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

등록 2002.03.28 10:08수정 2002.03.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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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별명은 말뚝이다. 말뚝이로되 허위와 가식에 찬 양반 혼내주는 저 봉산탈춤의 말뚝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군대 말년, 이것저것 할 일 없으니 말뚝이나 박아 내 나라 조국 강산을 이 한 목숨 다해 지키자 하는 그 말뚝도 아니다. 그런 말뚝이면 투철한 조국애라도 있지, 이 말뚝은 도무지 요지부동, 어떤 일에도 제 자리를 지키며 결코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기려 하지 않는 말뚝이다.


공립 학교인 이 학교에 부임한 지 올해로 칠 년째인 그다. 늘 술 취한 것 같은 얼굴로, 말투도 횡설수설해서 무슨 말인지 종잡기 힘들지만, 어떤 선생들은 그 앞에서 꼬박꼬박 예, 예 하며 허리를 조아린다. 그가 교무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고, 자기 부서 사람은 확실하게 챙기며,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 한 학교에 있으면서 학부모니 교장 교감의 속을 그야말로 빠삭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부임하여 교장과 눈을 맞추고 여러 권한을 야금야금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 중간에 교장이 바뀌었다. 새로 부임한 교장은 그의 능수능란한 일 처리에(특히 교장의 구미에 맞는) 전권 위임, 드디어 그는 평교사로서는 가장 권력이 센 교무부장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른 부장들을 자기 사람으로 심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덕분에 부장이 된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모시기 시작했다. 그 또한 다른 부장들과 막역한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자주 술자리를 만들었다. 물론 그 술값은 그가 도맡아 냈다. 그 술값을 마련하기 위해서인지, 그는 아이들을 학원에 소개시켜주고 소개비를 받는 눈치였다. 나중에는 아예 학원을 차리기까지 했다.

일주일에 열 두 시간 정도 되는 수업도 그는 자주 빼먹었다. 그저 학습부장이나 반장에게 문제집을 프린트해서 나누어주고, 끝날 무렵 교실로 올라가 검사만 하면 끝이었다.

사 년이 지나자 그는 교장의 간청이라는 형식으로 유임을 했다. 그 다음해에 교장이 또 바뀌었다. 세 번째 교장이었다. 바뀐 교장은 당연히 학교의 권력 대부분을 쥐고 있는 그를 또 유임시켰다. 학교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 년 째 유임 당시, 학교에 한참 새로운 세력으로 대두하던 평교사회를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깨버렸다. 일부는 회유하고, 일부는 교장의 권한을 빌려 강제 전보 시켰다. 보내야 할 사람과 회유해야 할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그가 타고난 능력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것이다. 그의 그런 능력이 인정되어 그는 또 유임을 하게 되었다. 그는 점점 말뚝을 깊이 박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참으로 다양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고스톱에 일가견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바둑도 일급이다. 시험 기간 중 개최되는 바둑대회에는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부장을 비롯한 몇몇 남선생들과는 정기적으로 화투판을 벌이는 눈치다. 교내나 교외를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가며 열심히 사십 팔 인치 동양화 감상에 매진하는 중이다.

그의 가장 탁월한 능력은 학부모와의 친밀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육성회나 어머니회는 그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신입생을 배정 받으면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육성회나 어머니회를 할 만한 사람을 찾아냈다. 아마도 많이 배정되는 출신 초등학교에 찾아가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리곤 어머니회나 육성회 조직을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꾸려낸다. 그러니 그런 조직들 또한 그의 의도대로 움직여 갈 수밖에 없다. ]


"저런 것도 다 능력이야."
체육과 박 선생이 어느 날, 어머니회 임원들과 소곤대는 말뚝이를 보고 감탄 반 비난 반의 말을 할 정도였다.

올해로 그는 이 학교에 칠 년째다. 남들은 두 번째 학교의 말년에 가까울 세월동안 그는 여전히 한 학교의 교무부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술좌석에서 그는 은근히 내년에도 유임을 할 것이라는 말을 흘린다.
"학교 운영위원회라는 게 만들어진대. 거기서 결정하면 팔 년 유임도 가능하다더군."
학교 운영위원회라야 육성회를 슬쩍 조직전환 해서 만들면 될테고, 학교장이야 자신과 짝짜꿍이니 두말 할 것도 없고, 결국 그는 팔 년 째 유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런 말을 한 술자리에 우연히 동석을 했던 나는, 다음날 아직 술이 덜 깨 어찔어찔한 상태로 출근을 했다. 원래 술이 약하기도 하지만, 말술인 말뚝이를 당해낼 재간도 없고, 쉬지 않고 술을 권하는 그에게 지기 싫다는 오기도 발동해서 용량을 초과한 술을 마신 탓인지 아침에도 취한 기운이 역력했다.

교무실에 들어서니 아직 출근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술만 지나치게 마시면 새벽에 일어나는 버릇 탓에 너무 일찍 출근한 것이다. 나는 멍한 정신으로 내 자리에 앉아 있다가, 어제 술기운이 한참 올랐을 때 말뚝이가 한 유임 어쩌구 하는 말이 생각나 그의 자리를 건너다본다. 부장 의자 중에서도 그의 의자가 유난히 우뚝해 보인다. 마치 거대한 말뚝 의자 같다.

나는 어슬렁어슬렁 일어나 그의 자리로 간다. 그리곤 그의 의자를 한 번 툭 밀어본다. 의자는 삐걱 소리를 내더니 마지못한 듯 조금 움직이다 멈춘다. 누가 감히 말뚝을 건드려 하는 듯하다. 팔 년 째 유임을 노리는 말뚝이, 그 말뚝이의 의자, 나는 갑자기 이 학교 전체가 하나의 말뚝이 되어 점점 깊이 땅 속으로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뚝은 끝없이 땅 속으로 박히고, 학교는 말뚝에 끌려 거꾸로 쑤셔박히고.... 그러다 문득 나는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말뚝이도 처가집 말뚝에 절을 할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다 피식 웃고 만다.

그때 말뚝이가 불그레한 얼굴로 들어선다.
"어, 맹 선생. 일찍 나왔네."
나는 그런 말뚝이에게 그저 싱긋 웃고 만다. 또 말뚝에 매인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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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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