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다랑쉬 마을'이라고
너의 형체는 없어졌지만 다랑쉬 높이는
그대로 있다고 그게 다 서러움을 쌓아 올린 거라고
너의 부모는 이곳에서 갔지만
돌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어
밭을 일구고 말을 기르며 살았는데
어느 날 한 마을을 태워버렸지
10여가구에 40여 명이
팽나무 가까이 집집마다 대밭으로 둥글게 바람막고
아마 저 팽나무는 기억하고 있을 거야
기억력이 왕성할 때였으니까...
- 이생진의 '잃어버린 마을' 중에서-
'제주, 그리고 오름'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아끈('작은'이라는 뜻) 다랑쉬 오름 정상에서 다랑쉬 오름에 얽힌 4.3의 영혼을 위로하는 이생진(73) 시인의 오름 시낭송회가 12일 정오에 열렸다.
이날 시낭송회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알려진 시인 이생진(73) 씨와 화가 임현자(56) 씨가 최근 제주 사랑을 담은 공동 시화집 '제주, 그리고 오름'(책이 있는 마을 발간)을 펴낸 출판기념의 자리.
충남 서산의 바닷가에서 태어난 이 시인은 평생 섬으로 돌며 시를 쓴 섬지기 시인이다. 무려 1000여 섬을 직접 돌며 '섬마다 그림움이' '하늘에 있는 섬'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등을 내며 무한한 섬 사랑을 노래했다.
이날 이 시인은 4.3 원혼을 달래는 7편의 '다랑쉬 오름의 悲歌'를 낭독해 애절함을 자아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임 화백은 '제주도 풍경'(93.95년) '탐라의 빛깔'(97년) '탐라의 향훈(98.2000년)'전에 이어 최근 '제주, 그리고 오름전'까지 제주 풍광 등을 소재로 해 일곱번의 개인전을 치른 서양화가.
'누군가 가는 목소리로 부르기에 뒤돌아 보니 아끈다랑쉬 풀밭의 여치였네'는 작가의 제주 애찬은 '나도 붓으로 꽃을 그리며 신(神)의 마음을 읽었다'는 무속적 제주사랑까지 보여주고 있다.
아끈 다랑쉬오름 정상에서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와 세화리 일대에 자리잡은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손지오름, 높은오름 등은 한결같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이날 아끈 정상에서는 50여 년전 4.3의 광풍으로 다랑쉬 마을에서 죽어간 11명의 원혼을 달래는 '오름제'가 열리고 이들을 위로하는 춤사위에 이어졌다.
이 시인이 '잃어버린 마을에서의 패러글라이딩' '아직도 악몽속에서' '소년과의 패러글라이딩' 등을 읽어 내리자, 때마침 다랑쉬 오름 창공에서는 패러그라이딩이 날아올라 주변을 숙연케 했다.
'패러글라이딩/이리와, 우린 바람을 타고/총을 쏘지 않아도 되는가는 거야/아홉살인 너에게 총질하는 사람들하고 어떻게 산단 말인가...패러글라이더의 줄을 꼭 잡아/여기서 믿을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어'('바람의 힘' 중)
이어 김순이·문복주·양전형·권재효·오시열 시인과 손희정·이명애·김명숙 씨 등 제주 시사랑 회원들의 낭송이 차례로 이어졌다.
시와 결혼한 총각 원로시인 박희진(71) 씨는 "벌써 제주도에 있는 15개의 오름을 올랐다"며 '제주도의 초원·오름·바다'를 제목으로 한 3개의 연행시를 읊었다.
박 시인은 "아끈다랑쉬는 바로 모양을 보나 주변을 보나 바로 '비행접시'예요. 그래서 이 곳에서 우리 모두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이 순간 만큼은 영원한 생명의 현장에 동참하고 있어요"라며 오름이 주는 생명의 힘을 느끼자고 말했다.
제주의 채바다 시인은 "앞으로 슬픔과 눈물, 이념을 얘기하지 말고 오로지 평화와 사랑과 인간만을 노래하자"며 "구름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싶다면, 오름의 날개를 달고 가시라"며 즉흥적 시흥을 남겼다.
이날 시인들은 "제주는 어디를 가나 천연의 문화공간"이라며 "제주의 오름을 야외 문화공간으로 가꿔 제주를 평화와 축복의 땅으로 만들자"는데 공감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참여한 90여 명의 문인과 시민들은 이 시인이 친필 사인한 '제주, 그리고 오름' 시화집을 한 권씩 받아들고 늦봄의 햇살에 취했다.
덧붙이는 글 | 다랑쉬 마을 : 구좌읍 세화리에서 남서쪽으로 6km 떨어진, 해발 170m의 중산간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다랑쉬마을은 4.3 당시 토벌대에 의해 소각되어 지금은 폐촌이 되어버렸다.
아끈 다랑쉬: 다랑쉬오름 바로 발밑에 있는 나직한 오름으로 오름 전체가 새(제주도 초가지붕에 이용되는 풀)로 덮여 있으며 넓은 쟁반처럼 평화롭게 놓여있다. 다랑쉬오름을 닮았다고 해서 '작은 다랑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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