 할 수 있는데 보통은 약속한 시간을 훨씬 넘어서 교대를 하는 관계로 늘 남편은 늦은 저녁을 먹기 일쑤인데 오늘도 역시 외식을 이유로 늦게 가시려나 보다.

졸업을 하고서 직장에 다니지 않았던 남편은 형이 하는 가게에서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고 결혼한 뒤로 계속 하고 있다가 최근엔 동업이란 형태로 본격적으로 장사를 같이하게 되었다. 결국 돈을 벌게 해주고 가정을 꾸려 먹고 사는데 지장 없게 해준 것이 형님네가 되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같은 과 동기로 8년을 알아오다 뒤늦게 불꽃이 튀어 결혼을 했다. 나이도 들었었지만 남편의 성실함이 나를 이끌었다고나 할까? 결혼 4년 동안 부부싸움도 몇 차례 있긴 했지만 이 남자와 결혼한 걸 후회한 적 없다. 결혼 전 직장보다는 장사를 하고 싶다는 이 남자의 얘기에 나는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고 지금껏 잘 해오고 있다고 믿는다.

2.새롭게 다가오는 문제...


결혼을 하면서 6남매의 막내며느리란 자리가 내게 돌아왔다. 결혼 전에야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알아서 했고 나의 부모님은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셨는데 결혼을 하고 난 뒤로는 사정이 달랐다. 늦게 낳은 막내에 대한 걱정이 많으신 시어머니는 늘 남편을 염려하시고 장사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에 전화도 자주 하시는 편이다.

시집과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시누들과의 불화... 이런 것들과 나는 사실 거리가 좀 있다. 결혼 후부터 하고 싶은 얘기는 모두 하며 살았고 시어른들이나 시누들도 같은 며느리 처지라 많이 이해해주는 관계로 대체로 솔직하게 싫고 좋음을 표현하며 산다. 단 한 사람만 빼고는...


'시어머니 시집살이 보다 동서 시집살이가 더 무서운 건 알고 있지?'
결혼하고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자 지금도 듣고 있는 말이다. 며느리가 둘인 집에서 동서시집살이를 시킨다함은 윗동서인 형님이 아랫동서인 나를 시집살이 시킨다는 말이다.

결혼 4년동안 형님한테 혼(?)나기도 몇차례... 그 때마다 나는 이유가 있어도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은 물론이요, 시어른, 남편에게도 나름의 이유를 들어 나를 변호했던 것과는 달리 형님에게만은 이유가 있으면 안됐다.

3. 왜?

남편이 형님네에서 먹고 살지 않았다면, 형님네와 장사를 같이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데도 나는 늘 형님에게 '아니오'소리 못하고 '네'만 하며 살았을까? 남편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장사를 했다면 교대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을 그냥 넘어갔을까?

동서간의 미묘한 문제를 넘어 장사를 같이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형님에게 빚을 지고 사는 듯한 느낌이고 형님 역시 큰 혜택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얘기를 해서 상기를 시켜주고 있으므로... 잊을래야 잊을 수도 없고 혹 많이 배웠다고 난 체하면 그 꼴 못 본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결혼 4년동안 단 한번도 형님이 하라는 것에 대해 '아니오'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안할 것이다.

4. 그렇지만...

나이들고 먹고 살만해져서 '아니오' 할 수 있지 않냐고 남편은 얘기한다. 그러면 안되지, 어쨌든 먹고 살게 해준 것을 잊으면 안되고 더욱이 먹고 살만해졌다고 그럴 순 없다고 나는 말한다.

내가 결혼하고서 달라진 것은 그런 부분이다.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아닌데도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것. '예'라고 대답해서 위, 아래 동서간의 불행의 씨앗을 없애는 것, 윗동서가 무조건 잘하고 모든 일은 듬직한 큰며느리가 철없는 막내며느리 잘 가르쳐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동생보다 형님이 잘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결혼으로 내가 얻은 것은 이 모든 얘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한 사람을 곁에 두었다는 것이다. 내가 뭘 하고 싶고 어떤 불만이 있고 누구에 대한 욕을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얘기하는 한 사람, 남편과 함께 산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릴 때 할 수 있을 거라고 늘 내편이 되어주는 한 사람과 밥을 먹고산다는 것이다.

5. 함께 외식할 순 없어도...

형님네가 사는 저녁, 내키지 않아도 나는 기분 좋게 나가서 신나게 먹을 수 있다. 남편이 없는 서운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아주버님의 늦은 교대를 눈감을 수 있다. 결혼 후 내가 달라진 것은 아닌 것을 '예'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사는 것은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고 또한 나와 관련된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다. 결혼이 사랑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아는 나는 그 새로운 시작을 나와 함께 사는 남편과 같이 걸어갈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남편에게 주는 '결혼으로 시작된 새로운 관계에 대한 나의 첫번째 결론'이다.

덧붙이는 글 | '아줌마들만 봐!'연재에 우선 참여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인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입니다. 이번에 글을 쓴 김선희는 서른의 강을 넘어 여자와 평등한 관계를 생각하고 있는 엄마입니다.

덧붙이는 글 '아줌마들만 봐!'연재에 우선 참여한 사람들은 아줌마들의 인터넷 해방구인 웹진 줌마네(www.zoomanet.co.k)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줌마들입니다. 이번에 글을 쓴 김선희는 서른의 강을 넘어 여자와 평등한 관계를 생각하고 있는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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