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열 교수.
이게 도대체 몇 년만인가.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68년이니 실로 30여년 만 아닌가. 살아가면서 초등학교 동창생들에 대한 소식이 궁금하긴 했는데 그냥저냥 살다 보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먼.
나는 지난 87년 미국서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동네 버클리에서 동부의 버지니아주까지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한 적이 있었지. 버클리를 떠난 지 10일 쯤 후에 오하이오주에 도착했는데 그 곳의 친구 집에서 오하이오 주립대 재학생 명단을 보다가 유 교수의 이름을 보았네. 전공과 인상착의를 물으니 유 교수인 것이 틀림없어서 바로 찾았지. 그랬더니 얼마 전 그곳을 떠났다고 하더군. 얼마나 섭섭했던지...
유 교수가 이렇게 중앙일간지에 시론을 쓸 정도로 크게 성공(?)한 것을 보니 내가 다 기쁘네. 사진을 보니 옛날 모습 그대로구먼. 어렸을 때의 총기도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고. 혹시 기억이 나는지 모르겠네. 5학년 때던가, 경희대학인지 아니면 청량초등학교인지 그 부근의 아래 내리막길, 계단을 올라가서 첫번째 집인 유 교수 집에 내가 유 교수와 같이 간 것을. 그 때 우리를 맞이하신 유 교수의 어머니는 나의 어린 생각에도 아주 젊고 세련되신 인텔리로 느껴졌었지. 그리고 30여년이 흘렀구먼.
나는 유 교수처럼 신문에 시평이나 시론을 쓸 정도는 못 되고, 그저 신문의 귀한 지면에 지식인답지 않은 소리를 올리는 그런 교수, 소설가나 언론인 같은 지식인에 대해서 이렇게 인터넷을 이용하여 반론이나 제기하는 수준의 아마추어 논객이라네.(그러나 유 교수를 지식인답지 않다고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게)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유 교수의 3월 23일자 <중앙일보> 시론, "금강산 사업 지원 안된다"가 나의 생각과 많이 달라서 다른 의견을 피력하고 싶어서였네.
물론 유 교수는 정치학과 교수로서 보는 눈과 생각의 깊이도 나와 같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아마추어의 목소리나마 국민의 한 사람의 목소리로 생각하고 들어주면 고맙겠네.
우선 시론 제목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네 그려.
그 시론에서 유 교수가 금강산 사업을 지원해서는 안 되는 이유로 꼽은 것이 크게
첫째, 정부가 '금과옥조'로 자부했던 정경분리원칙을 스스로 폐기하면서까지 지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국회에서의 논의나 국민적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는 자세,
셋째, 북한이 변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의 우리 정부의 일방적 지원이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네.
먼저 정부가 정경분리 원칙을 스스로 폐기하면서까지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물론 정부가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네. 그러나 그 정경분리 원칙이라는 것을 왜 만들어냈나. 남북교류가 정치상황에 따라 표류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채택한 것 아닌가.
말하자면 정경분리 원칙이라는 것은 결국 남북교류 지속이라는 대원칙 하의 원칙이라는 것이지. 그러니 남북교류를 위해 존재하는 그 원칙을 지키려다 남북교류가 깨진다면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정부로서는 당연히 재고를 해야한다는 생각이네.
둘째, 국회에서의 논의에 관한 문제는 유 교수도 알다시피 소수정권의 한계이며 비애 아니겠는가. 집권 민주당이 다수당이라면 왜 그런 절차를 밟지 않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으라 하는 것은 그저 발목을 잡으려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 않겠나. 그리고 국민의 합의라는 것도,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의 합의를 얻는 것인지. 그것도 결국 정부정책대로 추진하고 나중에 그 잘잘못에 대해 심판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북한이 변하지 않는 사태에서 우리 정부의 일방적 지원이 오히려 햇볕정책 자체를 고사시킨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잘 안 되는 말이네. 북한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북한이 예전의 북한이 아닌 것은 유 교수도 잘 알리라 생각하네.
그리고 우리는 수조원을 들여 전투기, 헬기, 미사일 등을 들여오면서 북한에게는 미사일을 개발하지 말라, 군대를 후방으로 물려라 할 수 있을까. 미국과 공격용 합동군사 훈련을 하면서 대화를 요구하고, 대화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 북한에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네. 역지사지 해보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자존심도 버리고 백기를 들고 나오라는 말일텐데 우리 같으면 속없이 그 대화테이블로 나갈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변했는데 북한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의아한 일이네. 우리가 북한의 변화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북한이 유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는데 모든 책임을 북에 넘기려는 것 아닐까.
나는 어느 쪽도 무조건 편을 들고 싶지도 않고, 북한이라고 무조건 깎아 내리기도 싫고, 그저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싶네. 물론 남쪽의 사정을 너무 헤아려 주지 않는 북한이 야속하긴 하지만 말일세.
"퍼주기"란 말을 유 교수도 썼는데 나는 사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야당과 일부 식자층에서 이 말을 쓰고 일부 언론에서 증폭시키는 거라네. 그 퍼주기라는 것이, 도대체 그 퍼주는 양재기가 얼마나 간장종지만 하기에 그걸 퍼준다고 하는 것인가. 하긴 인색한 놀부 마누라는 주걱에 붙어있던 밥풀 몇 개도 퍼주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우리가 너무 소인같지 않은가? 조금 크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의 위상도 그 정도 여유를 가질 만큼은 된 것 같은데. 나는 왜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그렇게 대외적으로 깎아 내리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 우리가 지원하는 것을 "퍼주기"라고 하고 있다는 것을 외국인들이 알면 우리를 비웃지 않을까?
그리고 김영삼 정권 때는 현 정권 때보다 더 주었지만 누구도 퍼주었다고 하진 않았네. 왜 국민의 정부에게는 그리 가혹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돈이 그렇게도 아깝다면 터무니없이 들어가는 분단비용에 대해서는 세상이 떠나가도록 소리 질러야 옳은 것 아닌가.
미국에서 사서 들여오는 사거리 300km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 ATACMC 미사일 1개 대대분 값이 1조3000억원 정도라는데, 국방부가 온갖 의혹을 무릅쓰고 도입키로 결정한 F-15K기의 가격이 6조 원에 가깝다는데, 이런 분단비용에 대해서는 그러면 목청 터져라 높여야 할 것 아닌가. 도입할 무기가 이뿐만이 아니지.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이런 분단비용이 거의 모두 미국에게로 흘러 들어간다고 할때, 우리는 미국에게 그야말로 "왕창 들어 바치기"를 하고있는 것이라 생각하네. 그런 세계 최강국 미국에 대한 "왕창 들어 바치기"에 대해서는 한사코 모른 체 하면서 어찌하여 수백분의 1에 불과한 동족지원에 들어가는 "간장종지에 퍼주기"에는 그렇게 인색하단 말인가.
우리가 남북교류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고 있는 그 작은 돈은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효자 노릇을 할거라는 확신을 나는 갖고 있네. 이를테면 감당키 어려운 목돈이 들어갈 훗날의 분단비용을 지금 푼돈으로 갚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남북교류와 대화는 지금 우리 남북이 합심해서 이루어내야 할 절박한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하네. 지금 이 시점에서 남북교류마저 끊겨서 대화가 없게되면 미국이 그 사이를 비집고 반드시 들어올 걸세. 미국이 개입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엄청난 악몽일 수가 있네.
미국의 북한공격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차단하려면 일단 남북이 화해해서 손잡고 잘 나가는 모습을 세계에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그래야 우리도 미국에게 할 말이 있고, 북한도 미국의 공격의 예봉을 피하는 길이 될 걸세.
그렇게되면 아무리 미국이 트집을 잡아서 북한을 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 아니겠나. 그러니 현 시점에서 남북대화 재개와 제2의 6.15 선언 같은 것은 우리 남북의 생존권 선언과 같은 중대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
유교수도 잘 알다시피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란 것이 있네. 이것은 현실이네.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여러 가지 정황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지. 그 위기설을, 미국이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무어라고 생각하나. 나는 우선은 그것이 바로 남북이 다시 2년 전 그 날처럼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렇기 때문에 남북교류의 실낱같은 끈을 놓쳐서는 안되며, 우리가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면 남북 모두를 위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발표한 고육책, "금강산 관광 지원"은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옹호하고 싶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정한 남북화합과 통일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금강산 관광에 앞서 판문점과 탈북자 교육장인 하나원, 삼성전자와 포항제철부터 경비를 지원해 견학케 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네.
남북화합과 통일의 토대하고 삼성전자, 포항제철 견학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과거 오랫동안 포항제철은 견학이 이루어졌고 나 자신도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을 갔다온 경험이 있네만, 그렇다면 남북화합이 진작에 되었어야 하지 않겠나.
30여년 만의 첫 만남에서 이렇게 다른 생각을 피력하게 돼서 미안하네. 무지한 옛 동창의 무례를 용서하고, 언제 서울 올라갈 일이 있으면 연락 한번 할 테니, 소주나 한잔 하세나. 부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이 동창을 좀 가르쳐 주게나.
유 교수, 그럼 이만 줄이네. 정진하기를 바라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하니리포터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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