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회의 시간, 학생부장이 일어나 지직대는 마이크를 움켜쥐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듯 목청을 높인다.
"교육구청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입니다. 각 학급마다 출입문 안쪽에 표어를 붙여주십시오. 연간 실천 덕목에 관련된 것이므로 꼭 부착해야 합니다. 표어는 프린터로 찍어서 학급함에 넣어두었습니다. 반드시 교실 앞 출입문 안쪽에 붙여주십시오."
회의가 아닌, 지시 전달의 직원조회가 끝나고, 나는 스적스적 학급함으로 가 표어를 뽑아든다. 고딕체의 커다란 글씨가 흰 종이에 가지런히 박혀 있다.
"청소년 유해환경 반드시 추방합시다"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만다. 청소년 유해 환경을 추방하자는 것을 왜 교실에 부착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청소년 유해환경이야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어른들이 아이들을 유혹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표어를 붙이려면 학교 밖에 붙이든지, 아니면 그런 곳에 가지 말라는 표어를 만들어 붙이든지 해야 옳은 것 아닌가?
책상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전시 행정, 보여주기 식의 업적 중심 행정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아 그날 아침, 씁쓸한 웃음만 씹어 삼키며 나는 교실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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