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그 많던 인민들은 어디 갔을까

<베이징 리포트> 중국 경극의 어제와 오늘

등록 2002.04.04 03:23수정 2002.04.0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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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솔직한 고백부터 하나 하자. 가끔씩 베이징으로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이화원 같은 베이징의 관광명소를 가자고 하는 게 제일 싫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올 때마다 매번 의무적으로 방문하는 장소라서 나에게는 마치 TV리모콘을 습관적으로 돌리는 일처럼 지겹고 따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사람들 입에서 행여라도 경극을 보러가자는 말이 튀어나올까봐 전전긍긍했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중국인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극 대사를 두 시간여 동안 들어야 한다는 것도 괴로울 뿐더러,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간드러지는 배우들의 음성과 그 느려터진 동작들을 그저 눈만 꿈뻑거리며 봐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초겨울, 베이징으로 여행을 온 사촌동생이 그렇게 경극을 보러 가자고 졸라댔는데도 나는 눈하나 깜짝 안하고 "그거 봐야 뭔 소린지도 모르고 30분도 안돼서 잠이 쏟아지는 최면제니 경극 관람할 돈으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고 설득해서, 당시 중국 경극에 대한 신비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촌동생의 기를 꺽은 적도 있었다.

이랬던 내가, 최근 얼마 동안 경극에 심취(?)해 살았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경극이 재미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질 않았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적어도 예전처럼 그것을 최면제와 동격으로 취급하는 무례한 생각은 감히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젊은 경극배우 한똥바이와 그녀의 동료들을 알게 되면서 경극에 대한 무지한 생각들이 조금은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경극을 올바로 이해했다기보다는 그것을 이어가고 만들어가는 배우들의 일상과 그 일상에 얽힌 고달픈 생활들을 느끼면서 그들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공연 한 시간 전, 창안따씨위안의 분장실 풍경

▲ 분장실 풍경 ⓒ 박현숙
저녁 여섯 시 반. 베이징 최고의 경극 전문극장인 창안따씨위안의 분장실 안 배우들의 손길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공연 한 시간 전이기 때문이다. 서둘러 분장을 하고 의상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분장실 안의 배우들은 말없이 거울 앞에서 각자의 얼굴을 그리기에 정신이 없다.

나와 한동안 수다를 떨던 한똥바이도 의자를 돌리고 거울 앞으로 다가가 부지런히 분장도구들을 놀리기 시작한다. 이상한 물감같은 분장도구로 얼굴을 이리저리 바꿔가는 그녀의 손놀림은 누가 봐도 프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긴 이 분장실 안의 그 누구도 프로가 아닌 사람은 없다. 애매하고 어설픈 자세로 그네들을 구경하는 '나'만 촌뜨기처럼 실눈을 뜨고 있을 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난을 치며 낄낄거리고 있던 몇 명의 청년들은 분장을 마치자 어느 새 누구는 늠름하고 위엄있는 패왕의 모습이 되어 있고, 또 누구는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얼굴에 화장기 하나 없이 담백하고 순한 인상을 풍겼던 한똥바이 역시 얼마후 원래 모습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얼굴로 변했다. 그녀는 '패왕별희'속의 우희가 되어 있다.

공연 시작 5분 전. 단장이 들어오더니 배우들에게 '출동준비' 명령을 내린다. 우희로 분장한 한똥바이는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면서 자기 연기하는 거 잘 보라고 당부한 뒤 싱긋 웃으며 무대로 나간다.

5분 뒤인 7시30분. 드디어 막이 오른다. 무대 위에는 의자 두 개와 탁자하나만 달랑 놓여 있고 두 주인공인 패왕과 우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패왕별희를 공연하는, 방금 전까지도 분장실 안에서 천진난만하게 수다를 떨었던 두 남녀주인공들은 그들이 소속된 매이란팡 경극단에서는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배우들이다.

▲패왕별희 속 우희로 분장을 마친 한똥바이 ⓒ 박현숙
그 중 우희역을 맡은 한똥바이는 지난해 이 극단의 실질적인 대표이자 중국경극계의 신화로 남아 있는 메이란팡의 아들인 동시에 아버지의 경극세계를 계승하고 있는 메이바오지우 선생의 제자로 정식 입문한, 나이가 가장 어린 여제자이다. 그녀는 올해 26살이다. 상대역인 패왕 역시 경극배우를 양성하는 전문학교인 중국희극학교의 동기동창생이다. 한똥바이의 말에 의하면 그둘 둘은 오랫동안 같이 공연을 해왔기 때문에 평소에 따로 연습할 필요도 없을 만큼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한다.

매일 밥먹듯이 습관적으로 공연을 하다보니 이제는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나 떨림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공연하는 동안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다른 배우들은 무대 밖에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막간을 이용한 연습에 한창이었다. 특히 재주를 부려야 하는 어릿광대역 배우들의연습장면이 인상적이다. 좁은 무대 뒤 공간에서도 그들은 용케 공중제비돌기 등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다른 배우들이야 조금의 실수를 한다고 해도 눈치챌 관객이 거의 없겠지만, 그들은 행여 발이라도 삐끗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일 터이다. 무대위에서는 패왕과 우희가 그들만의 경극언어로 무언가 심각한 대화를 주고 받고 있다. 그것을 알아듣는지 못알아듣는지 객석의 관객들은 그저 고요하게 관망하고 있다.

중국 서민들의 '낭만적인 도피', 경극

▲분장을 마친 패왕의 모습 ⓒ 박현숙
중국 경극에 대해 잘몰랐던 사람들도 몇 년전 쳔카이거 감독이 만든 영화 '패왕별희'는 대부분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인 패왕과 우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경극과 경극배우들의 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추측컨대, 그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뜨고난 후 덩달아 중국 경극도 세계인들의 머리 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속에서 배우들의 화려한 분장과 의상, 혹독한 배우수련과정 등을 목격하면서 중국의 경극예술이라는 것이 그저 눈만 껌벅거리면서 보는 만만한 삼류예술이 아니라는 것, 그 속에는 중국인들만이 이해할수 있는 무엇인가 독특한 상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한번쯤은 해보았을 듯하다.

그렇다면 정작 중국인들은 자기네들의 이러한 전통예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1940년대 중국문단의 총아였던 장아링의 말을 빌려보자.

"아마추어인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맨 앞줄에 앉아서 용맹스러운 동작을 보는 것 정도다. 파란색 비단으로 된 무장의 옷이 휙하고 벌어지면 빨간 안감이 드러나고, 초록색 바지자락 사이로 모란색 안감이 드러나며, 움직임에 따라 무대 가득 먼지가 올라가는 것을 즐긴다고 할까? 그리고 저 가슴에 쓱 하니 다가오는 긴 딱다기 소리-이슥한 밤의 고요, 필사의 궁리,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린 후에 방울져 떨어지는 온몸의 땀, 이런 것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뛰어난 음향효과가 있을까"(지호펴냄, 후지이 쇼조, '현대중국영화로 가다' 中에서 발췌)

나는 장아링만큼 이렇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경극에 대한 느낌을 표현할 자신이 없지만, 그녀의 이 말속에서 한 가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실은 바로 첫 문장에서 표현된 것이다. 즉 "아마추어인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맨 앞줄에 앉아서 용맹스러운 동작을 보는 것 정도"라는 것. 왜냐하면, 바로 아마추어인 내가 경극극장의 맨 앞줄에 앉아서 그렇게 하염없이 그들의 용맹스러운 동작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장아이링이 느꼈다고 하는, 가슴으로 스며들어 오는 긴 딱다기 소리같은 섬세한 감정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내가 중국인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역시 이어서 그녀가 말한 "경극의 세계는 현재의 중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 중국의 어떤 역사적 단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과 아담함이 잘 정리된 도덕의 체계는 모두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낭만적인 도피는 아니다"라는 것.

▲경극 '패왕별희' 공연장면 ⓒ 박현숙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경극의 세계는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낭만적인 도피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 그러나 그 옛날부터 경극을 보러왔던 중국인들은 고달픈 현실로부터의 '낭만적인 도피'를 하기 위해 그토록 경극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후지이 쇼조도 지적했듯이 쳔카이거가 영화 속에서 원작과는 다르게 문화대혁명과 그 정치적 비극이라는 중국의 암울한 정치적 현실보다는 패왕과 우희의 동성애적 사랑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둠으로서 애써 역사의 부담을 피해가려는 '낭만적인 도피'를 선택한 것처럼, 그 옛날 중국인들도 그렇게 경극의 세계속에서나마 고달픈 현실을 잊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것은 중국 경극의 전성시대가 1930-40년대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일이다. 즉 청조가 몰락한 뒤 중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전투구와 국내 정치세력들의 지리한 내전의 반복 속에서 삶의 조건들이 나락으로 떨어진 당시의 중국인들에게 희망은 좀체로 찾아보기 힘든 무지개와 같은 것이었을 터. 때문에 그 시절에 메이란팡같은 전설적인 경극배우가 나타나고 또 경극이 그네들의 유일한 오락거리이자 위안이 되었다는 것은 그다지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지금처럼 다양한 문화를 향수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들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경극이 서민들의 유일한 볼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이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시절의 수상함과 그로 인한 삶의 염증이 그들을 경극의 세계로 '도피'하게 만들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지금은 창안따씨위안 객석에 앉아 있는 그 어떤 관객도 현실로부터의 낭만적인 도피를 위해 경극을 보러오는 것 같지는 않다. 관객의 대부분이 중장년층이고 젊은 관객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이제 중국인들에게 경극은 과거의 향수쯤으로 기억되고 있는, 빛이 바랜 낡은 옛날 사진같은 것이 돼버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오히려 지금의 중국인들은 경극따위를 보면서 현실로부터 도피를 해야 할 시간이 없다. 모두가 돈을 벌러 '바다로 뛰어들어야'(下海)하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도피처는 경극이 아니라 돈이 제공해줄 것이다.

전설적인 배우 메이란팡과 중국 경극의 전성시대

중국에서 경극하면 누구나가 다 메이란팡이라는 배우를 떠올린다. 심지어는 메이란팡이 없었다면 중국의 경극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그는 중국 경극계에서 전설적인 배우로 통한다.

'승무'와 '살풀이춤'등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도 어느 잡지의 인터뷰에서 토로하기를, 어린 시절 중국에서 메이란팡을 만난 후 그에 대한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서 원래의 본명을 버리고 그의 이름을 딴 '매방'으로 개명했다고 했다. 또한 독일의 유명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 역시 메이란팡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 서사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창조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도 메이란팡이 어떤 존재였는가를 추측할 수 있다.

▲공연장면 ⓒ 박현숙
중국에서 경극이 등장한 것은 그 명성만큼 그다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18세기 중엽인 청조 건륭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민간에 유행되기 시작한 것이니 그 역사라고 해봤자 불과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경극이 베이징을 중심으로 유포되기 시작한 기원을 보면, 건륭제의 80세 생일잔치 때 안후이 지방의 극단이 공연한 것을 계기로 베이징 일대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후, 메이란팡이 주로 활동했던 1930-40년대는 중국 경극의 전성시대였다. 메이란팡은 원래 집안 자체가 대대로 경극배우의 가문이었던지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집안의 대를 이를 경극배우로 키워졌을 뿐만 아니라 천성적으로도 타고난 경극배우의 외적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그가 유명한 경극배우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 중에는 '딴'(旦, 경극에서 여자역할을 말함)역을 가장 잘 소화해내는 배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당시 중국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한 무대위에서 공연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자배우들이 이 '딴'역으로 분장을 해야만 했는데, 그 배우들 중에서도 메이란팡이 가장 탁월하고 뛰어난 여자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영화 '패왕별희' 속에서 남자였던 장꿔롱이 경극에서 맡았던 우희 역할이 바로 이 '딴'역이다.

중국 경극의 전성기였던 1930-40년대에는 메이란팡 외에도 이 여장 '딴'역할로 인기를 모았던 다른 세 명의 경극배우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일컬어 중국 경극계의 '쓰다밍딴'(四大明旦)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메이란팡과 더불어 이들 세 명의 '딴'역 배우들의 인기와 명성으로 인해 중국 경극은 이후에도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자양분을 축적할 수 있었고, 이들 네 명의 명배우들을 계승한 많은 제자들이 지금까지도 그들 스승의 성을 따서 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진 경극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예를 들면, 메이란팡 사후에 그의 아들인 메이바오지우 선생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메이란팡 경극단을 운영하는 동시에 메이파이(梅派)경극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이는 메이란팡 사후에 중국 경극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바로 '딴'역할을 소화해낼 만한 제2의 메이란팡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딴'역을 했던 네 명의 명배우들이 사라진 후에는 이렇다할 만한 '딴'역 배우가 등장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어서 그러한 해석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점을 의식한 것인지는 몰라도, 메이파이 경극을 이어가고 있는 메이바오지우 선생은 지난해에 최초로 남딴(男旦)배우를 정식 제자로 영입해서 메이파이 경극의 새로운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경극은 이제 두 번 다시 메이란팡 시대와 같은 화려한 전성시대를 꽃피우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다. 중국 인민의 벗이었던 메이란팡이 죽었고 그와 더불어 경극도 대중들의 기억에서 차츰 죽어갔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세월이 변했다는 점이다. 경극이 인민의 벗일 수 있었던 시절은 상상이나마 현실의 절망들을 잊게해줄 무대 위 영웅들의 이야기에 탐닉하고 그로부터 현실에서 도피하고자했던 인민들의 고통이 절박했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경극이 그러한 인민들의 아픔을 치료해줄 묘약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 경극배우의 삶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수와 환호소리가 없는 무대에서 매일같이 습관적인 연기를 해야만 하는 그들은 무엇에서 그리고 또 누구로부터 위안을 받을수 있을까.

중국에서 경극배우로 살아간다는 것 - 젊은 경극배우 한똥바이의 푸념

▲ 공연을 마치고 나온 한똥바이 ⓒ 박현숙
어느새 첫 공연을 마친 한똥바이가 내 옆에 와서 앉아 있다. 그녀의 얼굴은 다시 화장기 없는 담백하고 순한 얼굴이 되어 있다. 앉자마자 그녀는 귓속말로 "나 봤어? 어땠어?"하고 물어본다. 대답대신 나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아주 좋았어"라는 말을 대신했다. 사실 그녀의 연기가 좋았는지 나빴는지 판단할 능력이 전혀 없지만, 그리고 그녀도 나의 그런 상태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둘다 '예의상' 서로를 향해 빙긋이 환한 웃음을 교환한다.

두 번째 공연을 함께 구경하는 동안 그녀는 배우였다가 관객이 된 양 중간중간 박수를 엄청나게 쳐댄다. 마치 주변의 무뚝뚝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는 관객들에게 제발 나처럼 박수 좀 치라고 시위라도 하는 것 같다. 박수를 치는 중간중간 그녀는 옆뒤로 눈길을 돌려 관객들을 살피기도 한다. 그녀의 그러한 행동들이 조금은 딱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해서 나도 덩달아 열심히 박수를 치기는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우리와는 달리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공연에 대한 감흥이나 열정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릿광대들이 무대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등의 역동적이면서 눈요기거리가 있는 장면들이다. 그 대목에서는 간간히 박수가 터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무덤덤한 반응들이다.

두 번째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 창안지에로 걸어나왔다. 대로변 위를 걸으면서 그녀는 나에게 "솔직이 재미없었지?"하고 내가 니 속을 다 안다는 듯이 담담하게 물어본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은 그저 애매하게 씨익 웃으면 그만이다. 그녀도 대답을 재촉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밥을 먹으면서 한똥바이는 중국에서 경극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많은 고민들과 답답함 따위들을 열심히 늘어 놓았다.

"난 11살 때부터 경극배우 훈련을 받았어. 어느날 우연히 학교 선생님 눈에 띄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 내 삶은 줄곧 경극을 벗어날 수 없었지. 중고등학교와 대학시절 내내 죽어라고 경극배우가 되는 수업만 받아왔고 앞으로의 삶도 아마 경극배우로 늙어갈 게 분명해. 생각하면 좀 지겹고 재미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누구에게나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삶의 요소들이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솔직히 요즘 들어서는 회의가 드는 때도 있어. 특히 공연 중에 관객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거나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적을 때는 더하지. 요즘같은 세상에 경극을 보러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지만, 정말로 지금은 우리같은 경극배우들이 견뎌나가기에는 힘든 세상인 것 같아. 메이란팡 선생님이 활동하던 시절만 해도 경극배우들에게는 천국같은 세월이었을 거야. 그때는 경극이 아니면 별다른 오락거리나 볼거리도 없었기 때문에 경극은 사람들에게 유일한 생활의 위안이자 재미였을테니까."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선택하고 싶은 맘이 있니? 만일 경극배우를 그만두고 싶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어?"

"작년에 메이바오지우 선생님의 제자로 정식 입문을 해버렸는데 지금에 와서 어떻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겠어. 그냥 하두 답답하니까 하는 소리지. 너도 아까 봤다시피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썰렁하잖아. 보는 사람도 몇 안되고. 그러니 배우들이 힘이 빠지고 연기하는 것이 재미없어지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배우들도 예전과는 달리 공연이나 연기들을 거의 습관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어. 혹독한 훈련이나 장인정신을 가진다기보다는 그저 어릴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배우를 때려친다고 해도 먹고 살 길이 막막하잖아.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는 다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마 모진 맘 먹고 그만둔다고 해도 얼마 못가서 다시 극장으로 돌아오거나 아니면 이곳저곳에서 부르는대로 달려가는 삼류 경극배우가 되겠지."

"솔직히 경극이 재미없는 건 너도 인정하잖아. 옛날 사람들이야 볼거리가 없어서 경극에 심취했다고치더라도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도처에 널린 것이 오락문화들인데, 경극이 지금같이 따분하고 진부한 형식들만을 고집한다면 앞으로도 점점 더 사람들에게 잊혀지게 될게 뻔하다는 생각이야. 중국 경극계 내부에서는 뭐 뾰족한 대중화 방안 같은 거 고민 안해?"

"왜 고민을 안하겠어. 장쩌민 주석도 경극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어린이 경극같은 것들을 활성화해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경극의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는 등의 건설적인 주문들도 한 적이 있고 경극계 내부에서도 경극의 현대화 방안 등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혁신하고 있지만 현대의 최첨단 오락문화앞에서는 역시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실 나도 경극의 미래에 대해서는 그녀의 이러한 비관적인(?) 견해에 동의하는 바이다. 현대의 최첨단 오락문화와 오락산업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해가는 세태 앞에서 아무래도 지금과 같은 중국 경극의 형식으로는 웬만해서는 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젊은 중국배우 한똥바이를 위로해주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그래도 경극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의미있는 문화예술이라고. 이런 마음에 불쑥 머리 속에 떠오른, 누군가에게서 들은 농담 한 마디를 건네보았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어느 조사기관에서 한국의 판소리와 일본의 가부끼 그리고 중국의 경극 등 아시아 세 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실험을 했대. 즉 이들 중 어떤 공연을 볼 때 관객들이 가장 지루해하지 않는가였는데, 결과는 일본의 가부끼를 볼 때 관객들이 가장 많이 졸고 있고 중국의 경극을 볼 때 가장 말똥말똥하더라는 거야. 어때, 재미있지 않아?"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예의상 한 번 웃고는 그냥 말없이 젓가락질을 계속한다.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조금 뒤 그녀는 자기도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한 마디한다.

"그 조사에 응했던 관객들이 혹시 다 외국인 아니었대? 중국인이 관객이었을 리가 없어. 나도 외국에 나가 공연을 할 때나 치엔먼 호텔같은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오는 극장에서 공연할 때가 가장 신이 나거든. 왜냐하면 외국인들은 정말로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서는 우리 공연을 아주 열심히 구경해. 중간중간 박수도 잘쳐주고. 그들이 뭘 알아들어서 재미있게 보겠어. 아마도 신기해서 그러겠지. 그래도 배우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박수라도 잘 쳐주는 관객들이 더 좋아. 따지고 보면 중국 사람이라고 경극대사를 알아듣는다거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거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며칠 뒤 일본 공연을 간다며 좋아했다. 경극배우가 되어 가장 좋은 일은 해외공연을 자주 갈 수 있다는 것과 남들은 평생에 한 번 갈까말까 하는 외국 여러 나라들을 공짜로 구경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일본에서 돌아온 후 다시 극장에 놀러오라고 당부를 한다. 들뜬 표정 한편으로 그녀는 나와 헤어지기 직전 경극배우로서의 마지막 푸념을 늘어놓고 갔다.

"돌아오자마자 다음날 저녁에 바로 공연을 해야 돼. 보러 오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우리는 하루도 제대로 쉴 수가 없거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는 감기에 걸려서 목이 아프더라도 공연을 해야 되고 공연 도중 무대 위에서 갑자기 탈이 나서 배가 아프더라도 막이 내리기 전까지는 공연을 멈출 수가 없어. 그래서 아직까지 이 나이가 되도록 남자친구도 못 사귀고 있잖아. 이대로 그냥 늙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암튼 너라도 열심히 박수를 쳐줘야 해.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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