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만 보면 울고 싶다"

천일염업계에 몰아닥친 '내우외환'

등록 2002.03.20 10:37수정 2002.03.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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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업계의 딱한 처지

외국산 소금과 과다 생산으로 천일염 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대한염업조합의 경영을 놓고 조합원들이 이사장 사퇴를 주장하며 2차례나 목포역광장에서 집회를 여는 등 내우외환의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 소금업체수는 1000여 개 업체로, 목포에 있는 대한염업조합 남부지부내 생산조합원은 1100여 명에 이르며, 염생산 면적은 3460ha이다. 그 동안 조합원 477명이 염업을 떠났고, 2183ha가 폐전됐다.

신안군에서 나는 천일염은 전국 생산량의 65%를 점하고 있다. 때문에 국산 천일염의 위기는 신안지역뿐 아니라 목포지역 경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는 또 하나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11일 천일염 생산업자 300여 명, 15일에는 200여 명이 목포역광장에 모여 대한염업 조합 주영순 이사장의 사퇴를 주장하는 '주영순 조합장 규탄대회'를 열고 목포 시내 일대를 행진했다.

이들은 경영의 총체적 책임이 있는 주 이사장이 사퇴하겠다고 밝혀놓고 여지껏 사퇴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환, 2월부터 수입부담금 폐지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내우'는 실제로 천일염 업계가 처한 '외환'인 수입염과의 가격경쟁력 상실에서 불화는 시작됐다. 이는 작년부터 수입염에 매겨졌던 부담금이 올해부터 사라졌기 때문. 산업자원부는 지난 2월 14일자로 수입부담금이 없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염관리법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염생산자업자들은 이에 반발, 지난 2월 28일 신국환 산자부장관에게 청원서를 보내고 이의를 신청했다. 이들은 염안정기금 조성을 위한 수입부담금 폐지는 폐전염전지원이 끝이 나면 이를 도입해 달라는 것이었다. 수입염에 대한 부담금과 함께 또 다른 원인은 과잉생산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염은 30kg 1포 기준으로 350만 가마. 하지만 염생산은 800만 가마에 이른다. 2배 이상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산 수입염의 국산 둔갑도 큰 문제다. 최근 잇따라 이같은 사범이 검거되고 있지만, 소금을 놓고 수입과 국산을 구별하기란 극히 어렵기 때문에 판매상들의 악덕 상흔의 똬리는 깊고 넓다.

소금도 마늘개방과 맥락 일치

염생산자발전협의회 김문표 대표는 "사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준비없는 수입개방 조치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고 강조한다. 천일염 생산을 독려할 땐 언제고 생산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검토와 준비없이 중국에 휴대폰 등을 팔기 위해 개방부터 하고 보자는 심보가 이같은 사태의 악화를 불렀다는 불만이다.

무안과 신안 등에서 일어나는 중국산 마늘수입으로 인한 농민생존권 위기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최근 산업자원부 염관리과 한 직원은 자신의 염산업의 어두운 전망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인터넷에 띄웠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천일염 업계의 장래에 대해서는 소금업계 그 누구도 장담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현재 수입염은 중국과 호주 등에서 밀려들고 있다.

잘 나갈 땐 7~8천원. 지금 3천원에도 '비틀'

산자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산 천일염은 최근 1kg 기준으로 131원. 국내산 천일염은 270원에 소매된다. 작년의 경우 수입분담금 49원이 적용돼 180원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 천일염 가격이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경우에도 갑절의 차이가 난다.

염업조합원들 주장에 따른데도 사정은 비슷하다. 염업 조합원들은 현재 중국 수입염의 30kg에 2800원에서 2900원선. 지난해 우리 천일염은 3200~3300원선. 지난해까지 부담금 있을 땐 중국 수입염의 경우 1360원을 부과했다. 결국 올해부터는 부담금이 사라지기 때문에 1440원밖에 나가지 않는다.

생산업자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잘 나갈 땐 1만원, 좋을 땐 7~8천원이 나갔다"며 가격을 내릴 수도 없고, 농토나 양어장으로 전환하려 해도 지원비가 부족해 어쩌지를 못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염업에 종사 가족등 생존권이 묶여 있는 사람만도 6~7000천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천일염업계의 붕괴위기는 곧 바로 지역경제에도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내우, 사퇴주장 문제의 발단

산업자원부는 어려워진 염업계를 위해 작년 12월 20일 염관리법 개정시 폐전지원비 명목의 염안정기금 470억원을 염업조합에 귀속시켰다.

이는 그 동안 수입염 1톤에 얼마씩의 부담금을 물어 470억원을 폐전 안전기금을 조성한 것이다. 이는 연말이 되기 전 기금 운영위에 묶여 있었다. 조합원들은 주영순 이사장의 사퇴를 그가 조합원들의 이익을 중심에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참고로 대한염업조합은 특수법인조합으로 1963년 설립돼 1998년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산업자원부 화학공업국 화학공업과에서 관장하고 있다. 본부는 서울 개봉동에 있으며, 목포에 있는 남부지부 등 전국에 4개지부 2개의 주재소가 있다. 염업조합에서는 수급조절, 품질향상, 가격안정 등의 역할과 정부 위탁업무로 품질검사, 공업용염, 수입추천, 사후관리 등을 관장하고 있다.

사퇴주장에 앞장서고 있는 염생산자발전협의회 김문표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1월경 주 이사장과 함께 한화갑 의원을 만났다. 그런데 한화갑 의원이 산자부측으로부터 들었는데 왜 염안정기금(폐전지원비)의 운영에 대해 이사장 따로 조합원들 따로냐고 물었다. 그때 주영순 이사장이 염안정기금 사용을 목적으로 한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것을 알았다. 이후 남부지부 간담회가 열렸고, 대의원과 이사들이 참여했다. 들리는 말에 폐전지원비로 쓰일 돈을 물류기지를 만든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냐고 따졌다. 조합 한 관계자는 '그것은 우리 안이 아닌 산자부의 안이다'고 해명했다. 이후 이사간담회에서 이 신청서를 봤다. 2월 1일 이사간담회 자리에서 또 따져 물었다. 주 이사장은 '산자부안만 있지 조합입장은 없다'고 구두로 보고했다. '이사장, 왜 거짓말 하느냐'고 '이것은 이사와 대의원 등을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제출했냐'고 물었다. 결국 돈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했다."

이 사업계획서에는 유통구조 개선사업으로 집하장설치, 수매비축운용, 전자상거래망 구축비, 천일염 품질개선으로 시설개량비, 천일염 우수성 홍보 및 고유 브랜화 방안으로 홍보비, 박물관 건립 및 학습체험장 건설, 염연구소 건립, 염수급량 안정적 확보방안으로 해외염전개발 등이 포함돼 있다. 사퇴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은 "많은 생산량과 가격 경쟁력에서 뒤진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기금은 구조조정 목적으로 폐전지원비로 쓰여야 하는데 그런 계획은 하나도 없다"면서 "왜 이같은 말도 안 된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조합원들은 총체적 경영부실의 책임을 지고 주영순 이사장의 사퇴를 주장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합원과 주영순 이사장의 사퇴 논란

지난 3월 3일 대한염업조합 조합원 332명은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에게 주영순 이사장이 사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사장의 임명권자인 장관이 해임 조치해줄 것을 탄원서를 제출하고 주 이사장에게 사퇴 권고 결의서를 보냈다. 332명의 조합원들은 주 이사장은 지난 2월 18일 염업조합 남부지부에서 이사, 대의원, 조합원과의 간담회 석상에서 조합운영을 원활히 못해 2월28일까지 이사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후 2월 22일 서울 조합 본부에서 열린 대의원 정기총회 석상에서 이사, 대의원,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사장직 사퇴를 2월 28일까지 할 것이라고 재차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영순 이사장은 "누군가 나를 음해하려는 소리다. 나는 사퇴에 대한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염업계의 위기와 지역파장

지난해 천일염 생산업자들은 서울 상경 농성과 함께 민주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를 막론하고 산자부 국회의원 등을 면담하면서 염업계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오히려 민주당의 반응은 더 차가웠다고 한다.

이에 앞서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와 2002년부터는 수입염에 대한 분담금 부과를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완전자유화 방침을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지난해 11월말 여당 정책위 의장은 염생산업자들과 면담에서 수입부담금을 중국과 무역마찰로 징수하지 못할 경우 1년에 125억원씩 3년간 375억을 지원해주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수입업자의 여론의 등쌀 등에 밀려 부담금을 부과하지 않는 방안의 염관리법 3년간 연장이 결정됐다.

생산업자들은 2월 28일 염관리법 시행력 입법예고에 대한 이의신청을 신국환 산자부 장관에게 올렸다.

조합원들은 앞서의 어려움들을 지적하면서 폐전해 전업할 수 있도록 염전 1헥타당 3800만원 가량의 폐전지원비 인상을 요구했다. 또 5등급 차등지원을 균등하게 지원해줄 것과 민주당정책위의장이 제시한 3년간 375억원 지원안을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염품질검사기관의 이원화는 수입염의 국산염 둔갑을 막지 못한다며 대한염업조합의 일원화를 주장했다.

정부, 책임있게 조합개혁 도와야

하지만 이같은 천일염 생산조합원들의 주장이 실제로 수용될지는 미지수다. 지금으로선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수입조치에 대한 지금의 자유무역 기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어민과 농민의 생존권은 갈수록 심각한 상황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신안지역 경제뿐 아니라 올해 목포지역 경제에도 큰 여파를 미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천일염 업계는 내우외환의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때문에어선지 내부 안살림부터 잘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또한 이런 조합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20년 동안 염전을 했다는 신안의 한 생산업자는 "올해는 소금보다 짠 눈물이 맺힐 날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려운 때일수록 단결해야 하는 천일염 생산업자들의 어려운 생존권 지키기는 지금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천일염 생산현장을 찾아

천일염 생산업자 압해도 이종산(70) 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파질만 합니다"

신안군 압해도 신장리에서 30년째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는 이종산(70) 씨는 요즘처럼 대파질(바닥에 오물을 없애기 위해 수시로 물을 밀어 닦는 작업)이 힘에 부친 때도 없다고 말한다.

이종산 씨는 1년에 400만원을 원 주인에게 주고 천일염을 생산한다. 이곳의 천일염 생산 면적은 9000평인 3정이다(1정 기준 3000평). 1년에 잘하면 30kg 한 포대 기준으로 1만개를 생산한다. 3~4년 전만 해도 잘 나갈 땐 1만원, 좋을 땐 7000~8000원을 받았다. 현재 소금의 30kg 한 포대는 고작 3천원 정도. 가장 좋을 때 비하면 1/3, 호가일 때와 비교하면 절반 가격 정도로 떨어진 값이다. 더군다나 올해부터는 외래염에 대해서는 부담금 적용을 없애기 때문에 한국산 한 포 기준을 적용하면 1700~1800원으로 가격 경쟁면에서도 훨씬 뒤진다.

보통 하루 인건비는 60만원 정도. 낮은 인건비 때문에 사람 구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사람을 구한다 해도 고작 인건비 정도를 채우면 현재로선 다행이다. 때문에 그의 대파질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한숨이 앞서는 건 당연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3명. 1년에 인건비는 2200만원. 현재 시세대로 1만개를 생산한다 해도 3천만원. 여기에 원 주인에게 400만원을 건네고 뺀 돈은 고작 400만원이다. 자신의 인건비를 3명중에 포함한다 해도 시설비나 운영비를 빼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이 없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특히 이종산 씨의 경우 자기의 염전이 아니고 빌려 일하기 때문에 몇 푼 되지 않은 폐전지원비의 경우도 그에겐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씨는 "염전을 없애면 내가 추산하기로 신안 일대에서 3천명이 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그렇게 되면 결국 목포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염전을 현재 폐전해 농토로 만들거나, 양어장으로 전환하도록 할 방침이지만 이도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말한다.

"폐전해 농토를 만들려면 염기를 빼야 하기 때문에 10~20년은 걸립니다. 그렇지 않다면 객토를 해야 하는데 객토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또 설사 객토를 해 농사를 짓더래도 요즘 농사가 수지가 맞습니까? 양어장도 투자되는 비용에 비해 수지가 맞을 것이라고 장담 못해요. 시설비도 많이 듭니다. 또 요즘 양어장 한 사람들 어렵잖아요."

건강한 노동을 해선지 일흔이라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이종산 씨. 그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일은 예나 지금이나 오늘의 염전업이다. 때문에 그의 염업조합과 정부에 대한 바람이라면 한가지 밖에 없다. "외래염 수입을 자제해서 우리 식염을 지켜줄 것." 그의 벼랑 끝에 선 생존권에 또 다시 이기주의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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