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나쁘면 회장도 하지마?

서강대학교, 총학생회 후보 인정 못해

등록 2002.03.19 09:14수정 2002.03.2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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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투표율 저조로 선거가 무효화되는 우여곡절 끝에 3월 재선거에 들어간 32대 서강대학교 총학생회 선거가 또 한번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우들의 연서를 받아 정식 등록까지 마친 선본의 후보를 학교측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선 것. 학교측이 내세운 이유는 해당 후보가 학칙에 의거한 학생 대표자의 학점 기준(2.0)에 미달된다는 것이었다.

이번 서강의 3월 재선거는 '20대 당신의 혁명적 전환의 원리'라는 기치를 내건 '코페르니쿠스' 선본(총학생회장 후보 고은정·부총학생회장 후보 이충회)과 '기분좋은 서강, 7000의 대안으로 희망을 이야기하자'의 기치를 내건 '청년개척자' 선본(총학생회장 후보 방지환·부총학생회장 후보 기정환)간의 대결이다.

두 선본은 모두 학우들의 연서를 받아 정식으로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였으며 지난 11일부터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돌입하였다. 재선거라는 부담감이 큰 만큼 양 선본은 지난 11월 선거 때보다 훨씬 의욕적으로 학우들을 만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선거의 열기가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학교 홈페이지에 특이한 공지사항이 하나 올랐다. 학생문화처장 이름으로 올라온 공지문은 "'청년개척자' 선본의 한 후보가 기준 학점에 미달되므로 학칙에 의거해 정식 후보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청년개척자' 선본이 당선된다고 해도 그 총학생회는 자연스럽게 학교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학점'에 관한 조항은 지난 99년 학칙이 개정되면서 학교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삽입된 내용이다. 학교측은 학생들의 대표라면 기본적인 인격과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러한 내용의 판단 기준으로 학점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선 학교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진 학칙이 진정한 학칙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흔히 학우-교직원-교수를 학원의 3주체로 꼽는다. 이는 이들 모두가 학교의 주인이며, 학교에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어느 한 쪽도 배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학칙 또한 이들 학원의 3주체가 더 나은 환경에서 배우고 일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규제하거나 억압하기 위해서 제정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학생회는 엄연한 학우들의 자치기구이므로 학우들의 뜻이 반영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학교측에서는 학우들을 철저히 배제한 상태에서 학칙을 제정하였고 이제는 그 학칙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려 함으로써 또 한번 학우들의 뜻을 저버리려 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학점이라는 것이 학교측의 주장대로 '학생들의 대표로서 갖추어야 마땅할 기본적인 인격과 소양'의 올바른 기준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학점(성적)이 곧 인격'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의 지식을 더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올바른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년개척자' 선본 총학생회장 후보 방지환 학우는 "대학은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학점으로 학생회 대표의 자격을 잴 수 없다"고 말했다. '청년개척자' 선본 부총학생회장 후보 기정환 학우 또한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과 의욕을 학점으로 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항변했다.


학교측의 공고 또한 학우들과의 어떠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행해진 조치이다. 이미 1000여 명이 넘는 학우들로부터 연서를 받아 정식으로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을 하고있는 선본에 대해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는 통보를 뒤늦게 내린 것이다.

'청년개척자' 선본은 학교측의 이러한 공고에도 불구하고 선거 운동을 강행했다. 당선이 되어 학교측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기분좋은 서강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이에 '코페르니쿠스' 선본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학내 대자보를 통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학칙을 적용해 학생회의 후보를 불인정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며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힘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똑같은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가 끝난 후 세워지는 총학생회는 이러한 학칙 제정에 있어서의 학우들의 배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어느 쪽이 당선되든지 말이다.

투표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양 선본은 마지막 힘을 쏟고 있다. 하얀색 티셔츠와 하늘색 점퍼를 입은 각 선본의 운동원들의 바쁜 움직임은 발랄하기까지 하다. 정치적 성향이 어떠하든 그들의 정책이 어떠하든간에 그들 모두 서강을 사랑하는 학우일 뿐이다. 이들의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 다른 학우들과 함께 학교를 바꿔 나가겠다는 의욕이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학생회를 만들어 나가는 모든 학우들이 순수한 것은 아니라는 비판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이와 같은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학교측의 일방적인 조치는 권위의 부당한 남용이며 그 기준으로 학점을 드는 것은 부당한 착각이며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적어도 그들의 땀과 열정이 겨우 소숫점 이하 한 자리 숫자로 인해 과소평가되거나 거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2년 총학생회 부회장 후보의 자격 미달 공지>

이번 선거의 학생회장 후보들 중에서 총학생회 입후보팀 중 청년개척자 선본의 부총학생회장 후보는 본교 학생준칙, 학생단체 운영 및 활동규정, 제 5조 1항에 명시된 "학생단체의 장 및 임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향후 해당 팀이 당선될 경우 학교에서는 학생단체의 장으로 인정할 수 없음을 알립니다. 

  2002. 3. 12 
     학 생 문 화 처 장

덧붙이는 글 <2002년 총학생회 부회장 후보의 자격 미달 공지>

이번 선거의 학생회장 후보들 중에서 총학생회 입후보팀 중 청년개척자 선본의 부총학생회장 후보는 본교 학생준칙, 학생단체 운영 및 활동규정, 제 5조 1항에 명시된 "학생단체의 장 및 임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향후 해당 팀이 당선될 경우 학교에서는 학생단체의 장으로 인정할 수 없음을 알립니다. 

  2002. 3. 12 
     학 생 문 화 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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