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유흥가 ‘발전’ 나섰다?

고양시 시민회관 부지 1500평이 유흥가 무료주차장 둔갑

등록 2002.05.15 01:09수정 2002.05.1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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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가 화정2동 시민회관 부지에 무료 주차장을 추진하고 있어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시가 추진중인 주차장 부지 바로 옆에는 러브호텔과 유흥가로 들어가는 길이 나 있어, ‘유흥가를 위한’ 주차장 건설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95년 입주할 때부터 시민회관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갑자기 주차장을 만든다니 어이가 없다.”

고양시 화정2동에 사는 주부 이은미(40) 씨는 요즘 한창 서명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근에 있는 시민회관 부지에 주차장을 건설한다는 소식을 접한 이 씨는 시민단체에서 받는 ‘시민회관 부지 매입 촉구 및 문화공간 조성을 위한 화정동 주민 일만인 서명운동’에 직접 나서서 인근 주민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다.

이 씨는 “화정 지하철역에 가보아도 분명히 시민회관 방향으로 가는 표지판이 있다”면서 “아파트 단지마다 주자장이 모자라지도 않는데, 무료 주차장을 시가 앞장서서 만드는 것은 주변 유흥가를 위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양시가 화정지구 중심가에 1500평 규모의 무료 주차장을 조성하려 해 인근 아파트 주민과 시민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고양시는 총 2900만 원을 들여 고양경찰서 옆 화정동 1003번지 일대에 210대 규모의 주차장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달 27일 기습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주차장을 조성하려는 부지는 5000평 크기의 시민회관 조성 예정지 안에 있는 것으로 94년 화정택지개발지구 조성 이후 8년간이나 빈터로 방치되고 있던 곳. 인근 주민들은 이 부지에 손수 텃밭을 일구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각종 야채를 심는 등 주말농장으로 애용하고 있다.


이런 부지에 고양시는 지난 27일 갑자기 주차장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애써 가꾼 텃밭 1500평을 포크레인을 동원해 밀어 버렸다.

이곳에 텃밭을 일구었던 화정2동 14단지에 사는 김모(61) 씨는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공고나 주민 공청회 하나 없이 갑자기 텃밭을 밀어 버렸다”면서 “이곳에 주차장을 조성해도 주민들은 거의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주변의 유흥업소를 위해 주차장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원래 이 부지는 한국토지공사 소유지로 고양시는 주차장 조성에 앞서 토지공사의 협조를 요청해 동의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양시가 주차장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화정동 일대 아파트 3500가구 주민들은 ‘주거환경을 위한 화정동공동대책협의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해 고양시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주차장 조성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대책위와 고양시환경운동연합은 지난 5월1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유리방·나이트클럽·단란주점·러브호텔 등 유해환경업소들이 인접한 곳에 무료 주차장을 조성하는 것은 이들 업소를 더욱 번창하게 해 주거환경과 교육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대책위와 시민단체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고양시는 “2001년 10월 화정1동 주민 760명이 무료 주차장을 건립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해 사업에 추진했다”고 해명했다. 시민회관 조성에 대해서는 “예산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초 2001년 고양시 중장기 예산계획안에는 총 87억 원의 문화부지 예산이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지출하기로 되어 있었다.

고양시환경운동연합은 “도보로 20∼30분 거리에 사는 화정1동 주민들의 건의로 무료 주차장이 추진된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4월3일 고양시에 민원서명을 한 주민들의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고양시는 4월 20일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7조 제5호(입찰계약 또는 내부검토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에 의거 정보공개가 불가능하다는 회신을 보냈다.

취재결과 화정1동 주민들의 주차장 건립요구 민원이 있은 직후인 같은해 12월에 화정2동 주민 170여 명이 주차장 건립 반대 민원을 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그동안 텃밭을 일구었기에 땅을 내놓기 싫어 민원을 냈다는 의견이 제기돼 민원은 묵살됐다고 한다.

고양시환경운동연합 김혜련 회원사업부장은 “화정2동에는 3만8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주민 누구 하나 주차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면서 “시가 이곳에 주차장을 만든다는 것은 주변의 유흥업소만을 위한 조치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근 아파트 단지에는 지하 주차장 시설까지 완료되어 있지만, 주민들은 지상에 차를 주차하고 있어 아파트 단지에서 먼 무료 주차장을 이용하려는 주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

인근 9단지에 사는 주부 한순천(39) 씨는 “아파트 단지 내의 주차시설이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면서 “주차장이 만들어지면 밤에 유흥가를 오는 손님이나 주변 러브호텔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변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그곳에 주차를 하고 러브호텔로 들어갈 것은 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차장 부지 5m 옆에는 대형 러브호텔이 서 있고, 유흥가로 들어가는 길목이어서 주차장이 모자라지도 않는 상황에서 고양시가 유흥업소를 위한 주차장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근처 모나이트 클럽에서 일한다는 이모(23) 씨는 “밤이면 업소 앞으로 주차할 곳이 없어 손님들이 불편을 많이 느낀다”면서 “무료 주차장이 있다면 아무래도 손님들이 편하게 찾아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편 대책위와 시민단체들은 지난 1일부터 주차장 조성계획의 백지화와 부지매입 예산확보 및 문화시설 건립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서 고양시와 주차장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조짐이 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먼타임스 62호 발행에 실린 기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우먼타임스 62호 발행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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