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기 교사아카데미를 다녀오다 1

똘레랑스와 "왜"라는 질문을 살리자는 홍세화 씨

등록 2002.04.22 10:24수정 2002.04.2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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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기가 한 쪽씩 곱게 싸여 있고 음료수가 놓여 있는 곳. 북적북적 여러 사람들이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즐거워 한다. 전교조 북부지역 사립·공립·초등지회가 주최하는 제1기 교사아카데미가 열리고 그와 함께 첫 강연이 시작되는 곳이었는 데 학기 초 너도나도 바빠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던 사람끼리 모처럼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강북구청 대강당.
오후 6시쯤 시작하여 2시간 정도 열렸는데, 신청자 400여 명 가운데 300여 명이 넘는 수가 모인 이 자리의 첫 강연은 20년 만에 우리나라에 돌아온 '파리의 택시 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홍세화 씨였다.

그의 강연은 국가 경쟁력과 학벌주의, 학력과 평준화 해체로 우리나라 공교육이 흔들리고 있는 이때 정말 정권지대계인가 할 정도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교육현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는 데, 비디오 상영과 강연, 질의응답의 순서로 이어졌다.


비디오 상영

'공교육의 유무'라는 제목의 강연은 처음에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는 지 앞 좌석에 미리 와 앉아있는 홍 선생님의 모습이 담긴 자료화면이 스크린을 통해 마치 다큐영화처럼 상영되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왜 이 땅에 살지 못 하고 프랑스로 가야했는 지, 남한을 제외한 어디든 갈 수 있는 여권에 좌절하고 새롭게 얻은 여권에 매우 만족해하는 그의 모습이 비쳐졌을 때 '자유'라는 단어의 실체를 보는 듯 해서 참 인상적이었다.

강연 - 우리나라 공교육의 유무('똘레랑스'를 중심으로)

두 자식을 교육시키는데 돈 한 푼도 들지 않았다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프랑스의 공교육을 설명하는 그는 정말 그가 주장하는 '똘레랑스('관용'이라고 해석되지만, 문맥으로 보았을 때는 '다르다'가 맞다고 그는 주장한다)'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 지를 역설하게 했다.


중학교 시절 아들의 성적표를 보여줘 우리나라 성적표를 비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아들과 딸의 학교 생활을 들려주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을 '못 살게 하고 학대'하는 지와 그가 말하는 "무지, 야만"의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었다.

학생수 39명, 각 교과에 대한 점수(물론 최고점과 최하점을 기록한다)와 그에 따른 주로 학생을 맡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담임) 교사의 세심한 말과 아래에 씌여진 교장선생님의 말씀.


아마도 이 부분에서 조금은 지루한 듯한 선생님의 강의가 빛이 났지 않았나 싶다.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며 설명이 곁들여졌는 데 모두들 '와아'하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성적표엔 등수가 매겨져있지 않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홍 선생님의 말씀 가운데 대학이 평준화되어 자격시험을 통과한 후 대학을 간 다음에는 가차없이 유급을 시킨다는 말에 우리나라 현실이 대비돼 보였다. 물론 교육여건이 너무나도 다른 곳이다 보니 부러움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한 켠에선 후우하는 소리도 났다.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 아무리 놀았다할 지라도 일단 대학에 가게 되면 맘처럼 놀 수 없다는 프랑스. 제대로 된 공부가 행해지는 곳. 그러면서 홍 선생님은 우리나라 대학생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 취업준비를 한다고 했다.

어찌되었던 공화국이라 일컬어지는 두 나라가 이처럼 다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했을 때, 그는 '당연 있어야할 것이 비어 있다"는 말로 대변했다. 이름은 있으되 그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인가.

"왜"라는 질문을 살리자

수업을 하다보면 잡담에는 능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어눌한 것 조차 고마울 정도로 말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느냐'에 대한 물음에 답이 거의가 "모른다, 그냥"이 허다하다. 그래도 대답이라도 하는 경우엔 그나마 나을 정도다.

홍 선생님의 말씀에 아무리 황당한 질문을 하더라도 부모는 황당한 답을 해서라도 질문을 먹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의 말을 귀담아주고 존중해준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 부모는 어떤가. 물론 먹고살기 바빠 아이에게 눈돌릴 틈마저 그리운 판에 뭔소리냐 하겠지만, 뭐하러 묻느냐, 어른되면 다 안다 등으로 얼버무리기 일쑤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조카들을 보면 참 황당한 질문을 할 때가 많다. 언젠가 초승달을 보며 이모 눈썹을 닮았다며 그렇지 않냐고 할 때 놀라움으로 그렇구나 답했던 걸 생각해보면 어쩌면 아이들의 눈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 내 주위 부모들은 '왜'라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고 있다.

결국 홍 선생님은 우리나라 교육이 단편적이고 주입식일 수밖에 없는 이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왜'라는 질문을 살리고 그에 대해 성실히 답할 수 있는 풍조를 갖춰야한다고 역설했다.

강연이 끝나고 마련된 질문지로 질의응답이 이뤄졌는데, 교육내실화 방안의 문제가 제일 많이 나왔다. 물론 프랑스 교육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우선은 우리나라 공교육의 내실화방안이 시급했으므로 그 문제가 많이 나온 듯 싶다. 하지만 그리 명쾌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국가는 물론 행정가, 교사, 학부모,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몫이기 때문이다.

크게 소리내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차분히 말씀해나가는 홍 선생님을 보고, 수업시간 큰소리로 아이들을 나무라던 기억이 참 많이 났다. 다른 선생님도 그 점이 인상적이었는 지 웃으며 이제부터라도 조용히 말하는 노력을 해봐야겠다고 말한다.

인쇄물 맨 끝에 써있는 볼테르의 말이 어쩌면 홍 선생님이 우리에게 하고픈 말이 아닌가 싶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 있는 자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 똘레랑스 : 상대방이 나의 생각과 다를 때, 그의 생각을 뜯어고치기 위해 강제와 폭력을 동원하는 대신 서로의 차이를 그대로 용이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료집)

덧붙이는 글 ** 똘레랑스 : 상대방이 나의 생각과 다를 때, 그의 생각을 뜯어고치기 위해 강제와 폭력을 동원하는 대신 서로의 차이를 그대로 용이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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