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간 반, 열차 속에서의 수업

자율과 타율의 차이

등록 2002.03.11 19:53수정 2002.03.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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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0교시도, 보충학습도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한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어느 날 0교시 아침 자율학습 시간, 저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뽑은 한 대목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안녕" 어린 왕자가 인사했다. "안녕" 상인도 인사를 했다. 그는 목마름을 해소시켜주는 알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씩만 먹으면 목이 마르지 않게 된다는 약이었다. "왜 이런 것을 팔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이 약은 시간을 아주 많이 절약하게 해주거든. 전문가들이 계산해본 결과, 일주일에 53분씩이나 절약을 할 수 있다는구나" "그러면 그 53분으로 무얼 하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만약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53분이 있다면,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텐데…' 어린 왕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읽기를 마친 뒤 제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그 알약을 먹었을까요? 안 먹었을까요?" 너무도 당연한 질문을 던진 것은 아이들이 이 글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참뜻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고자 함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대답을 했습니다. "안 먹었을 것 같습니다" "왜죠?" "예, 그러니까…" 그 아이는 끝내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만 만지작거리다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창 쪽에 앉은 한 아이의 입이 실룩해지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아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말해봐" "저, 물을 먹는 기쁨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맞아요, 그리고 물을 마시러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기쁨도 맛 볼 수 없었겠지."

그날 제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세계 교육사에 유례가 없는 0교시 아침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밥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학교에 옵니다. 행여 눈앞에서 차를 놓칠 새라 도덕이나 사회시간에 배운 신호등 지키기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사랑이 가장 훌륭한 교과서
ⓒ 오마이뉴스 조호진
제 시간에 닿지 않으면 '자율 학습'시간인데도 늦게 왔다고 담임 선생님에게 혼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서둘러서 아침 일찍 학교에 온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곧바로 책상에 엎드려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아니면 동무들과 어울려 잡담을 하기가 일쑤입니다.

담임 선생님이 고래고래 악을 질러대야 아이들은 마지못해 책을 폅니다.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어린 왕자'의 모습처럼 내밀한 기쁨을 간직한 채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실업계 학교인데도 매년 학기초가 되면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선생님, 특기적성교육 희망자만 합니까, 다 합니까?" 저는 이렇게 분명하게 대답해 줍니다. "특기적성교육은 희망자만 하도록 되어 있어. 그러니까 당연히 희망자만 하는 거지."

그러면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다가 이렇게 또 묻습니다. "그럼 특기적성 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갑니까, 학교에 남습니까?" 저는 또 이렇게 대답합니다. "특기적성을 하지 않는 사람을 학교에 남기는 것은 불법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안 하는 사람은 당연히 집에 가는 거지" 옳고 정확하고 진실한 말을 했는데도 아이들은 제 말을 믿지 않는 표정입니다.

▲억지로 짜낸 웃음은 울음이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게다가 어떤 정해진 원칙대로 행하려는 저의 당연한 태도가 좀 이상해 보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슬픈 이야기지만, 아이들이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아야할 진실과 정직, 이 두 단어는 학교 현장에서 낯설거나 죽은 단어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얼마 전 토요일 오후, 시내 서점에 들렸다가 시내 인문계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P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얼굴이 초췌한 것이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P선생님은 그날 이렇게 자신의 속내를 제게 털어놓았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는 아니었어요. 올해 들어와 갑자기 전교생 보충수업 야간 자율학습을 강행하겠다는 겁니다. 희망자에 한해서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니까 다른 학교도 다 강제로 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되레 화를 냅니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과목만이라도 지침대로 학생들 희망을 받아서 하자고 했더니 그러면 시간이 걸리고 복잡하다면서 또 하는 말이 모든 학교가 다 그런 식으로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도대체 우리 학교의 교육방침은 없는 거냐고 물었더니 저더러 젊은 사람이 건방지다는 겁니다."

P선생님은 마음에 복받치는 것이 있는지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숨을 한 번 돌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저! 초롱한 눈빛들...
ⓒ 오마이뉴스 조호진
"보충자율학습을 먼저 시행하고 나중에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희망원을 받는 것은 결국 아이들에게 공문서 위조를 가르치고 조장하는 꼴이 아닙니까? 아이들이 우리 교사들을 어찌 보겠습니까?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또 장차 어떤 인간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학생이든 학부형이든 그들이 받은 불이익과 부당함에 대해서 항의하고 따질 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저를 더 슬프게 합니다."

그날 저는 P선생님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자기 진실과 자율적인 의사를 버리고 불의와 타협하거나 현실에 굴종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우는 셈이 아닌가. 그리고 이 세상은 자기보다 힘이 센 자나 어떤 막강한 권력 앞에서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패배의식을 스스로 각인시키는 그런 과정이 바로 그들의 학창시절이 아닌가.

이것이 노예교육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그런 어둡고 우울한 생각에 잠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애써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해서 그랬는지 갑자기 제 기분이 환해지며 머리 속으로 옛 기억 하나가 연기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열차 속이었습니다. 저는 삼성그룹 공채시험을 치르기 위해 상경하는 학생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취업 담당 인솔교사가 따로 있었지만 저는 열차 속에서 영어수업을 하기 위해 아이들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낙서가 있는 책상, 그래서 책상이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그 해 여름 저는 삼성그룹 공채 시험을 앞 둔 12명의 아이들을 맡아 학교에서 자정이 넘도록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가정 형편이 곤란하여 상업계 학교에 온 아이들이라 부족한 영어실력을 학원에서 보충할 수도 없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청하여 무보수로 한 달 남짓 아이들에게 영어를 지도해준 것입니다.

아이들은 저와 함께 학교 교실에 남아 밤잠을 설치며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이라 책 한 권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수업을 마감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 교장선생님께 특별한 간청을 드렸고, 그것이 흔쾌하게 받아들여져 아이들과 동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고졸 출신 기업체 영어 공채시험은 해마다 출제 경향이 비슷하여 기출 문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책 한 권을 제대로 끝내기만 하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 한 달 남짓한 특별수업으로 이미 몸이 많이 상해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동행을 고집했던 것입니다.

그날 여섯 시간 반 동안 열차 속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개찰구로 향하는 제 발걸음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갈짓 자로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그지없이 평온했습니다. 서울역에 도달하기 직전에 드디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해 저와 함께 상경한 12명의 아이들 중 10명이 필기시험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쁨을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여섯 시간 반 동안 열차 안에서 특별수업을 받던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이 제겐 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쁨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준철 선생반 학생들 ⓒ 오마이뉴스 조호진


목마른 사슴들처럼 저의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와 맛있게 목을 축이던 그 호기심 어린 눈망울들이 저는 그립기만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그때 아이들이 나에게 강요된 수업을 받았다면 그들이 나의 샘을 향해 즐겁게 걸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여섯 시간 반, 열차 안에서의 수업이 만약 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학교장의 강요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면 나는 과연 기쁨으로 수업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수업에 대한 대가를 아이들에게 돈으로 지불 받았다면,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여섯 시간 반, 열차 속에서의 수업은 아이들과 나 사이에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사제간의 아름다운 추억의 그림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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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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