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돌풍과 장나라 신드롬 그리고 광기의 천재 김어준ⓛ

등록 2002.04.04 18:24수정 2002.04.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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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패러다임이 전면적으로 바뀌고 있다. 노무현 돌풍을 보고 혹자는 정치변혁에 대한 갈망이 지향점을 찾아 무차별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고 혹자는 노무현 후보가 지닌 개혁적 칼라가 영남후보론과 맞물려 폭발적 양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느 것이건 간에 분명한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기존의 질서가 전면적으로 해체되고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출발점을 사람들은 노무현 돌풍에서 찾고 있지만 사실 광풍과도 같이 몰아치고 있는 노무현 돌풍의 단초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그 맹아를 싹틔우고 있었다.

돌풍의 진원지는 인프라의 변화

노무현 돌풍을 설명하는 몇가지 논리 가운데 특히 주목받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넷의 발전으로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언론독점이 붕괴되어 수구집단의 논리가 더 이상 사회의 지배적 선전도그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조중동의 색깔론이나 음모론 증폭시도가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역풍을 맞은 것, 그리고 조회수에서 오마이뉴스 등이 조중동을 능가하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수구언론이 인정하든 말든 이미 수구세력의 언로(言路) 독점은 사실상 해체된 상태다.

둘째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유권자 숫자의 놀라운 변화다.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영남후보론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근거다. 영남후보론의 요체는 인구의 28%를 차지하는 영남지역 유권자의 지지 없이는 누구도 권력을 잡을 수 없다는 현실을 기초로 한다. 그런데 이러한 숫자논리에서 엄청난 양적 변화가 생겼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경제개발 초기인 60년대까지 무차별적으로 생산된(?) 베이붐 세대가 우리 사회의 숫적 다수가 되기 시작한 점이다. 이들은 70년대 유신과 80년대 군부독재 치하에서 현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높은 정치의식과 비판의식을 갖추었다.

지난 1987년 6.10항쟁에서 넥타이부대로 불리면서 일단 실력과시를 한 이 세대들이 마침내 사회의 주력군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의 숫자는 유권자 절반에 육박하는 인구의 48%에 이르는데(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노무현 돌풍의 외피가 영남 후보론이라면 그 돌풍을 광풍으로 바꾸어 준 것이 영남후보론을 무색하게 만든 바로 이들이다. 연령층으로 30-40대인 이들은 압도적 투표권을 갖고 인해전술로 기성세대를 압박하고 있다.

이들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활용, 자신들을 조직화하여, 일관된 정치역정과 개혁정책을 들고 나온 노무현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냄으로서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초래한다"는 정치경제학적 명제를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돌풍의 현상을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이라면 위의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해봄직하다. 그러나 노무현 돌풍의 저변에 더 중요한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자본공급과잉의 시대

만성적 자본부족에 시달리던 한국 산업계가 IMF라는 강제적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자본 공급과잉 상태로 접어들었다. 자본의 공급과잉은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관치금융의 철폐다.

관치금융의 철폐가 지닌 의미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예전 같으면 대우나 현대를 회생시키기 위해 막대한 돈이 그들에게 투입되었을 것인데, 관치금융이 사라지면서 그럴 수가 없게 되었고,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금융지원도 철저히 시장논리에 따르게 되면서 부실대기업에게 배정되었던 막대한 자본이 시장에 나온 것이다.

시장에 나온 금융자본은 자체의 이윤논리에 따라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거대재벌로 대변되는 독점경제 구조하에서 이윤창출에 한계를 보이던 금융자본이 벤처로 대변되는 중소상공업자와 일반가계로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그 결과 저리의 금융공급은 한국 사회전반에 유동성 과잉 즉 자본공급과잉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초래했다.
(자본공급과잉이 일시적 현상인지 아니면 제도화된 현상인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이글의 취지와 달라서 설명을 생략한다.)

창의력과 고도의 기술력을 밑천으로 고부가가치와 높은 이윤을 실현하는 벤처기업을 이윤을 찾아 헤매는 금융자본이 그냥 지켜볼 이유가 없었다. 99년초에 몰아닥친 코스닥 열풍이 바로 벤처와 금융자본의 결합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의 자본독점이 어이없이 무너졌고, 이 때문에 대기업에 의한 가부장적 사회질서도 급격하게 해체되었다.
(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벤처비리도 따지고 보면 대기업이 독점하던 정치자금수요를 중소기업이 나누어 담당하기 시작한 것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독점대기업에 의한 사회통제의 붕괴는 사회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노무현, 장나라, 김어준은 기존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사회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출현한 시대정신으로, 이들의 캐릭터는 새로운 사회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다.

명랑소녀 장나라

그러면 노무현 돌풍과 명랑소녀 장나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조선일보 사설식 논리라면 노무현과 장나라의 관계에 대해 노무현 후보나 장나라 양은 소극적 변명에서 벗어나 둘만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해명할 의무가 있지만, 필자는 금쪽같이 귀한 시간에 이런 황당하고 무식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노무현, 장나라, 여기에 덧붙여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세 사람은 삼각관계라는 점이다. 이 세 사람은 <역사 발전에는 비약이 없다>라는 정치경제학의 명제에 충실히 따르는 사회발전 과정에 필연적으로 등장한 무대 배우다.

무엇이 이들 세 명의 배우를 역사의 무대위로 초대했는가?

여러분은 동학혁명으로 잘 알려진 갑오농민전쟁을 기억하는가? 김옥균으로 대표되는 갑신정변을 기억하는가? 혹시 갑오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이 주장한 폐정개혁 12개조항과 갑신정변에서 정변주동자들이 발표한 14개조로 된 '신정강'을 기억하는가?

노무현이 갑오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의 피맺힌 정치적 주장의 대변자라면, 장나라는 불량한 유림과 양반을 징벌할 것을 주장한(폐정개혁 4조) 정신의 모사(模寫)요, 김어준은 청상과부의 재혼조차 금기시하던 숨막히는 위선적 사회질서에 대한 반역 정신(폐정개혁 7조)이다.

이 세 사람은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찬 구질서를 해체하고 자유로운 개인이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서로 간에 계약을 맺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노정 즉 봉건질서를 해체하고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전국민적 열망의 체현이다.

그러한 질서에서 정치를 대변하는 것이 노무현이라면,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 장나라요, 사회를 대변하는 것이 김어준인 것이다. 이들은 '무엇을' '왜' '어떻게' 대변하고 있는가?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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