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숭배하는 거상 '호설암'

<경제이야기> 서평:'상경'(商經)

등록 2002.05.02 12:22수정 2002.05.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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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빠른 경제 발전이 우리에게 기회와 동시에 위기를 주고 있다. 경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앞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 축이 태평양 연안 국가에서 아시아 본토인 중국이나 인도로 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경제가 연평균 6% 정도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2025년에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5조 달러로 미국(20조 달러)을 훨씬 앞지를 것이다. 그때 가서는 중국이 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면서 현재의 미국 경제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의 수출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중국이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상품을 보다 값싸게 생산해서 우리의 다른 수출 시장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중국을 알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는데, 스유엔이 지은 '상경'(商經, 김태성·정윤철 옮김, 더난출판, 2002.3)이다. 상경은 '상업의 경전'이라는 뜻으로 14억 중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거상 호설암(胡雪巖)의 경영철학을 담은 책이다.

동서고금의 거상들은 대부분 미천하고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1823년 휘주 적계현에서 태어난 호설암 역시 그랬다. 그는 전장(錢裝: 청나라 시대의 금융기관)의 점원에서 부강(阜康)이라는 전장과 전당포를 이용하여 대륙적인 금융망을 건설하는 동시에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호경여당(胡慶餘堂)이라는 약국 체인을 운영하는 거상으로 부상했다. 호설암은 근대 중국 상업사에서 상성(商聖)으로 불려지고 있다.

'상경'이라는 책은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서 저자 스유엔은 호설암의 어록과 더불어 그의 경영철학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동서양의 훌륭한 경영 사례를 들어 책의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다.

'상경'은 호설암의 상술과 상도 등 경영철학을 다루고 있다. 상술과 상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드나 이 책에 나타난 호설암의 상술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호설암은 무엇보다도 인재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돈보다 사람을 먼저 얻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전장에서 결손 처리된 5백 냥을 왕유령이라는 미래의 관리가 될 사람을 위해 썼다. 이 때문에 호설암은 전장에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후에 관리가 된 왕유령의 도움을 받아 사업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또한 호설암은 "상인이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람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티 없는 돌보다는 티 있는 옥'을 좋아했다. 그리고 일단 사람을 쓰면 신뢰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오늘날 유행하는 신뢰경영의 본보기가 된 셈이다.


둘째, 호설암은 큰 상인이 되기 위해서는 깊은 안목과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큰 상인은 4덕(智仁勇信)을 갖춰야 한다. 특히 상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용모(勇謨)를 갖춰야 한다. 즉 상인이란 모름지기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남이 살피지 못한 것을 살피며, 높이 서서 멀리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상인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배부를 때 굶게 될 날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최근 잘 나가는 우리나라 한 그룹에서 '준비경영'을 강조하고 있는데, 호설암의 이와 같은 경영철학과 비슷하다.

셋째, 호설암은 관계 중시의 사업 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힘은 권력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호설암은 유망한 관리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때로는 관리들에게 지모와 책략을 제공했다. 그는 관리들의 지원을 받아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어 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도록 이용했다. 또한 호설암은 인간의 감정을 사업에 활용했다.

사업 상대에 대해서는 '금전 출납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출납부'로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업에 있어서 금전 출납부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인간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먹고 입는 것이 모두 고객에게서 나온다"라고 말할 만큼 호설암은 고객 중심의 경영을 했다. 최근 서양에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 강조되고 있는데, 호설암은 이미 19세기에 이를 도입했다.

넷째, 천하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호설암은 강조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고 안정되면 사업은 저절로 번창하게 된다.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며, 사업부지를 선택할 때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며, 상점을 특이한 장식으로 배치해야 한다. 또한 사업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업이 늘 새로워야 한다. 사업장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꾸미는 것이 상인의 기본 정신이다. 특히 간판을 보면 사업의 성패를 알 수 있다. 기업이나 점포의 외관은 사람의 얼굴과 같기 때문이다.

다섯째, 상인은 모름지기 양명(揚名)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명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좋은 이름과 독특한 브랜드를 창조해야 한다. 상호는 특이해야 하며 그 사업에 적합하고 길상(吉祥)의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브랜드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업에 있어서 좋은 이미지는 억만 냥의 황금과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술뿐만 아니라 상인은 상도를 갖춰야 한다고 호설암은 강조했다. 우선 상인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칼날에 묻은 피를 핥는 것도 마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국법과 규율을 어기면서까지 의롭지 못한 재물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 가급적 쉬운 방법으로 돈을 벌되 남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짓은 하지 않는다. 셋째, 친구들의 힘을 빌려 돈을 벌긴 하지만 이로 인하여 친구들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면목 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넷째, 기회를 잘 잡아 활용하되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다섯째, 돈 버는 일을 일상의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되, 사람들에게 베푸는데 있어서도 항상 넉넉한 마음을 보이고 모아놓은 재물을 지키기 위해 안달하지 않는다.

호설암은 "재물의 가치는 재물 그 자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유통시키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찾게 되는 만족감에 있다"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영철학에 따라 구휼창에서 많은 난민을 구제했고, 기금을 모았으며 파괴된 명승 고적이나 사찰을 복원했다. 호설암은 의(義)와 이(利)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꾸준하게 모색했다. 그는 은행업에 해당하는 부강을 설립하여 돈을 모았고 호경여당이라는 약방을 설립해서 이익을 사회에 환원했다.

앞서 살펴본 상술과 상도 외에 저자는 욕정을 다스릴 줄 아는 호설암을 소개하고 있다. 영웅은 미인의 관문을 넘기 어렵다고 했으나, 호설암은 정이 많으면서도 그것을 다스릴 줄 아는 어정(御情)의 고수였다. 그는 "여자가 아무리 좋다해도 돈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을 지녀야 하고, 때로는 이를 위해 벌을 받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단지 이익을 추구하고 마음에 맞는 아내를 맞이하여 한 세상 즐겁게 지내다 가고 싶을 뿐이다. 삶이란 이런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상경'은 오늘날 중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중국인의 경영정신을 담고 있다. 글머리에서 본 것처럼 중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경제의 미래가 얼마나 중국 시장을 잘 개척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상경'이라는 책은 중국시장을 알고자 하는 우리 기업가들에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진정한 사업가의 길도 제시하고 있다. 563면에 걸쳐 호설암의 경영철학이 길게 기술되어 있지만 그만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게 이 책을 읽은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enable Business'(2002.5)에 실린 것으로 각 장별 요약은 'www.deri.co.kr/연구소 칼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enable Business'(2002.5)에 실린 것으로 각 장별 요약은 'www.deri.co.kr/연구소 칼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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