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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화이트데이 일명 파이데이로 수선을 떤다. 곰곰히 생각해봐도 내가 직접 뭔가 하는 게 가장 정성이 담길 것 같았다. 신혼 2년차에 파이데이라.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에서 9시 사이. 우리는 먼저 온사람이 식사를 준비한다. 퇴근길에 갑자기 칼국수가 생각났다. 그래 칼국수다. 마트에 들러서 칼국수랑, 애호박 하나를 샀다. 기쁜 마음으로.
원래 칼국수란 밀가루 반죽을 직접해서 밀대로 제대로 민 다음 착착 접어서 한줄씩 착착 잘 쓸어야 제맛이지만 말이다. 어릴적엔 어머니, 형들과 모여서 반죽하고, 나나 둘째형이 주무른다음, 미는 건 힘좋은 큰형이 함께 했었다. 그날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마침 칼국수 만드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아줌마들 모여들고 집안은 어느새 마실장소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물을 우선 끓이고 주말에 만들어뒀던 소꼬리 사골육수를 따로 끓였다. 그사이 호박을 잘게 채치고, 표고버섯을 먹기 좋게 잘랐다. 와이프가 이웃한테 선물받은 계란을 그릇에 깨서 보았다. 역시 자연의 섭리를 따른 것인지 알이 탱글탱글하고 샛노랗다.
계란은 훌훌 저어서 반은 지단을 만들 준비를 하고 반은 칼국수에 풀 작정이었다. 이때 포인트는 후추와 소금을 약간 치는 것이다. 그래야 비린내가 좀 가신다.
원래는 칼국수를 끓는 물에 한번에 양념하곤 했는데, 그러면 깔끔한 맛이 덜하고 국수에 묻은 밀가루가 풀어지면서 걸쭉하게 된다. 이번엔 그래서 달리 하는 것이다. 물은 따로 육수 따로...드디어 끓는다. 잽싸게 국수를 넣고 뚜껑을 덮었다. 한소끔 끓은 후에 열어 놓고 바로 채에 받쳐서 찬물로 헹궜다. 면발이 쫄깃하게 탱탱해진다. 찬물에 헹구면 이게 좋다.
칼국수의 재료는 육수가 끓을때 단단한 순서로 넣는다. 표고, 호박, 계란 푼 것, 마늘을 넣고 난 뒤 큰 사기그릇에 면을 얹어 놓는다. 거기에 팔팔 끓는 육수와 표고, 호박, 파, 지단, 김가루를 넣고 후추 한번 치면 멋진 칼국수가 탄생한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색깔을 맛나게 시각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박은 너무 무르면 맛이 없으므로 육수를 떠내기 직전에 잠깐 담갔다가 바로 덜어내는 게 좋다.
자 앞에 한그릇 올라온 상상이 되는가요?
보기만해도 군침이 돌고 힘이 막 솟는 것 같다. 근데 와이프가 안왔다. 불어 터지면 안되는데 잽싸게 시식을 하고 장모님이 보내준 김치로 맛나게 해치웠다. 거기다 찬밥을 말아서 나머지 육수까지 홀랑 마시면 세상에 이런 평화가 없다. 다 먹고 나니 와이프가 들이닥친다.
별 수 없지. 또 요리를 시작한다. 요리를 할 때는 잡생각이 없어지고 재미가 난다. 난 전생에 요리사였나보다. 혹시 궁중 요리사가 아니었나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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